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아껴 두었다가 읽은 책이다. 이 책마저 다 읽어 버리면 섭섭해서 어떻게 하나, 처음부터 다시 읽기는 좀 그렇고(그래도 되지만 굳이 그럴 것까지는 없으니) 끝내 버리기에는 환상적으로 감동적인 상상 속 세상 이야기라. 이런 꿈같은 이야기 하나 정도는 좀 오래 품고 있어도 괜찮지 않나 여기면서.
환상이라는 게 뭘까. 작가가 그리는 환상은 무엇이고 독자가 얻는 환상은 무엇일까.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때때로 찾아서 기어코 들어가 보는 그 엉뚱한 세상의 속성은 무엇인 걸까. 왜 그만두지 못하고 자꾸만 찾게 되는 걸까. 어떤 환상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라서, 또 어떤 환상은 말도 안 되게 엉뚱한데도 그 엉뚱함이 좋아서 빠져드는 걸까. 환상이라는 장르에 대체로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은 편인데 이 작가의 글에서만큼은 어떤 거부감도 들지 않는다. 이것도 인연인 게지.
용이 있고 사람이 있고, 용과 사람이 원래 한 종족이었다는 설정. 이게 납득이 되는 긴긴 독서의 과정. 원래 하나였다가 둘로 나뉘고, 나뉘면서 각자 다른 걸 원했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말았고, 이 갈등의 근원을 찾아 다시 만나게 되기까지, 만나서 협상에 이르기까지, 누군가는 세상을 떠나고 누군가는 세상을 구한다. 어느 한 존재도 의미 없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심지어는 악의 역할을 떠맡았던 이라고 해도.
책 제목의 바람이 예사로운 바람이 아니다. 나는 이제 바람 한 자락에도 마음이 일렁일 것만 같다. 이 바람 뒤로는 누가 어느 세상으로 건너가고 있을까 하여. 하나의 세상을 건너는 일도 한 생을 사는 것만큼이나 벅찬 일이 될 것 같다. 이렇게 생을 익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