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으로 활동하는 저자가 오래 전에 출간한 기행산문집이며, 여기에 수록된 원고들은 ‘예술 기행이란 제목으로’ 어느 잡지에 연재되었던 것들을 모아 엮어낸 것이라고 한다. ‘작가의 말’을 통해서 저자는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이 ‘예술적인 것으로의 자유로운 여행’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여행이란 일상의 공간을 벗어나 낯선 곳을 찾는 행위이기에,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받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여행에서 느낀 감정들을 그저 마음속에 간직하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은 사진이나 글을 통해서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한다. 다른 이의 SNS에서 자신이 다녀온 곳의 사진이나 여행 기록을 접하면 우선은 반갑운 생각이 들고, 그것을 보면서 자신의 경험을 떠올려보기도 할 것이다. 기행문이란 형식도 마찬가지로 그곳을 다녀온 사람에게는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여행 경험이 없는 곳에 대해서는 글쓴이의 안내에 따라 간접적으로나마 상상여행을 가능하게 해준다.
저자는 예술가들과 연고가 있는 지역을 찾아 ‘한 인간의 삶과 그 주변에 펼쳐진 풍경’을 자신의 시선에서 풀어내고자 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하여 ‘시끌벅적한 답사나 견학보다 마음의 여행, 정신의 여행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밝히고 있다. 나 역시 틈틈이 문학답사를 즐기고 있기에, 저자의 이러한 바람에 공감할 수 있었다. 내가 답사했던 지역도 포함되어 있기에, 저자의 글과는 상관없이 이 책을 읽는 동안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크게 두 항목으로 나눠진 목차에서, 첫 번째 항목은 경상남도 남해의 미조포구에 대한 기행 경험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섬진강과 청학동’과 시인 서정주의 고향인 고창의 ‘선운사에서 질마재 마을까지’의 답사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 장소들 역시 오래 전에 답사를 했던 나의 경험을 떠올리게 했다. ‘신동엽과 금강을 찾아서’에서는 시인 신동엽의 고향인 부여의 기행 기록이며, 나도 여러 차례 답사했던 해남과 강진에서는 ‘공재 윤도서와 다산 정약용을 찾아서’ 그 흔적을 더듬어 보고 있다. 이밖에도 목포에서 배를 타고 떠난 ‘김환기의 고향’인 기좌도와 주민 모두가 민요 하나쯤 너끈하게 뽑아낸다는 ‘진도 소리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 기록으로 첫 번째 항목은 마무리되고 있다.
두 번째 항목은 윤이상의 고향인 ‘충무를 찾아서’ 자신의 고향을 시로 형상화하고 있는 시인의 시집을 들고 있는 저자의 모습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다. ‘목마와 숙녀’로 잘 알려진 박인환이 주로 거닐었던 종로에 대한 기행 기록은 나도 한때 드나들었던 인사동에 있었던 ‘평화만들기’라는 카페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였다. 강원도로 가는 국도에 있던 운두령은 교사였던 장재인과 최영애라는 부부의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사연을 품고 있고, 소설가 이청준과 한승원의 고향인 전남 장흥을 찾아 동료 문인들과 함께 ‘천관산에서 회진포구까지’의 기행을 소개하고 있다.
1부에서 다녀왔던 진도의 소리 기행을 덧붙이면서 ‘진도 소리를 찾아서’라는 동일한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중국의 시안에서 둔황으로 이어지는 ‘서역기행’의 답사 내력을 서술하고 있다. 판화가 이철수의 목판화전을 다녀온 기록과 화자 한희원의 전시회에 관한 기록들은 여타의 기행산문과는 분명히 다르지만, 저자가 애초에 설정했던 ‘예술 기행’에 더없이 적절한 내용이라고 여겨졌다.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저자의 유려한 문체로 소개된 답사기를 통해 나의 경험을 떠올려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