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있거나, 읽었거나, (영화로) 봤거나, 들었거나 했을 만한 책. 『오만과 편견』
나도 영화로 이미 봤던 작품이다.
안타깝게도 책을 사놓고 읽지 않고 뒀기에, 내가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영화뿐.
그래서 문체나 문장을 비교하는 건 애초가 불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먼저 했었다.
그럼에도 오만과 편견의 '오마주'인 이 글이 너무도 궁금했다.
내겐 영화 속 눈빛과 표정으로 이 작품이 깊게 남아있기 때문에.
우선 '오마주'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사실 나는 '오마주'라는 것에 대한 아주 정확하고 깊이 있는 해석을 할 줄 모른다.
내가 읽어 본 '오마주' 작품은, '막스 티볼리의 고백' 단 한 권뿐이다.
그 책마저도 사실 원작이 따로 있다는 걸 전혀 모른 채 읽었었고, 추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이 원작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심지어 처음엔 내가 읽은 책이 원작인 줄 알고 표절인 거냐며 혼자서 흥분했던 흑역사가 있다. ㅠ_ㅠ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가 그 유명한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이며, 그의 단편 또한 유명하다는 걸 알고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 (진짜 쥐구멍에라도 찾아들고 싶다. ㅠ_ㅠ)
아직도 원작인 그의 단편집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아는 책은 '막스 티볼리의 고백' 한 권뿐이지만, 그냥 미루어 짐작하기에 짧은 단편인 걸로 알고 있는 피츠제럴드의 책에 비해 몇 배는 두꺼운 장편인 '막스 티볼리의 고백'은 뼈대와 스토리 라인은 같아도 원작과는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짧은 단편 속에서는 감춰져 있던 섬세하고 치밀한 심리묘사 같은 것들을 아무래도 두꺼운 장편 속에서는 좀 더 세밀하게 엿볼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오마주'가 뼈대와 기본 설정들을 가져와 새로 쓴 글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게 그만큼뿐이라서.
한데 이 책은 뼈대와 설정을 넘어서, 에피소드와 대사, 지문까지 같거나 비슷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처음엔 사실 좀 놀라웠다.
'오마주'라는 게 이런 것인가 보구나, 하고.
이제 책으로 돌아가 보자.
이 책은 세계적인 명작 중 하나인 '오만과 편견'의 오마주인 작품이다.
낯선 외국이 배경이었던 글을 좀 더 친밀하고 이해하기 쉬운 우리나라의 조선시대로 끌고 와 이야기가 펼쳐진다.
배경이 바뀌면서 많은 것들이 바뀐다.
집 밖 출입이 힘들었던 조선시대의 여자가 주인공이 되다 보니, 그들이 만나 오만함과 편견 어린 시선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황 자체가 자유롭지 못했고, 함부로 여성을 희롱할 수 없었던 사대부의 남자가 주인공이 되다 보니 행동거지 하나까지 조심스러웠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비해 자유로웠던 외국의 그들의 첨예한 부딪힘을 과연 조선 땅에서 어떻게 풀어 나갈 수 있을까.
영화 속에 등장했던 그녀의 당당했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는데, 조선의 아녀자가 과연 외간 남자를 바라보며 얼마나 당당할 수 있을까.
그것들은 기우에 불과했다.
생각보다 조선이 배경인 이 글이 이질적이지 않았다.
그들의 부딪힘과 그들의 언쟁과 그들의 눈빛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원작에서 성을 빌려 여행(?)을 왔던 그들은, 이 책에서 암행어사를 감추기 위한 외조모님 댁 방문으로 둔갑했고, 어려움에 처한 여주의 집 사정 또한 암행어사인 남주의 고함으로 자연스럽게 마무리 되어졌다.
기본 설정들은 같다.
곳곳에서 영화 속 장면들을 만나게 된다.
맨 처음엔 너무 같아서 거부감이 살짝 일기도 했지만, 그 에피소드들이 하나같이 조선을 배경으로 잘 어우러져서 이질감이나 어색함이 없었다.
문장 또한 담백하고 단정한 편이라 주인공들의 성격과도 잘 어울렸다.
글 전체의 분위기가 정말 조선의 선비 같은 느낌이 들어서 참 좋았다.
'나는 그 사람이 중전마마의 조카에 한양 양반이라는 것에 편견을 가졌고, 그 사람은 내가 가난하고 품위 없는 집안의 딸이라는 것에 편견을 가졌겠지.'
p.261 연리의 생각.
