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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을 홍 세트

[도서] 붉을 홍 세트

김정화 저

내용 평점 3점

구성 평점 3점

 

 

 

 

저 계집이 욕망한 것은 생(生)이다.

2권/166p

 

 

 

「조선의 맨 밑바닥, 기생 중에서도 천하디천한 창기(娼妓)」

「조선의 맨 꼭대기, 사대부 중의 사대부라는 귀한 공자(公子)」

 

 

조선이라는 엄격한 신분제도의 나라에서, 도저히 섞일 수 없는 가장 낮은 곳의 여인과 너무 높은 곳의 도령이 하필이면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저 적당히 사랑하기에는 지나치게 도도했던 두 사람은 끝없이 부딪히는 수많은 벽과 경계를 참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을 둘러싼 모든 경계와 규범을 깨트리고 싶었다.

사랑하였으므로.

 

 

하필이면 조선 땅에 여자로, 가난한 양인으로, 결국에는 창기로 삶을 살아내야 했던 여인 홍은 다른 세상을 꿈꿨다.

하얗게 폭설로 뒤덮인 겨울의 어느 날 마주친 한 사내로 인해, 그녀는 신분이 없는 세상을 꿈꿨고, 스스럼없이 욕망을 드러낼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그 사내 앞에 오직 홍으로, 그 무엇도 아닌 여인 '홍'으로 마주 서고 싶었기에.

 

사내는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자신이 소망하는 것을 이룰 자유를 갖지 못했다.

높은 신분에 많은 재산을 지녔지만, 꿈은 좌절되고, 숨 막히게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는 어머니를 견딜 수 없었다.

중전의 남동생이라는 자리는 꿈을 잃게 했고, 독단적인 어머니의 사랑은 그를 삐뚤어지게 했다.

그렇게 전주로 쫓겨내려온 사내 앞에 운명처럼 나타난 여인, 홍.

하지만 그녀는 아무 사내에게나 몸을 파는 창기가 될 동기였다.

참을 수 없게 가지고 싶었지만, 하찮은 계집은 한 번도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한양에서 수많은 기방을 들락거리며 난봉꾼으로 살았던 사내는 처음으로 낯선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이것은 욕망일까, 연모일까.

 

 

 

 제가 팔려 온 곳이 하필 기방이라는 것 따위 상관없었다. 월야관이 창기나 다름없는 은근짜들의 기방이라는 것 역시 아무렇지 않았다. 참을 수 없는 것은 홍, 자신이 제 삶의 주인이 아니라는 잔혹한 사실이었다.

1권. 195페이지

 

 

 

가장 낮은 신분을 가진 여인, 홍은, 누구보다 뜨겁게 생을 소망했다.

무엇도 뜻대로 할 수 없고, 누구에게든 짓밟히는 천한 생이 아닌, 귀하고 귀한 생을 원했다.

높아지는 것이 아닌, 다 같이 평등해지는 생을 간절히 원했다.

조선에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뜬구름 같은 꿈을 잡으려 했다.

 

귀천이 없는 세상.

그것은 감히 조선에서는 꿈꿀 수조차 없는, 내뱉는 것조차 죄가 되고 마는 위험한 욕망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높은 신분을 가진 사내에게 말한다.

내가 천한 신분인 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 당신이 천해 질 수는 없는 거냐고.

당신과 내가 다를 게 도대체 무엇이냐고.

나는 내가 귀하다고. 당신이 귀한 것처럼.

 

사내는 그녀를 만나 변화하기 시작한다.

조선의 사대부로써 살아온 삶으로는 도저히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것들,

감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될 것 같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그녀로 인해 꾸게 된다.

그녀와 함께 하는 세상에는 반드시 자신도 그녀도 지금의 굴레를 벗어던져야만 했으므로.

 

부서지고 깨지고 구르면서, 그들은 그들만의 새로운 세상을 향해 달려간다.

그 앞에 무엇이 그들을 넘어지게 하고 고통스럽게 할지 알지도 못한 채 오직 사랑만을 믿고 나아간다.

