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몇 년이 되고 몇 년이 평생이 되었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남은 세월보다 지난 세월이 더 많은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P.293
어느 날 아침 눈 떠보니 나만 두고 세상이 저만치 가버렸다는 게 도저히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물론 브릿마리 여사는 60대이고, 자신의 틀 안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부지런히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거기에 비해 나는 턱없이 어리고(어쩌면 턱없이까지는 아닐지도), 수수방관 시간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고 살아왔다는 게 좀 다르기는 하지만, 어쨌든 지나버린 시간에 당혹스러운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요즘 들어 그렇다.
나만 두고 세월이 흘러가버린 것만 같다.
이십 대 어디 언저리쯤에서 내 나이를 자각했던 게 마지막인 것만 같은데 ... 중년이다.
무엇을 하며 살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사실 딱히 할 말이 없다.
그 사이에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느라 바빴다고 변명할 수도 있지만, 그마저 열심인 적은 없었다.
그냥 시간이 나를 떠미니까, 떠미는 대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걸어온 것만 같다.
나에게서 가족을 떼어내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가끔 그런 질문이 나를 찾아오던 때에 이 책을 만났다.
오랜 시간 가족을 위해 살았던 브릿마리 여사가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 낯선 걸음을 혼자 걷게 된 시간들을 담은 책을.
그녀는 그러니까 자기만의 확고한 신념(?)을 가진 꼬장꼬장한 강박증 할머니다.
과탄산소다를 거의 신봉하고, 팩신(세제)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심각한 청소 중독자.
마치 그 청소로만 자신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청소에 집착한다.
수십 년 동안 집이 그녀 자신인 것처럼 살아왔다.
사회성이 떨어지고 유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남편의 말에, 그렇지 않아도 모험을 좋아하지 않는 그녀의 성향은 더 굳어져 점점 더 외톨이가 되어갔다.
실제로 누군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엔 그녀는 지독한 편견 덩어리였다.
스스로를 편견 없는 사람이라고 굳건하게 믿고 있지만, 자기만의 신념을 신봉하는 사람이 편견을 가지지 않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녀에게는 그녀만의 세상이 존재한다.
과탄산소다를 들이부은 깨끗하고 빛나는 그녀만의 평화롭고 온전한 세상이.
모든 결혼 생활에 단점이 있는 이유는 모든 인간에게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살다 보면 그 사람의 약점들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다스리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예를 들어 그 약점들을 무거운 가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으면 그걸 피해 가며 청소하는 법을 터득한다. 환상을 유지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 먼지가 쌓이겠지만 손님들 모르게 지나갈 수 있기만 하면 참고 버틸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가 허락도 없이 가구를 옮겨버리면 모든 게 만천하에 드러난다. 먼지와 긁힌 자국. 쪽매널 마루에 영원히 남음 흠집. 하지만 그쯤 되면 이미 되돌릴 방법이 없다.
P.173
어느 날 찾아온 남편의 심장마비가 그녀의 마음속 가구를 옮겨 버렸다.
가구 밑에 쌓인 먼지를 간신히 모른척하며 버티던 일상이 무너져버리자 그녀는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더 이상 이 집에는 그녀의 존재를 알아채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으니까.
오랜 세월 살림만을 해 온 그녀가 갑자기 일자리를 찾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그녀 특유의 꼬장꼬장함으로 말도 안 되는 일자리를 찾아낸 그녀는 얼마 뒤 폐쇄될 거라는 레크리에이션 센터를 찾아 보르그에 간다.
그녀에게는 일자리가 꼭 필요했다.
그게 말이 되든 안 되든, 보수가 적든 많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존재한다는 증명을 해 줄 곳이 필요했을 뿐이다.
갑자기 자신이 죽더라도 누군가 알아채 줄 곳이 필요했다.
그녀가 여기 있다는 것을.
보르그는 망해가는 도시였다.
경제 위기로 많은 사람들이 해고됐고, 일자리를 찾아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빈 가게와 매물로 내놓은 집들로 가득 찬 텅 빈 도시.
그녀는 그곳에서 남편이 없는 삶을 살기로 한다.
그녀만이 존재하는 시간을.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겠지만, 그녀의 첫 시작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망해가는 도시라니,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장소가 있다면 아마 그곳 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곳에서도 변하지 않은 일상을 산다.
과탄산소다와 청소가 있는 일상을.
그렇지만 그녀는 남편이 아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새로운 관계는 새로운 시간을 선물하고, 새로운 시간은 새로운 삶을 이끌어 낸다.
변할 것 같지 않은 그녀의 일상에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무엇이든 사라지고, 저물어 끝나버릴 것만 같던 마을에도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어떤 곳에서도 저물 수가 없다.
존재만으로도 그들은 이제 막 피어나고 있고, 여전히 떠오르고 있는 해였으니까.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인 브릿마리와 축구를 하는 아이들.
그들은 그렇게 만나,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
브릿마리가 브릿마리를 깨고 나올 수 있도록.
자꾸만 어두워지는 브리스에 아침 해가 떠오를 수 있도록.
아이들은 브릿마리를 끈질기게 노크하고, 브릿마리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아침으로 걸어간다.
브릿마리는 그렇게 하나의 세상을 깨트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왔다.
그녀는 우리의 현재 모습을 결정하는 게 개개인의 선택인지 아니면 환경인지, 새미는 어쩌다 모든 일에 관여하는 성격이 되었는지 자문해본다. 뛰어내리는 성격으로 사는 것과 그렇지 않은 성격으로 사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최대한 값진 삶이 될지 궁금해한다.
P.413
"브릿마리 씨가 저의 눈부신 이야기예요."
P.405
책을 읽다가 정말 울컥해서 눈물이 났던 한 줄이다.
이 문장에 나처럼 코 끝이 시큰해진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
서로의 삶을 쓰다듬어 주고 싶다.
누군가가 누군가의 삶을 쓰다듬어 주는 순간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나도 그런 아름다운 손을 갖고 싶다. 또한 받고 싶다.
나는 브릿마리 여사와는 다르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같다.
뛰어내리는 삶을 살아보지 못했고, 매번 늘 거기에서 멈추는 삶을 살아왔다.
호기심보다 두려움이 더 컸고, 낯섦보다 익숙함을 더 사랑했다.
끝없이 바다로 흐르는 강물이 아니라 한곳에 고요히 멈춘 연못 같은 삶이 익숙한 사람이다.
그래서 가끔 이 연못이 썩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브릿마리 여사는 60대가 넘어서 기어코 그 삶을 깨고 나왔다.
나는 나를 깨고 나오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