오만했던 중전의 조카이자 세도가 집안의 자제인 심도헌,
편견 어린 시선으로 도헌을 바라봤던, 청렴하고 바른 종친의 여식인 이연리.
그들이 서로를 오해하고, 편견이 눈을 가려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다, 오해가 사랑이 되고 이해가 되어가는 과정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좋았다.
(애초에 원작의 가장 큰 묘미가 그것일 테니... 이것은 원작을 칭찬하는 말이나 다름없겠지만, 그것을 가져다 쓰는 사람의 어긋난 문장으로도 그 의미가 퇴색되기 쉬울 테니까, 원작뿐 아니라 이 책도 역시나 칭찬하고 싶다.)
"제가 소저의 집안에 대한 솔직한 말로 소저의 자존심을 건드려 놓지만 않았어도, 소저에게 이런 모욕적인 말을 듣지 않아도 될 뻔했습니다. 제가 소저의 지체 낮은 집안마저 연모한다고 했어야 했습니까?"
"나리께서야말로 저같이 별 볼 것 없는 여인에게 청혼하게 된 것이 자존심이 상해 오만하고 거만한 청혼을 하신 것을 아시나요? 제가 나리의 거만함을 연모한다고 말하길 바라셨어요?"
p.231 첫 번째 청혼 /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이 글의 작가가 도입부에서는 책에 더 가까운 모습을 따왔다면, 청혼 장면은 아무리 봐도 영화 속 장면에서 가져온 게 분명해 보인다. 영화 속에서 보여준 그들의 눈빛 덕분에 너무 인상 깊었던 장면이라 잊을 수가 없다.)
오만함을 내려놓고, 편견을 벗어던진 둘의 이후 모습들은 더없이 청렴하고 반듯하고 다정했다.
가장 아름다운 선비와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보여준 뒷이야기들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실제 오만과 편견에서는 그 후 이야기라는 게 따로 없는데, 역시 로맨스 소설이라는 장르에서는 에필로그의 든든함이 있다.
그들이 그 후에 어떻게 살았는지 그 깨알 같은 행복을 함께 나눌 기회가 주어주니 참 반갑다.
에필로그가 이렇게 반가웠던 적은 또 오랜만이다.
늘 행복하게 잘 사는 주인공의 모습만 나오는지라.... 에필로그 보나 안 보나 그게 그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원작에서 볼 수 없는 모습이라 그런지 더 의미 있게 느껴졌다.
처음 들었던 '오마주'에 대한 약간의 낯섬과 거부감 같은 것들이 책장이 넘어갈수록 희미해졌다.
'오만과 편견'에 너무 깊은 감명을 받으신 분이라면, 다른 듯 비슷한 이 작품이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도대체 뭐가 다른데?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조선판, 오만과 편견이라는 '새로운 글'로 이 책을 읽어낸 기분이 든다.
읽다 보면 다음 장면을 이미 알고 있을 때도 있고, 다음 대사를 유추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라는 새로운 배경이 주는 묘미와 그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또 다른 성격과 몸가짐을 보여주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실제로 가끔 외국의 글이나 영화를 볼 때, 그들과 다른 정서를 지닌 내가 이해하거나 읽어내리지 못하는 부분이 어쩔 수 없이 생기곤 한다.
한국에서 내내 살아온 나는, 아무래도 한국의 정서가 더 익숙하고 편안한 것 같다.
그래서 '조선판 오만과 편견'이 내겐 조금 더 친절했던 기분이 든다.
비교를 해야지 하며 펼쳤던 글이었고, 실제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두 작품(영화와 책이지만)을 비교하기도 했었지만, 책을 덮고 나서는 그저 각각의 작품으로 기억하고 싶어졌다.
원작보다 더 잘 쓴 글, 원작보다 더 부족한 글... 그런 것 말고, 원작과는 조금 다른 맛의 글이라고 말하고 싶다.
같은 봉지 속에 들어있는 빨간 곰 젤리와 노란 곰 젤리처럼.
닮았지만 맛은 다른 곰 젤리 같은 글이었다.
원작에 폐를 끼치는 게 아닐까 싶어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 작가의 마음이 느껴져서,
최대한 원작의 느낌을 살리고 싶어 했던 모습들이 느껴져서,
'오마주'라는 표현방식이 잘하면 본전이고, 조금이라도 못하면 욕먹기 십상인 장르라고 들어서,
이 새로운 시도에 도전한 것만으로도 '좋았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오늘은 왠지 좀 관대해지고 싶은 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