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일본 제국 패망사

[도서] 일본 제국 패망사

존 톨런드 저/박병화,이두영 역/권성욱 감수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세계 정치를 보면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미국이나 유럽이 일본을 감싸는 부분이다. 분명 일본은 독일과 같은 전범 국가이다. 위안부나 강제징용과 같이 한국에 저지른 만행은 그들이 모른다고 해도, 진주만 공격이나 태평양 전쟁의 여러 만행만으로도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끔찍이 일본을 싫어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한일간의 분쟁이 있을 때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은근히 일본의 편을 든다. 과연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태평양 전쟁에서부터 뿌리가 있지 않을까?

 

[일본제국 패망사]는 1936년 일본 군부의 쿠데타로 일본 군국주의가 태동하면서부터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의 악몽을 거쳐,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는 방대한 책이다. 저자인 존 톨랜드는 이미 다른 책에서 읽었듯이 역사에 대한 방대한 자료와 예리한 시선으로 당시의 상황들을 매우 입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마치 태평양 전쟁의 폭풍 한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계속 저자의 시각이 거슬린다. 미국인의 입장에서 당연히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만행을 지적해야 하는데, 저자의 글에서는 계속 '미국이 일본을 그렇게 몰아붙이지만 않았더라면...'이라는 뉘앙스가 계속해서 묻어 나온다. 과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2부는 중일전쟁 이후 진주만 공습이 일어나기까지의 미국과 일본의 지리한 협상 과정을 담고 있다. 그래서 다른 부부분보다 읽는 속도가 느렸다. 그럼에도 협상 과정과 이 협상 과정을 묘사하는 저자의 시선 속에서 미국이 바라보는 일본에 대한 시각을 읽을 수가 있었다.

 

 

 

1937년 루거우차오 사건으로 중일 전쟁이 일어나고 일본은 난징을 비롯해 순식간에 중국 동부 지역을 점령한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중국과의 지리한 전쟁이 이어지면서 겉으로는 승리한 것 같이 보이는 일본은 자원이 점점 고갈되어가며 지쳐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돌파구를 마련해 준 것이 히틀러의 폴라드 침략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2차 세계대전이었다.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같은 국가들이 독일에 의해 거의 무력화되자 일본은 자원이 풍부한 이들의 동남아 식민지에 눈독을 드린다. 그리고 미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이탈리아와 함께 추축국이 되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반도를 점령한다. 이에 미국은 ABCD 국가들(미국, 영국, 중국, 네덜란드) 함께 일본을 봉쇄한다. 여기서 일본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일본은 몇 개월밖에 버틸 석유가 없었기에 봉쇄가 계속되면 결국 전쟁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동남아와 중국을 다시금 내 주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이때부터 일본은 노무라 주미 대사와 미국의 헐 국무장관과의 지리하고 긴 협상이 시작된다. 협상을 하는 도중에도 일본이 보유한 석유는 계속 바닥나기에서 일본 지도부는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당시 일본 지도부가 가졌던 초조함을 일본의 시각에서 이렇게 묘사한다.

 

일본의 군부 지도자들은 나름대로 회담을 인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워싱턴에 냉담한 반응이 나오자 협상에 대한 회의론은 더 깊어졌다. 미국인들은 정말 평화를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시간을 벌려는 것인가? 하루하루 귀중한 석유 1만 2000톤이 소비되고 있으니 군대는 곧 해변에 버려진 고래처럼 절망적인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다. (P 174)

 

결국 일본 지도부 안에서는 미국의 협상 의도에 의심을 품고 최후의 결전 분위기로 점점 바뀌어 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일본의 자포자기 심정으로 묘사한다.(정말 그랬을까?)

 

이 같은 자포자기 심리가 9월 3일 11시에 황궁 옆 국내성에서 열린 연락회의 분위기에 짙게 깔려 있었다. 이때까지는 루스벨트로부터 아무런 공식적인 언급이 없었으므로 각료들은 잔뜩 불안해했다. 타협적인 제안을 한 것이 실수였을까? 미국은 단순히 시간을 벌려고 하는 것일까? "이렇게 하루하루 힘이 빠지다 보면 결국 우리는 자립능력을 상실할 것입니다." 나가노 군령부 총장이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이라면 우리가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회가 사라질까 두렵습니다." -중략- 그의 말은 육군을 공황 상태로 몰고 갔다. 육군 참모총장인 스기야마 장군은 최종 시한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끌어들였다. "우리는 10월 10일까지는 외교적인 목표를 달성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만일 이것이 실패하면, 우리는 돌진해야 합니다. 질질 끌 상황이 아닙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P 181)

 

이 과정에서 저자는 미국과 일본의 외교적인 교섭에서 문화와 언어적인 차원에서 오해들이 생겼다고 말한다. 미국의 최종 입장은 중국에서 철수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일본이 중국의 입장을 받아들이려 했다고 말한다.(개인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언어적인 오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미국이 중국에서 철수하라는 것을 만주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했고, 미국은 만주는 중국이 아닌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결국 엄청난 피를 흘리며 점령한 만주까지 내어주어야 하는 일본 입장에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미국의 답변은 좀 더 명확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적어도 일본의 반응이 훨씬 더 부드러웠을 것이다. 민주가 제외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헐의 문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협상을 계속해야 한다고 군국주의자들을 설득했을 것이다. 또 11월 30일의 최종 시한을 얼마든지 연기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P 250)

 

 

여기에 당시의 일본 국민의 분위기도 군국주의자들이 득세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런 분위기로 비교적 온건주의자이던 고노에 총리에서 그 유명한 도조 총리로 권력이 넘어가게 된다.

