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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계절

[문고판] 목마른 계절

전혜린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작은 크기, 적은 페이지, 싼 책값이지만, 내게 추억을 불러일으켜 준 힘은 컸던 책이다. 내가, 그 어린 시절에, 이 글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던가. 다시 그 시절을 생각하며 이 글을 읽고 있노라니, 어찌 이리도 아늑한가.

 

작가는 지금 내가 생각해 볼 때, 어린 나이에 요절했다. 어떤 간절함이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어갔는지 아주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겠으나, 지금 생각해도 안타까운 일일 수밖에 없다. 내가 고등학생 때(혹은 대학생일 때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와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를 읽으면서 넘겨보았던 서른 살은 참으로 아득했는데, 어쩌면 나 또한 야릇한 두려움으로 나이 삼십을 예상해 보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지나와 보고 나니 그래도 살만 했다 싶은데, 더욱이 정화라는 예쁜 딸아이의 엄마로서 아이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그녀였는데.

 

그 때 그 어린 시절에 본 책은 아니지만, 그 책은 그대로 있지만, 이 작고 어여쁜 책을 구한 내 본심은 새로운 추억 하나를 더 만들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십 넘어서 읽는 삼십대 여자의 치열했던 삶.

 

돌아보면 나는 그녀의 어떤 부분은 본받고 싶어했고 어떤 부분은 도저히 따를 수 없을 것 같아 동경으로만 남겨 두었던 것 같다. 지금도 나는 내 어린 날을 기억한다. 밤을 새고 본 새벽빛이 황홀했다는 그녀의 말이 궁금하여 나도 밤 꼴딱 새고 지켜보았던 동트는 장면, 오로지 홀로 공부로 밤을 새운 내 자신이 대견하여 더욱 찬란했던 새벽, 그 환희를 잊지 못하고 이후로 한동안 밤을 꼴딱꼴딱 새곤 했던 나의 즐거운 비밀.(밤새 공부하고 학교에 가서는 내내 졸고, 친구들에게는 공부 안 하는 척하곤 했던 나의 내숭 가득했던 날들) 나는 지금도 밤새 일을 하고 난 뒤면 늘 전혜린의 글을 떠올리고 있으니.    

 

절대로 평범하지 않으리라고 했던 그녀의 결심이 그녀의 삶을 더 힘겹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야 지극히 평범한 삶을 이루는 일이 내 삶의 최대 목표인 사람이므로, 그 부분에서는 그녀의 진정한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으리라. 다만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아쉬워할 뿐이고.

 

블로그 이웃의 지나가다 해 주신 '알프스 산정의 찻집' 이라는 말 때문에 다시 읽어 본 작은 책. 때때로 다시 보게 될 듯하다. 추억이 그리울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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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껌정드레스

    용돈 궁한 중교교시절에 주로 문고본을 읽었죠. 범우문고 10번, 89년에 1000원이었던 책으로 읽었습니다. '알프스 산정의 찻집'은 이 책 처음에 있죠. 하하.

    2009.02.03 11:20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책읽는베토벤

      ㅋㄷㅋㄷ 제 추억만의 책은 아니군요. 너무 반가워요. 그런데 저는 이 책을 최근에 구입했다는 것, 용돈 궁하던 그때도 전혜린 책은 왜 비싼 돈 주고 사고 싶어했던 것인지, 그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가지려고 했던 것 같아요.

      2009.02.03 11:35
  • 달구벌미리내

    깔끔하게 글을 잘 쓰시는 정은숙님의 글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남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도 값어치 있는 일이지만, 스스로의 생각을 글로 다듬어 책을 내면 더욱 좋지 않을까...

    2009.02.03 17:19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책읽는베토벤

      달구벌 미리내님의 이 말씀은 저더로 책을 써 보라는 말씀이신가요? 흑흑, 고맙고 고맙습니다. 더욱 열심히 연습해야겠어요.

      2009.02.04 10:50
    • 달구벌미리내

      예, 맞습니다. 연습은 다 된 듯 합니다. 쓸거리를 잡아 그저 쓰고 책으로 묶기만 하면 될 듯 합니다.

      2009.02.04 17:50
  • 마리에띠

    여고시절을 떠올리게 하네요. 그 감수성짙은 시절.

    2009.02.03 19:33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책읽는베토벤

      왜 여고시절이라는 말이 있었는지 이제야 알겠어요. 그 이름만으로도 너무 그리운.

      2009.02.0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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