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원 인생: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는 한겨례 기자 4인이 쓴 책이다. 기자 4명이 한 달 동안 직접 취업을 해 노동현장을 몸소 겪어보고 쓴 이야기들로, 2010년에 나온 책이다. 비록 오래 전에 나온 책이지만 지금이라고 우리의 노동 현실이 이로부터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의문이다. ‘4천원 인생’이란 제목은 당시 시급이 4천원도 안 되었기에 붙은 제목이다.
임지선은 식당에 취직해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노동을 다루었다. 여성들은 사회적 약자인데다 돈을 버는 책임으로도 부족해 집에 가서는 또 가사노동에 자신을 바쳐야 한다. 남성에 비해 사회적으로 받는 차별도 심하고, 받을 수 있는 임금도 적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다.
안수찬은 마트의 정육코너에서 일을 하며 마트 노동자들의 현장을 다루었다. 마트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은 마트에 고용된 것이 아니라, 마트에 입점해 있는 소규모 업체들에게 고용돼 있다. 대부분이 젊은 그들은 종일 서서 일해야 하고, 가난의 대물림과 집안 형편에 의해 그곳으로 밀려난 이들이 대부분이다.
전종휘는 가구 공장에 취업해,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 실태를 다루었다. 대부분이 미등록이라 언제든 추방당할 위험에 놓인 그들은 한국인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다. 한국인들이 하려고 하지 않은 궂은일들을 도맡아 하면서도, 본국에 두고 온 가족들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기에 그 힘든 현장을 떠날 수가 없다.
임인택은 파견 노동의 실태를 다루었다. 인력회사에 고용돼 한 공장으로 파견을 간 그는 자신처럼 파견돼 온 수많은 노동자들의 노동 현장을 목격했다. 임금이 턱없이 적고, 일은 고되지만, 그런 일이라도 기꺼이 하겠다는 가난한 자들이 많기에 그 많은 공장들은 파견노동자를 쓰고 버리듯 고용한다.
≪4천원 인생≫을 읽고 나 자신을 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우리는 이미 ‘배아’ 단계에서 삶이 결정된다는 이야기를 읽고 그 허망함에 웃음이 났는데 이 책을 보며 그 말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느냐가 우리의 삶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는 건 아프지만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들’은 집안의 생계를 위해 저임금 노동에 기꺼이 뛰어들 수밖에 없다.
나는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직업을 선택할 때, 모두가 그 직업을 원하고 좋아서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누군가는 생계 때문에 위험한 일이어도 위험을 무릅쓰고 그 일을 하고, 또 누군가는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그것을 참고 견딘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 일을 그만둘 수가 없는 것이다. 다니던 직장을 과감하게 때려치울 ‘용기’는 누구에게나 허락된 것이 아니다.
≪4천원 인생≫을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우리 사회의 착취의 구조다. 식당 아주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휴가도, 제대로 된 임금도 안 주고 일을 부려먹는 ‘사장’은 나쁜 놈이다. 하지만 자영업자는 그렇게라도 비용 절감을 해야 가게를 유지하고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그조차 누군가를 착취하지 않고서는 살기 힘든 것인지, 아니면 더 많은 이윤을 취하려고 그러는 것인지는 그 입장이 아니라서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 건가 생각하면 한없이 슬퍼진다. 우리 사회는 최저임금이 조금만 올라도 자영업자와 기업들이 다 망할 것처럼 난리법석을 떤다.
또 안타까웠던 것은 이러한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다. 미등록 외국인이라고 함부로 대하고 월급을 적게 주고, 버젓이 사회에서 생산의 몫을 해내는 데도 영주권은커녕 의료보험의 혜택조차 주지 않는다. 그까짓 몇 푼 내고 밥 먹는다고 식당 아줌마를 무시하고 함부로 부린다. 공장에서 위험한 물질을 다루며 건강을 잃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이는 못 배우고 공부 열심히 안 했으니 그들이 돈을 적게 받고 그런 일을 해도 마땅하다고 여긴다. 가지지 못한 자끼리 서로 연대하지 못할망정 그 안에서 또 착취하고, 괴롭힌다는 것도 안타까웠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대안이 무엇이냐 물었다고 했다. 대안이 뭘까? 정치가 바뀌어야 하는데, 노동하는 이들의 투표권은 힘이 없다. 그들은 먹고 사느라 바빠 투표할 시간조차 없고, 정치에 관심을 가질 시간조차 없다. 결국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조금이라도 나은 형편의 ‘우리’가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
사회안전망이란 매우 중요하다. 누군가가 경제적 위기에 몰렸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고, 버티게 해 주는 거다. 그 사람이 일순간에 경제적 나락에 떨어져 범죄, 자살, 부당한 저임금의 굴레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것. 그것이 가장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한 만큼 정당한 임금을 받고, 법으로 보장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것들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노동하는 이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데, 노동하는 이들이 행복한 세상은 정녕 현실에서 불가능하기만 한 걸까? 많은 질문을 남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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