 

천황은 외교를 원하고 있었으며, 고노에 총리대신은 외교적인 수단을 써서 자신이 평화 달성의 마지막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도조 일파보다 오히려 일반 국민이었다. 통제받는 언론이 국민으로 하여금 앵글로색슨족은 일본을 삼류 국가로 강등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믿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에서 행동을 요구하는 성급한 항의 집회가 여기저기서 열렸다. 상황이 너무 험악해서 그루 대사는 권총을 휴대하고 다녔다. 비록 자신이 어리석고 '황량한 서부'에 온 듯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P 187)

 

결국 이런 미국의 압박과 국내 분위기 속에 일본이 어쩔 수 없이 진주만을 공습하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그리고 이것이 1400페이지의 8부로 되어 있는 이 책의 2부의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말 그랬을까? 미국이 만주만 남겨 준다고 했다면 (저자의 글에서는 당시 한반도는 안중에도 없다) 일본이 순순히 동남아와 중국 대륙을 남겨 두고 철수를 했을까? 당시 탐욕으로 가득 찼던 일본 제국 주의자들이 단순히 만주 땅덩어리에 만족했을까? 이니다. 그들은 협상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진주만과 동남아를 공격할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이런 시각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 책에서 초반부에 계속 반복되는 저자의 시각은 당시 소련이 팽창하고 있었을 때 일본은 소련으로의 진군과 중국으로의 진군 두 가지 갈래 길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일본은 공산주의의 확대를 미국처럼 경계하고 있었기에 충분히 중국이나 동남아 쪽이 아닌, 소련과의 전쟁 쪽으로 진로를 바꿀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선택지에서 미국이 조금만 더 외교적으로 노력했더라면 일본이 소련을 견제하는 세력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이것이 어쩌면 현대 미국과 트럼프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런 미국의 정책이 빗나간 것을 아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확산과 지배라는 공포를 공유하면서도 두 강대국은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어느 나라가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미국인가, 일본인가? 만주 점령과 중국 침략, 중국 국민에게 저지른 잔학 행위, 남방 침략 등으로 인해 미국과의 전쟁으로 스스로를 내몬 책임은 일본이 져야 한다. 하지만 일본의 침략은,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이후 인구가 폭발하고 일등 국가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자원과 시장을 발견해야 할 필요성, 경제적인 라이벌로서의 일본을 제거하려는 서방의 시도에서 비롯된 불가피한 결과이기도 했다. 이에 더해 천황의 독특하고 막연한 지위, 게코주의, 피해 망상의 공포로 전개되어온 소련과 마오쩌둥으로부터 발산된 공산주의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도 한몫했다. (P 250-1)

 

이 부분을 읽으며 저자의 시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만약 저자의 바램처럼 미국과 일본이 외교를 통해 협상을 해서 일본이 소련을 대적했다면, 만주와 한국은 여전히 일본의 지배 아래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저자나 미국인들은 그래도 별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본의 제국주의보다 아시아에서 공산주의가 확대되는 것이 더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시각이 지금도 미국 정치권과 대부분 미국인들, 또는 유럽인들이 가지는 시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계속해서 일본 제국주의의 부활에 대해서 경고를 보내지만 미국과 유럽인들은 그것을 심각하게 보지 않을 수가 있다. 오히려 일본이 군사대국이 되어 소련과 중국을 견제해 주기를 바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일본에 대해 친근감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시아에서 미국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국가는 일본이라는 생각 때문에. 결국 이런 미국과 유럽의 저변에 깔린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다면, 우리는 영원히 일본의 제국주의를 견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을 책을 읽으면서 하게 되었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나난

    사진으로 언뜻 봐도 상당히 두께가 있는 책이군요. 일본이 유럽을 비롯한 미국에게도 영향력을 주는 나라이기는 하죠.

    2019.09.17 23:0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가을남자

      일본의 군국주의의 태동부터 태평양전쟁까지의 모든 상황을 매우 다차원적으로 접근하면서 그리고 있는 책이네요... 쭈~~욱 읽어보려고 하는데 만만치가 않아서 끊어서 읽고 있는 중이에요 ㅎㅎ

      2019.09.20 18:56

PYBLOGWEB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