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란 새로운 세계란 뜻이다. 여기서 ‘새로운’이란 의미에 방점이 찍힌다. 무엇이 새롭다는 것인가? 어떤 것이 새롭다는 말인가? 이 책은 저자가 말하는 새로운 세계를 확인하는 일이 읽기의 중심에 있다는 생각이다. 이 새로운 세계는 미래에 닿아 있다. 미래에 어떤 삶이 될 것인가? 그 삶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 그 ‘어떤’을 누가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2015년 8월 21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미국 정부 상대로 낸 집단 소송을 낸 일이 있다. 이는 21명 구성원 중의 한 명인 줄리아나의 이름을 따서 줄리아나 소송이라 명명되기도 한다, 미국정부는 미래의 사람들이 건강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권리를 막고 있다. 즉 기후 변화를 초래하는 정책을 추진해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의 권리를 빼앗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 정부에서는 이 소송을 막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고, 소송은 세계에 많은 파장을 끼쳤으며 지금도 진행 중이다. 현재 청소년들의 정부를 대상으로 한 들불처럼 번져 나가는 세계적인‘기후 소송’의 시초다. 이것은 인류에게 보내는 경고로 환경 파괴와 기후 재앙을 드러내는 중요한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송의 내용을 근거로 저자는 하고 싶은 말을 풀어나가고 있다.
툰베리의 1인 시위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학생들이 참가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 운동으로 이어졌다. 시위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우리는 여기 모여 큰 소리로 외칩니다. 당신들이 우리의 미래를 훔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깃발을 흔들며 정부를 매섭게 비판했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거리에서 시위를 할 수 없게 되자 시위 장소를 온라인 세상으로 옮겼다. p23 세계적으로 미래의 삶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의 정부의 정책을 걱정하는 마음들이 현실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단적인 예다. 아마 정부당국들이 심각하게 고민하고 그 정책의 실행 유무를 판단해야 할 일이 아닌가 여겨진다. 자신들이 하는 모든 일들이 궁극적으로 시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물려줘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의 사람들은 일상에 젖은 삶을 원한다. 타성에 젖어 익숙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자신들의 시간만 괜찮으면 된다는 아전인수 격인 생각을 지니고 있다. 또 그렇게 살고 있다. 환경 파괴, 기후 재앙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행동을 규제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들이 살아온 삶의 환경이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미래를 살아야 할 사람들의 생각 차이다. 이런 것들은 충돌로 나타난다. 인간들이 만드는 무수한 재앙. 저자는 이 시대를 인류세로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내보인다. 이것을 해결할 방법이 강구하고 찾고 있는 저자의 생각이 오롯이 담겨져 있는 책이다.
그 답은 자연에 있다. 자연적인 것에 있다. 그리고 과제를 하나 제시한다. ‘집 밖으로 나가서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말 것.’ 그것은 자연 상태 그대로 둔다는 의미다. 그것이 자연을 보호하는 길이라고 한다. 자연이 인간에 의해 변화하는 것은 자연이 아니다.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 자연이다. 인간의 손길이 닿은 자연은 인간이 어떤 의미로 변화시킨 것이다. 이것을 자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실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래의 것들은 지구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변화된 자연을 지켜야 하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아니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럴 때 자연과 공존하는 인간들의 삶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고 미래의 자산을 물려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인류의 모든 역사가 일어나는 곳 지구도 결국 우주 속의 희고 파란 작은 점에 불과하다. 물이 70%가 되니까 수구라 불러도 될 듯하다. 이 동그란 물체 위에 인간들은 집을 짓고 살고 있다. 대기 중의 수증기가 있다. 이 수증기가 방사선을 막아주면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다. 이런 환경을 다른 행성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우주에 인류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우주에서 인류의 미래를 찾으려는 생각, 이것은 착각이며 망상이다. 지구 특별한 행성이다. 지구는 생명체로 가득한 행성이다. 이 지구를 제대로 보존할 때 인류의 미래는 있다. 물은 생명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지구에는 이 특별한 조건이 있기에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실제로 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구를 지켜야 함을 말하고 있다.
모든 생명체가 거주하는 다른 우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행성, 지구는 인간을 비롯해 모두가 거주 공동체를 이룬다. 생명체는 다 같이 지구에 산다. 지구가 우주에서 바라보면 하나의 생물권이다. 이런 지구는 변화하면서 존재한다. 또한 생명체들이 그 변화에 맞춰 더욱 왕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터전이 마련된다. 이것을 생명체의 하나인 인간이 바꾼다는 것은 바르지 않다. 질서에 맞게 잘 어울려 존재할 때 지구의 생명력도 길게 된다. 그 속에 살아가는 생명들도 공존하면서 살게 되고 평화로운 삶이 된다. 지금의 인간 중심 사고가 바뀌어야 하고, 그것이 정책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미래를 살 청소년이 소망하는 신세계다.
