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이 입문했을때 바둑계에서는 이창호 이후 가장 거센 돌풍을 예고 했었다. 물론 이세돌은 바둑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거센 바람을 일으켰다. 그때까지 지속되던 승단 체계라던가, 한국기원 원로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한국기원의 병패들에 이세돌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왔던 것이다. 그후 이세돌은 세계 기전에서 타이틀을 거머쥐기 시작하면서 바둑계의 승단체계를 바꾸는 계기를 마련했고, 한국기원도 변화된 모습을 보이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런 것들을 볼때 이세돌이 바둑계의 판을 엎은 것이 맞다. 바둑계가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번에 출간된 이세돌의<판을 엎어라>에는 어떤 내용을 담았을까 기대하면서 읽었다. 바둑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 어떻게 바둑공부를 했는지, 바둑 공부를안할때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생활하는지, 어떤 전략을 가지고 세계기전에 임하는지. 많은 것들이 궁금했다. 이세돌은 바둑을 잘 두는 가족의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어린시절부터 기재를 보이던 막내아들을 프로기사로 키워낸 것이다. 프로기사가 되기는 사법고시에 합격하기보다도 힘들다. 문이 좁다. 프로기사로 입단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중 약 20%가량의 기사들만 현역에서 활동한다고 보면 된다. 나머지 80%의 기사들은 후학을 기르는 일에 매진하거나 호구지책으로 바둑과 무관한 다른일을 병행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세돌은 참 행복한 경우라는생각이 들었다. 타고난 기재도 있었고, 절대적으로 자신을 후원해 주는 가족도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이 둘은 부차적인 것이고 본인이 바둑을 좋아하고 바둑공부를 열심히 한 댓가이기는 하다.
[고스트 바둑왕] 이란 만화에서 주인공 신도우 히카루의 라이벌인 도우야 명인의 대화에 이런내용이 나온다.
"아버지 제가 신의 한 수를 찾을 재능이 있을까요?"
"그건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에게는 이미 두가지 재능이 있지않니. 하나는 바둑을 사랑하는 재능이고, 또하나는 신의 한 수를 찾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재능이다."
모든일이 다 그렇겠지만 그일을 사랑하는 것과 그 일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있겠는가!
모두들 이창호 기사를 두고 신산이라고 한다. 끝내기에서 수읽기와 계산에 있어서 신의 경지라는 소리다. 그럼 그런 끝내기에서의 정확한 집계산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누구보다도 많은 시간을 들여연구하고 공부한 결과로 얻은 것이다. 이창호도 바둑을 사랑하는 만큼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해서 세계최고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이세돌은 산을 오를때 죽기살기로 오른다고 한다. 아무생각없이 줄창 정상을 향해 나아가기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집중력의 또다른 모습이라 여겨진다. 바둑을 두다보면 정말 시간이 빨리 간다. 그리고 옆에 불이나도 잘 모를 때가 많다. 바둑판에 집중하느라 딴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뭔가를 얻었다는 생각보다 한 사람의 생활을 잠깐 엿본 기분이다. 이세돌의 연륜이 아직 책을 내기에는 이르지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