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크기, 적은 페이지, 싼 책값이지만, 내게 추억을 불러일으켜 준 힘은 컸던 책이다. 내가, 그 어린 시절에, 이 글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던가. 다시 그 시절을 생각하며 이 글을 읽고 있노라니, 어찌 이리도 아늑한가.
작가는 지금 내가 생각해 볼 때, 어린 나이에 요절했다. 어떤 간절함이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어갔는지 아주 조금은 짐작할 수 있겠으나, 지금 생각해도 안타까운 일일 수밖에 없다. 내가 고등학생 때(혹은 대학생일 때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와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를 읽으면서 넘겨보았던 서른 살은 참으로 아득했는데, 어쩌면 나 또한 야릇한 두려움으로 나이 삼십을 예상해 보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지나와 보고 나니 그래도 살만 했다 싶은데, 더욱이 정화라는 예쁜 딸아이의 엄마로서 아이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그녀였는데.
그 때 그 어린 시절에 본 책은 아니지만, 그 책은 그대로 있지만, 이 작고 어여쁜 책을 구한 내 본심은 새로운 추억 하나를 더 만들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십 넘어서 읽는 삼십대 여자의 치열했던 삶.
돌아보면 나는 그녀의 어떤 부분은 본받고 싶어했고 어떤 부분은 도저히 따를 수 없을 것 같아 동경으로만 남겨 두었던 것 같다. 지금도 나는 내 어린 날을 기억한다. 밤을 새고 본 새벽빛이 황홀했다는 그녀의 말이 궁금하여 나도 밤 꼴딱 새고 지켜보았던 동트는 장면, 오로지 홀로 공부로 밤을 새운 내 자신이 대견하여 더욱 찬란했던 새벽, 그 환희를 잊지 못하고 이후로 한동안 밤을 꼴딱꼴딱 새곤 했던 나의 즐거운 비밀.(밤새 공부하고 학교에 가서는 내내 졸고, 친구들에게는 공부 안 하는 척하곤 했던 나의 내숭 가득했던 날들) 나는 지금도 밤새 일을 하고 난 뒤면 늘 전혜린의 글을 떠올리고 있으니.
절대로 평범하지 않으리라고 했던 그녀의 결심이 그녀의 삶을 더 힘겹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야 지극히 평범한 삶을 이루는 일이 내 삶의 최대 목표인 사람이므로, 그 부분에서는 그녀의 진정한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으리라. 다만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아쉬워할 뿐이고.
블로그 이웃의 지나가다 해 주신 '알프스 산정의 찻집' 이라는 말 때문에 다시 읽어 본 작은 책. 때때로 다시 보게 될 듯하다. 추억이 그리울 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