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작가 희수, 세상을 등지다...
희수는 표절작가라고 알려졌다. 한 작품이 아니라 두 작품에 걸쳐 "표절작가"가 되었다.
첫번째 표절 시비에 휘말리면서 2년 후, 출판사 편집장의 권유로 딸과 함께 시골로 들어가 버렸다. 새로운 작품을 쓰기 위해서였다.
낡아서 더 음습해 보이는 "베이츠 선교사 관"으로 들어선 희수는 온 첫날부터 어딘지 모르게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써지지 않는 작품. 자꾸만 "이상한 언니가 있다"라고 떠들어대는 딸. 이혼을 원하는 남편. 표절작가라는 세상의 손가락질. 이 모든 것이 희수를 히스테릭컬하게 몰아간다. 쓸 수 없다는 사실. 희수는 그것이 가장 힘들다. 이런 희수는 점점 변해간다. 결국 그녀는 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심연]을 써내지만 곧 심연은 두번째 표절시비에 휘말린다. 벌써 20년전 쓰여진 작품과 똑같다는 판정을 받는다.
희수의 심적변화 : 딸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딸의 이야기에 매료된다===>딸의 죽음과 표절을 인정해야하는 현실과 마주치다
죽은 가족이 들려준 이야기....
첫번째 표절시비가 휘말리고 희수가 정신없이 지내는 사이 딸이 감전사했다. 이 모든 현실을 견디지 못한 희수의 눈 앞에 딸이 나타났다. 베이츠 선교사 관에서 딸은 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희수에게 늘어놓았는데, 이는 20년 전 한 작가가 자신의 죽은 아내가 들려준 이야기라며 쓴 책과 동일했다. 무엇이 두 작가로 하여금 똑같은 글을 쓰게 한 것일까. 각자의 죽은 가족이 알려준 스토리. 왜? 이런일이 그들에게 일어난 것일까.? 작가의 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은폐된 "진실"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이 모든 물음은 1988년에 이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 실화라는 것에 있었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최수진". 마을을 떠나려는 그녀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녀를 죽이고도 전혀 죄책감이 없었던 4인방. 고향을 떠나 살던 3명이 돌아오고 4명이 뭉치면서 그들은 두려움도 죄책감도 없이 또 누군가를 죽이려 들고 있었다.
남편의 변화 : 아내를 믿지 않는다===>이혼만을 원한다==>아내가 걱정되기 시작한다==>나는 믿어줘야하지 않을까?
희수와 남편을 보면서 둘 사이에 딸이 있는데 어떻게 저렇게 매정하게 돌아서며 이혼만을 고집하는 것일까?라며 그녀의 남편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그가 아내의 "표절"때문에 명예가 땅에 떨어지고 번번히 교수임용에서 떨어지는 것 때문에 딸과 아내를 다 버리려고 하는 행태가 이해의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딸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되고 나서 그녀의 남편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 또한 딸을 잃고 아내를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점점 망가져 가는 아내를-.
베스트셀러를 통한 변화...
희수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러나 한 순간에 세상은 그녀를 표절작가로 몰아부친다. 전혀 투명했던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심사위원이었던 공모전에서 의도했던 그렇지 않던 간에 한 작가의 작품이 모방되었다. "반드시 재기해야 된다"라는 집착이 그녀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영화가 중반을 향해가는 동안 희수는 계속 소리친다.
남편에게, "당신은 날 믿어야지." 딸에게 "언니 얘길 해봐." 세상을 향해 "표절이 아니야" 라고 소리친다.
그랬던 그녀가 변했다. 사건이 세상에 밝혀지면서 희수는 자신과 세상을 향해 솔직한 고백을 내뱉는다. 남편은 다시 그녀의 곁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끝난 뒤의 세상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일부러 깜짝깜짝 놀라게 할만한 장치가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아쉬움은 남는다. 인과관계의 명확성과 권선징악적인 결말이 주는 지루함은 있다. 하지만 불필요한 깜짝 놀람을 배제한 아주 성숙한 미스터리 스릴러의 흔적은 반가운 일이다. 이유없이...라는 것만큼 성의없는 변명이 또 있을까. 그 점에서 이 작품은 아주 잘 만들어졌다. 긴박하게 몰아가는 긴장감이 약간 덜하다는 것 외에는 관객으로서 별다른 불만없이 보기 좋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