홍에게 새로운 세상을 주기 위해.

 

 

 

 

 

이 책은 세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1권과 2권은 『독을 품은 꽃』이라는 명제로 묶여있고, 3권은 『콩쥐팥쥐 잔혹사』라는 독특한 소제목을 달고 있다.

갑자기 콩쥐 팥쥐 잔혹사가 왜 튀어나오나, 나처럼 궁금한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미루어 짐작하게 될 것이다.

어쩐지 3권에는 콩쥐 팥쥐의 이야기가 비틀려 나오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글을 읽다 보면 이 이야기가 어떻게 콩쥐팥쥐전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의아해지기도 한다.

1권과 2권까지는 거의 대부분이 사건보다 인물의 심리묘사가 주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을 담고 있는 두 권의 책은, 두 인물의 내밀한 심리묘사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의 끊임없는 생각과 가치관의 충돌, 서로를 향한, 혹은 생을 향한 갈망과 욕망, 그리고 숨겨지지 않는 사랑.

그런 생각과 고민들로 가득 채워진 1, 2권은 읽고 있노라면, 3권이 혹시 생뚱맞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마저 슬며시 든다.

하지만 놀랍게도 3권에서 비로소 사건과 사건이 만나고, 음모와 진실이 밝혀지는 동안 너무도 자연스럽게 콩쥐와 팥쥐의 이야기도 함께 진행된다.

외따로 떨어지지 않고, 이질적으로 겉돌지 않으면서, 우리가 알던 콩쥐 팥쥐 이야기는 기묘하게 비틀린다.

왜 3권만 소제목이 다른 건지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주는 글의 내용이 한편, 신기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분명히 다른 이야기였었는데, 어느 순간 같은 이야기더라는 말씀.

1,2권과는 다른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3권이었다.

 

 

 

 

 

굉장히 공들여 잘 쓰인 글이라는 것이 문장마다 느껴지는 글이었다.

시대물의 분위기를 한껏 살린 문체나, 풍경의 묘사 같은 것들이 읽으면서 참 좋구나 싶었다.

눈앞에 그 겨울이 그려지는 것만 같아서, 자꾸만 한옥에 앉아 겨울 눈이 보고 싶어졌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는 아마도 여주인공인 홍이 아니었을까.

현대에서도 가장 극렬하게 페미니즘을 외칠 것 같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것 같은 그녀는 사실 조선시대와는 참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생각과 사상이 조선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현대적이라 마치 현대의 인물을 조선 시대의 가장 낮은 계급에 구겨 넣어 놓은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경험조차 해보지 않은 자유를 그녀는 알고 있었다.

신분의 차이가 엄격했던 시대라 남들은 높아지기를 원할 때, 그녀는 같아지기를, 모두 함께 평등해지기를 원했다.

자유와 평등,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고 당연한 생각이지만 과연 담장 너머도 꿈꾸기 힘들었던 조선시대의 여인에게도 그런 당연함이 주어졌을까.

 

물론 그 시대에도 분명 그런 꿈을 꾸었던 여인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홍처럼 선명하고 정확하게 시대의 틀에 조금도 얽매이지 않고 생각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마치 잔다르크 같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을 위해서 칼을 뽑아들고, 오직 자신의 생을 위해서 기어코 그것을 쟁취해 내고야 마는 스스로를 위한 잔다르크.

 

 

시대의 흐름을 드라마도 영화도 반영한다.

남자에게 더 이상 기생하지 않고, 스스로의 걸음으로 삶을 쟁취해내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신데렐라는 왕자님 덕분에 행복해졌지만, 뮬란은 스스로 칼을 들고 싸워 행복을 이뤄냈다.

2019년판 알라딘의 자스민은 스스로 역경을 극복하기 위한 다짐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부른다.

가장 꽉 막힌, 여자들에게 가장 가혹했던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쓴 로맨스 소설에서도 이제는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여주인공이 당연해지는 시대에 도착했다.

조선 시대를 생각하면 불가능해 보이지만, 뭐 어떤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런 여자들의 삶의 행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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