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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거다

황지우 저
문학과지성사 | 1999년 02월

 

이 세상의 밥 상

                                  황지우

 

병원에서 한 고비를 넘기고 나오셨지만

어머님이 예전 같지 않게 정신이 가물거리신다

감색 양복의 손님을 두고 아우 잡으러 온

안기부나 정보과 형사라고 고집하실 때,

아궁이에 불지핀다고 안방에서 자꾸 성냥불을 켜시곤 할 때,

내 이슬 픔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으랴?

내가 잠시 들어가 고생 좀 했을 때나

아우가 밤낮없는 수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

새벽 교회 찬 마루에 엎드려 통곡하던

그 하나님을

이제 어머님은 더 이상 부르실 줄 모른다

당신의, 이 영혼의 정전에 대해서라면

내가 도망쳐나온 신전의 호주를 부르며

다시 한 번 개종하고자 하였으나

할렐루야 기도원에 모시고 갔는데도 당신은

내내 멍한 얼굴로 사람을 북받치게 한다

일전엔 정신이 나셨는지 아내에게

당신의 금십자가 목걸일 물려주시며,

이게 다 무슨 소용 있다냐, 하시는 거다

당신이 금을 내놓으시든 십자가를 물려주시든

어머님이 이쪽을 정리하고 있다고 느껴

난 맬겁시 당신께 버럭 화를 냈지만

최후에 심자가마저 내려놓으신 게 섬뜩했다:

어머니, 이것 없이 정말 혼자서 건너가실 수 있겠어요?

 

전주예수병원에 다녀온 날, 당신 좋아하시는

생선 반찬으로 상을 올려도 잘 드질 않는다

병든 노모와 앉은 겸상은 제사상 같다

내가 고기를 뜯어 당신 밥에 올려드리지만

당신은, "입맛 있을 때 너나 많이 들어라" 하신다

 

목에 가시도 아닌 것이 걸려 거실로 나왔는데

TV에 베로나 월드컵 공이

살아서 펄펄 날뛰고 있다.

 

 

좋은 시 앞에서는 그냥 읽고 느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같습니다.

시인 황지우님의 시를 <인생의 역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젊은 시절과 광주민주화 운동과 시를 읽었지요.

광주는 제게 부채감으로 다가옵니다.

시라도 읽어야 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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