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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저
문학과지성사 | 2000년 06월

바람의 집

-겨울 판화 1       기 형 도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이면 어머

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끝으로 시퍼런 무를

깎아주시곤 하였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조

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

다. 자정 지나 앞마당에 은빛 금속처럼 서리가 깔릴 때까지 어

머니는 마른 손으로 종잇장 같은 내 배를 자꾸만 쓸어내렸다.

처마 밑 시래기 한 줌 부스러짐으로 천천히 등을 돌리던 바람

의 한숨. 사위어가는 호롱불 주위로 방 안 가득 풀풀 수집 장

입김이 날리던 밤, 그 작은 소년과 어머니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네가 크면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만 하는 어른 세상에서

울음도 쉽지 않지만 그때 그 취위만은 여전합니다.

나의 배를 사랑의 마음으로 쓸어주시던 어머니의 손길처럼

누군가의 따뜻한 사람이 되는 하루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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