모든 생태계는 소멸과 재생으로 이루어진 순환 과정을 거치며, 그 안에서 각각의 부분들이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순환 과정의 구성 요소 중 어느 하나가 변화하면 전체 시스템이 바뀌게 된다. 가령, 어느 산호초에서 상어 떼가 사라지면 상어보다 몸집이 작은 육식 물고기의 개체수가 증가한다. 그러면 어린 산호가 무성하게 자란 해초로 뒤덮이지 않도록 해 주는 파랑비늘돔 같은 초식성 신호초의 수가 줄어든다. p91 생태계 파괴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단락이다. 그 생태계의 파괴를 인간들이 자행하고 있다.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가 공멸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들에 대해 인류의 빠른 자각과 대처가 따라야 함을 이 책은 말한다.
진화에 기반을 둔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진화는 변화다. 주어지는 여건에 따라 적응하는 삶이 변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변화 과정에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다. 생존을 위해 거대한 관계망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물들이 스스로 집단 내의 개체단위로 인식하는 것을 ‘사회화’라 한다. 이는 여러 동물에게서 나타난다. 다양한 생명체들이 기생, 공생 등도 한다.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 그런데 한 쪽이 무너지면 다른 것들은 어떨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결국은 무엇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인간에 대해 궁구하고 있다. 인간이란 어떤 생명체인가? 특별한 존재다? 인간이 특별하다는 이유로 지능, 도구 사용, 의사소통, 감정 등을 얘기하는데, 다른 동물에게도 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인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잘 설명해 주는 요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또 지구상에서 가장 기이하면서 이중적인 존재가 인간이다. 지구라는 행성의 지배자인 인간, 인간들은 그들의 필터로 세상을 바라보다. 모든 것들을 인간이 필요한 바에 따라 길들인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렇기에 인간들이 현재의 편의를 위해서 거대하고 위험한 실험도 한다. 바로 원자력 발전소 운영이다. 원자력을 이용할 때는 방사선 방출의 위험이 있다. 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큰 문제가 생긴다. 인간이 행하고 있는 자연 파괴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핵폐기물이다.
1986년 4월 26일, 이날은 바로 우리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첫 번째 원전사고가 일어난 날, 사람들은 거대한 놀람에 직면한다. 또 그들은 핵 발전 시작과 함께 그저 막연히 미래 세대가 핵폐기물 처리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랐다. 달리 말해 아무런 대책도 없이 거대한 실험을 함부로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것이 오늘날 공포의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또 지구의 균형을 무너뜨린 세 차례의 타격을 얘기하고 있다. 지구를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일, 지구에 살고 있는 다른 생명체의 터전을 빼앗는 일, 이산화탄소 지구 온난화로 종의 멸종을 만드는 일 등이다. 이들이 미래의 세계를 얼마나 힘들고 두렵게 할 것인지 떠올리게 한다.
오늘을 사는 인간들은 여전히 자연이 무한하다는 생각을 내면 깊숙이 하고 있다. 즉, 인간이 갖고 있는 자연의 이미지는 현실이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을 계속할 수 있기를 원하는 ‘바람’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 외의 자연을 대하는 다른 방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법의 기계가 만들어내는 삶의 방식에 길들어져 있고 쉽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편리성과 용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삶은 아이들의 미래를 훔쳐 만든 내 삶의 방식이다. 지금은 자연과의 전쟁, 미래와의 전쟁을 하고 있다. 그들과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치인, 기업인 등도 자연 파괴가 인간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수용하고 그에 대한 조치가 취해 져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자신의 생활 방식까지 바꾸려는 획기적 사고가 따라야 한다.
결국 자연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것은 데이비드 소로의 ‘윌든’이라는 글을 떠올리게 한다. 인위적인 것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자연을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수용하려고 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이다. ‘조금 더 나은 생활은’은 사람을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마지막으로 행복했던 때는 언제였는가? 대다수 사람들은 자연의 일부라고 느낄 때 진정으로 행복했다고 말한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마음가짐, 그것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닌가 보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자연과 화해를 해야 한다. 특히 정책을 입안하고 결정을 해나가는 사람들은 이것을 더욱 마음에 담아야 한다. 모두가 자연 보호를 위해서 나서야 한다. 육식 줄이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경제적 효용 가치가 있는 것에만 금전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문제가 될 게다. 이제는 다 같이 나서야 할 때다. 바다와 대기가 보호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릴 때다. 자연의 많은 부분이 보호를 받아야 미래가 산다. 미래를 살리기 위해선 자연 상태를 유치하는 것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미래는 여러분이 주인이다. 모두가 자각하여 자연을 만나고, 모두가 자연 상태를 최상의 삶의 요건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럴 때 미래가 산다. 미래는 자연 상태, 신세계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게다.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가 될 게다.
책은 인간이 그들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서 행한 많은 일들이 자연을 파괴하는 결과로 나타남을 담고 있다. 그것이 미래를 불확실하게 만들고 청소년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담고 있다. 그런 문제점이 해소되는 세계를 신세계로 보고 있다. 그 신세계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시각이 소중하게 여겨질 때 가능할 일로 보고 있다. 우리 모두 현실적으로는 좀 아날로그적인 삶이 되더라도 보다 나은 내일을 바라봐야 하지 않겠는가? 청소년들이 그들의 미래를 위해 소송에 나서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