하나의 그림을 떠올려본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를 일본의 아스카 시대로 옮겨온 듯한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일본화다. 한 젊은 청년이 노인의 가슴 한복판에 검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사방으로 붉은 피가 묻어 있고, 지켜보는 한 젊은 여자가 있다. 하인이나 시종인 듯한 젊은 남자가 있는 그림 한쪽에 네모난 뚜껑을 열고 내다보는 수염투성이 긴 얼굴의 남자가 있다. 긴얼굴은 기묘한 목격자로 보였으며 마치 본문에 숨은 각주처럼 왼쪽 아래에서 지상의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는 듯 하다. 돈 조반니가 아름다운 돈나 안나를 억지로 차지하려다 들키자 그녀의 아버지 기사단장을 결투 끝에 찔러 죽이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이 소설의 전편을 설명하는 매개체로써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는 아내와의 이혼후 홀로 여행을 하다 대학 동기의 아버지이자 일본화로 유명한 화가 아마다 도모히코가 살던 산속의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화가로서 특별히 이름을 날리지는 않았으나 초상화 분야에서는 나름 이름을 알린 그였다. 생계를 위해 그렸던 초상화를 당분간 그리지 않고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겠다는 포부도 있었을 것이다. 어느 날 손님방 천장 속에 감춰둔 아마다 도모히코의 일본화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그림을 발견하고 그에게 기이한 일이 발생했다. 그의 집 테라스에서 마주 보이는 흰색 저택에 사는 멘시키로부터 거액의 대금과 함께 초상화를 의뢰 받고, 그의 초상화를 그리던 중 새벽에 방울 소리를 들었다. 그 다음 날도 방울소리가 들리자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나아갔다. 잡목림 속 사당이 있는 부근에서 난 소리였다.
멘시키는 기이한 이야기를 담은 우에다 아키나리의 『하루사메 이야기』를 한다. 징소리 비슷한 소리가 들려 살펴본 곳에 산채로 매장당한 승려 '즉신불'을 발견한 이야기를. 하루키는 『하루사메 이야기』를 모티프로 「돈 조반니」의 이야기와 함께 멘시키와 주인공 '나'가 듣는 음악들 사이에게 부유하는 작품을 썼다. '나'는 여태 그려왔던 방식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고, 이는 자신의 내부에 묻혀 있던 새로운 이미지를 찾아내는 작업이었다. 멘시키는 초상화의 모델을 서며 누군가에게 전혀 하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결혼에는 생각이 없었으나 좋아했던 여자와의 마지막 하룻밤을 격렬하게 보낸 뒤 그 여자에게 태어난 아이가 자신의 딸인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자신의 딸일지도 모르는 아이를 바라보기 위해 산 집이 바로 흰색의 저택이었고, 그곳의 테라스에서 망원경으로 마리에의 집을 바라보며 홀로 살고 있다고 했다.

자신의 초상화 작업이 끝나자 멘시키는 '나'에게 자신의 딸일지도 모르는 아키가와 마리에의 초상화를 부탁한다. 그 전에 멘시키가 기계를 들여와 인부들과 함께 방울소리가 들린 구덩이를 팠고, 구덩이 속에는 오래되었지만 깨끗한 상태의 방울이 들어 있었다. 잡목림 속 구덩이에서 누군가에 의해 방울 을 울렸던 것인가. 방울 외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멘시키와 '나'는 방울을 도모히코의 작업실 선반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기사단장 죽이기」의 그림 속의 인물인 기사단장이 60센티미터의 크기로 '나'의 앞에 나타났다. 자신은 이데아이며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존재라고 했다.
지하의 석실을 열어버림으로써 우리는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무언가를 얻었을 겁니다. 과연 무엇을 잃어버리고 무엇을 얻었을까요? (1권, 297페이지)
그림 교실에서 말이 없었던 아리에는 '나'와 단둘이 있으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슴이 작아서 고민이라며, 말벌에 쏘여 죽은 엄마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비 냄새' 밖에 없다고 했다. 고모와 함께 사는 이야기, 「기사단장 죽이기」를 바라보며, '이 그림은 뭔가 호소하고 있어요. 좁은 새장에 갇힌 새가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것처럼'(2권, 23페이지) 이라고 말했다.
소설에서 멘시키는 기묘한 인물로 나온다. 기묘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멘시키와 더불어 아주 평범하지만 새로운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게 되는 '나'와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체다. 마리에의 친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인물로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친딸일지도 모르지만 굳이 밝히지는 않겠다고 말한다. 또한 「기사단장 죽이기」를 그렸던 아마다 도모히코의 과거에 대해서도 정보를 모으는 역할을 한다. 음악적 지식 또한 풍부해 '나'와 함께 클래식을 자주 듣는 인물로 묘사된다.
내가 그것들을 그림으로써 하나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기록자의 역할 혹은 자격을 부여한 걸까? 만약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대체 누구일까? 그리고 어째서 다른 사람도 아닌 이 내가 기록자로 선택되었을까? (2권, 185페이지)

이 작품이 출간된 후 일본 극우파의 공격을 받았다고도 하는데, 이는 소설에서 일본이 나치와의 협력을 했던 역사적인 문제를 짚었던 것 때문이었다. 치명적인, 돌이킬 수 없이 파국으로 치달은 사건이라고 표현했는데, '난징대학살' 이었다. 소설 속 일본화의 대가인 아마다 도모히코의 동생이 관련된 사건이었다. 하루키는 이 사건을 소설 속에서 언급하며 과거 일본의 역사를 말했고 괴이담 『하루사메 이야기』를 직접 인용하여 현실과 판타지를 교묘히 직조했다.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로,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받은 후 산속의 집에서 새로운 형식의 그림을 그리게 되는 현실의 '나'와 환상과 이야기의 세계를 이끄는 마리에라는 인물의 특성은 어쩌면 판타지에 가깝다. 다른 이들은 믿지 못할 경험을 하므로써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부분에서 '나'는 마리에에게서 열세 살에 죽은 여동생 도미를 떠올렸다. 일상적 삶과 환상의 이야기가 조화롭게 이루어져 있었다.
이게 이야기의 힘인가. 문학은 이처럼 역사와 괴이담을 아울러 표현할 수 있으며 환상이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표현할 수 있다. 문학이기에 가능하지 않겠나. 진정한 문학이란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것.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고 삶의 나아갈 방향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 그것이 비록 괴이담일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열어놓을 필요가 있다.
* 전2권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