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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위한 이븐바투타 여행기

[도서] 10대를 위한 이븐바투타 여행기

김승신 저/정수일 감수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청소년이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다시 쓴 이븐 바투타 여행기

세계 4대 여행기 중 하나이자 가장 위대한 여행가의 탁월한 여행기! 라는 책 소개,

 

 더하기

이븐 바투타는 꼼꼼한 기록자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방문지의 특이한 풍습을 상세히

적어 놓았다. 가장 놀라운 점은 그 시대 종교의 벽을 넘어선 교류다. 현재도 첨예한 문제

로 남아 있는 종교 간의 갈등이 14세기엔 어떤 모습이었는지 여행기에서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지은의 말 중에서-

 

여행 경로를 시간 순으로 따라가보면

성지순례를 떠나다, 마그리브에서 이집트까지 1325-1326

성지에 도착하다 : 샴과 히자즈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서, 이라크와 페스시아 1327

아프리타 동부를 가다, 홍해 연안과 아프리카 동부 1331

룸지역을 돌아보다, 소아시아 1333

킵차크 칸국과 콘스탄티노플에서의 색다른 경험, 술탄 우즈베크 지방과 동유럽

동서문화의 요충지를 지나다, 중앙아시아

인도 법관에서 묘역 관리인, 그리고 중국 사신이 되다, 인도에서의 8년 1342년

중국으로 가는 험난한 길, 델리에서 물루크까지 1344

바닷길을 따라 중국으로 가다, 실란에서 중국까지 1344년부터

세게에서 가장 풍족한 나라, 중국 1345-1347

마르리브로 동아오다, 중국에서 모로코까지 귀향길 1347-1349

스페인과 아프리카로 떠난 마지막 여행, 안달루스와 수단 1351-1354

 

이븐 바투타는 누구인가?

이븐 바투타는 1304년 2월 아프리카 서북부 모로코의 퇀자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베르베르계의 리와타 부족 가문으로, 본인은 물론 사촌도 법관을 지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법조계 집안이라 할 수 있다.

  30여 년 동안의 여행 과정을 제외하고 이븐 바투타의 생애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유년기에 전통적인 이슬람 교육을 받아 독실한 무슬림으로 성장했고, 20살의 젊은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성지순례와 이슬람 동방세계 탐구의 대장정에 나섰다. 철두철미하게

이슬람 문화 속에서 교육받은 샤이흐이자 법관으로, 30여 년간 여행하면서 네 차레나 성지

메카를 순례했고, 여행 내내 샤이흐의 신분으로 예우를 받으며 다른 이슬람 국가들의 명사

들을 만났다. 법관이자 샤이흐의 신분이었기에 인도의 델리와지바툴 마할에서 법관을

지냈고, 인도 델리 술탄의 특사로 중국 원나라 순제에게 파견되기도 했다.

  오랫동안 여행하고 귀향해서 여행기들 쓴 뒤의 행적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모로코에 있

는 한 마을에서 재판관으로 활동하타가 1368년경 사망하여 그의 고향인 탕헤르에 묻혔다

고 전해진다. 13쪽

 

  이븐 바투타 여행기의 원제목은 [여러 지방의 기사와 여러 여로의 이적을 목격한 자의 보록]

이며 동방견문록은 [세계에 관한 서술]이다.

  13세기 동방견문록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그러나 당시 유럽 사람들은

마르코 폴로를 두고 밀리오네라고 불렀다. 그가 입만 열면 백만, 백만이라 말햇기 때문에 일종의

허품선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마르코 폴로는 중국 항저우는 세상에서 가장 세련되

고 찬란한 도시이며, 양쯔 강의 통행량은 유럽의 모든 강과 바다를 합친 통행량보다 많다고 말했

다. 마르코 폴로가 17년간 쿠빌라이 칸의 궁전에서 일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허풍쟁이로 본

유럽 사람들은 그가 말한 몽골제국의 규모와 풍요로운 경제 상황을 반신반의하며 막연한 동경을만

받아블였다. 그러나 14세기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를 접하면서 이븐 바투타가 다녀온 길과 동방의

풍족함을 어느 정도 확신하면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몽골제국이 버틱 있던 육로가 아닌

해로를 통해 아프리카 희망봉과 인도 항로 개척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234쪽

 

본문을 보면 이븐 바투타 여행기의 진면목이 보일 겁니다.

 1.

  왕도 무트라의 거리는 넓었다. 이 도시는 델리와 비교되며 건설되었는데 건물은 오히려 델리보다

더 좋았다. 내가 그곳에 갔을 때는 전염병이 들끓어 많은 사람이 비참하게 떼죽음을 당하고 있었다.

이 전염병에 일단 걸리기만 하면 하루 이틀 만에 목숨을 잃기 일쑤이고, 기껏해야 나흘을 넘기지

못했다. 밖에 나가면 눈에 띄는 것은 환자나 시체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술탄의 아들에 이어

숲탄의 어머니까지 죽었고, 끝내 술탄도 승하했다. 혹시 반란이 ㅇ리어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술

탄의 조차 나쉬룻 딘이 뒤를 이었다.

