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이슬아. 몇 년 전 쯤인가, 얼마 안된거 같은데 '일간 이슬아'라는 말을 SNS에서 많이 접했다. 당시에는 굳이 찾아 읽지 않은 그녀의 글이었는데, 어느날 문득 친구가 공유해준, [접속사 없이 말하는 사랑] 제목의 그녀가 쓴 칼럼을 읽고 그녀의 글이 궁금했다.
'아무튼, 노래'는 순전히 '이슬아'라는 작가의 글이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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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가 만약 '히트곡 제조법'을 제때 선물했다면 그의 운명이 송두리째 바뀌었을 수도 있다. 세 권의 아름다운 책 대신 세 개의 아름다운 히트곡이 쓰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요조의 노래를 떼창할 관객들 몇만 명이 콘서트에 몰려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즈음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무엇이 최선의 인생인지는 결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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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곧은 자세로 병실과 복도를 씩씩하게 걸어 다녔다. 두 평도 안 될 침대 주변을 말끔히 치우고 깨끗이 세수하고 머리를 단정히 묶은 채로 지냈다. 누추하고 어려운 곳에 있을수록 그래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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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구석구석 살고 싶어.
이렇게도 덧붙였다.
대충 살지 않고 창틀까지 닦듯이 살고 싶어.
허전하고 쓸쓸한 날에 그렇게 다짐하는 하마를 이해할 수 있었다. 죽음 곁에서 다져지는 생의 의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와 함께 구석구석 사는 벗이 되고 싶었다."""
다시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어보니 현희진은 튜브 위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 벌써 이 순간이 그리워.
우리는 그런 순간을 알아볼 수 있다. 겪으면서도 아쉽다. 흔치 않아서. 영영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서. 시간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는다. 좋은 곳에서만 멈춰 있을 수는 없다. 현희진은 여기에 쭉 머물고 싶은지 자신이 이대로 더 깊이 떠내려가도 붙잡지 말라고 했다. 내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직은 안돼. 힘차게 그의 튜브를 끌고 해변을 향해 헤엄쳤다. 친구가 표류하거나 죽게 놔두기엔 나는 수영을 너무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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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사 없이 말하는 사랑 만큼이나 담백하게 그녀의 생각을 써내려간 글이, 굳이 감정을 쥐어짜내거나, 수능 영어 마냥 불필요한 수식어를 여기저기 덧붙이지 않아서 좋았다. 이 표현이 옳은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표현에 옳고 그른 것은 없으니, 그녀의 글은 내가 느끼기에 깨끗하다. 뭐랄까 투명하다고 해야할까. 투명한 바닷물에 까만 돌이 바로 보이듯이, 그녀의 글에 그녀가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이 너무도 잘 보여서 군더더기를 불필요하게 걷어낼 필요없이 읽는 내내 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