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를 모르고 있었다. 우리 애들이 어렸을 때 애니메이션 작품을 같이 봤을 법도 하건만, 애들에게 보여 준 기억은 있어도 내가 봤다는 기억은 없다. 기회가 닿아 아는 사람들과 함께 서울에서 본 공연인데, 줄거리를 몰랐어도 영어 대사를 다 알아듣지 못해도 좌석이 무대에서 조금 멀었어도 다 좋았다. 좀더 가까이에서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과 분장을 볼 수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이런 아쉬움마저 달래 줄 정도로 공연은 멋있었다. 좋은 건 좋은 것이다.
새끼사자 이야기라니, 삼촌이 왕이 되고 싶어 형인 왕을 죽이고 장차 왕이 될 조카를 죽이려고 하는 내용이라니. 나는 아마도 이런 내용 때문에 일찌기 이 작품을 볼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내용 자체는 여전히 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런 내용이 어린이들에게 어떤 좋은 영향을 미칠지 여전히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이 정도의 갈등 관계 해소 방법을 알아내는 일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과제인 것일까 하면서 봤다. 통속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니.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는 놀라웠다. 인형과 한몸이 되어 움직이는데 얼마나 연습하면 어떻게 조정하면 저리도 신기하게 자연스러워질 수 있을까 싶었다. 객석에서 보는 관객의 마음 너머로 연기를 하는 이들의 수고로움이 자꾸만 떠올라 거의 방해가 될 정도였다. 세상에는 이런 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것도 지금 이 시대만이 아니라 아주 오래오래전 그 옛날로부터. 배우로 사는 사람들은 어떤 운명을 받고 태어난 것일까. 아니, 배우만이 아니라 연출가는, 분장사는, 음향감독은, 무대설치가들은,...... 아, 작가도 있구나, 이 모든 사람들이 예술적 사명감을 갖고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일 테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당연히 있을 것이고.
예술이라는 것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예술을 만들어 내는 사람과 예술을 즐기는 사람. 둘을 다 누리는 쪽이 훨씬 행복하다는 건 말할 것도 없겠다. 나로서는 만들어 내는 쪽이 아니라 단순히 보고 즐기는 쪽이니 꽤나 섭섭한 처지다. 보고 즐 기는 데에 비용이라도 좀 덜 들었으면, 이런 것이나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