  나쉬룻 딘은 전 술탄이 결정한 대로 지바툴 마할 제도로 갈 선박들을 다시 챙기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그때 나는 치명적인 열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다행히도 사흘 동안 설사가 난 뒤에

병은 완쾌되었다. 한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니 갑자기 그곳이 싫어진 나는 마침 예멘을 떠나는

선박이 있어 그 배에 올라탔다.

  그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카울람이다. 병이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여서 나는 이곳에서 3개월 정도

더 머물렀다. 244쪽 

 

2.

  중국은 물자가 풍족하고 아름다웠지만 내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이교도의 풍조가 어찌나 강한지

집만 나서면 비행이 눈에 띄어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필요한 일이 있을 때를 빼고는 집

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그렇게 칸잔푸에서 15일을 머문 뒤 다시 배를 타고 17일 걸려 한사에 도착

했다.

  한사는 내가 본 도시 중에 가장 큰 도시였다. 길이만도 3일 거리로 시내 관광을 하려면 도중에 숙

박을 해야 할 정도 였다. 도시에는 중국식 건축양식의 건물들이 서 있었다. 한사는 6개 소도시로 이

루어졌는데, 도시마다 담장이 쳐져 있고 전 도시를 하나로 에워싼 성벽도 있었다.

  첫 도시엔 위수병과 위수사령관이 거주한다. 유대 인의 문이라는 성문을 통과하면 제2도시가 나

오는데, 이곳에는 유대 인, 기독교인, 그리고 태양을 숭배하는 투르크 인들이 살았다. 단, 수장은

중국인이다. 제3의 도시엔 무슬림이 살았다. 이곳은 다른 무슬림 지역처럼 잘 정돈되었고, 사

원이 많았으며 예배시간을 알리는 사람들이 살았다. 나와 일행은 이곳에서 15일을 머문 뒤 제4도시

로 들어섰다. 264쪽

 

3. 룸인과 내가 황급히 말에서 내려 인사를 건냈다. 그러자 술탄의 아버지는 "나는 예루살렘에

들어가 본 손과 현석전과 쿠야마라는 대성당, 그리고 바이트 라함을 밟아 본 발을 한번 잡아 보

고 싶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손을 나의 발 위에 놓았다가는 그 손으로 얼

굴을 문질렀다. 이교도인 내가 그런 곳에 들른 것을 그토록 존중해 준 것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

었다. 162쪽 캅차크 칸국과 콘스타티노플에서의 색다른 경험 중에서

 

4.

바그다드는 이미 그 부음이 전해졌으니

세월의 풍상에 허물어진 그 참경 슬피 우노라

티그리스 강은 전화에 휩싸여도,

불길만 잡히면 곳곳이 우아했건만

이제 그 찬란했던 과거로 돌아가려 한들,

바라는 그 마음엔 실망만이 자리하네.

마냥 일찌감치 청춘을 보내어

천부의 아름다움 날려 보낸 노구처럼.

  도시의 변모에 관해, 시인 아부 타맘 하비브 본 아우스가 92쪽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서 중에서

 

5.

  이른 아침 출발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우리는 반나절이나 늦게 아부 하르를 떠났다. 일행

22명은 모두 말을 탔는데 그중엔 아랍 인도 있고 외국인도 있었다. 그런데 일행이 사막에 이르

렀을 때 난데없이 이교도 80명과 기병 2명이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나의 동료들은 모두가 용감

무쌍하여 그들과 한판 격전을 벌였다. 일행은 기병 중 한 놈을 사살하고 그의 말을 빼앗았으며

이교도 약 12명을 죽였다. 나는 어쩌다 화살 한 발을 맞았지만 다행히 무사했다. 하지만 내가 탄

말에 화살이 꽃혀 결국 빼앗을 말로 바궈탈 수밖에 없었다. 부상당한 내 말은 투르크 친구들이

먹어 버렸다. 도적들의 잘린 머리들은 아부 하르 성벽 위에 걸어 놓았다. 187쪽 인도 법관에서

묘역 관리인, 그리고 중국 사신이 되다 중에서  

 

6.

  나는 나를 목에 태워 준 이방인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 알라의 현인 아부 압둘라 알

무르쉬드가 내게 한 말이 떠올랐다. 그는 내게 인도 땅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그의 형제인 달샤드

가 구출해 줄것이라고 했다. 그제야 나는 이방인의 이름 깔불 파리흐가 페르시아 어로 달샤드 인

것을 깨닫고, 그가 현인이었던 아부 압둘라 알 무르쉬드의 동생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216쪽

중국으로 가는 험난한 길 중에서

 

  기적과 이적도 많았지만 열병과 전쟁, 강도와 풍랑을 겪으면서 여행을 한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

를 읽으면서 그가 여행을 한 이유가 계속 궁금했습니다. 모르코 출신 무슬림인 이븐 바투타의 여

행은 시간을 내서 다시 찬찬히 읽을 만한 글이자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여행기였습니다.

 

 

리뷰어클럽을 통해 두레도서에서 책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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