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은 음울했고 노래는 장중했으며 배우들의 연기는 처절했다. 조명에 되비치는 배우들의 눈물과 콧물이 딱할 정도였으니까. 동화 메리포핀스를 전혀 모른 채 이 뮤지컬을 봤다. 보고 난 후 제목이 왜 블랙메리포핀스인지 딸이 설명을 해 줘서 알았다. 블랙은 정말 어둠이기만 한 것일까.
기억이라는 중요한 게 있다. 기억하는 것과 기억한다고 믿는 것의 차이. 우리가 기억으로 믿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라는 것도. 얼마나 불완전하고 무책임한 기억이란 말인가. 살아가면서 좋지 않은 경험은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런 경험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또 써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닥치는 시련들 때문에 기억을 숨기기도 하고 억누르기도 하고 지워 보려고 용을 쓰기도 하는 것이리라. 기억하는 것만으로 아파서 무너져 내린다면 어찌 살 수 있겠는가 말이다.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일도 마찬가지다. 해치는 정도의 무게에 관계 없이 어쩌다가 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상황이 생기게 된 것일까. 나를 해치려는 것도 아닌데, 그저 나보다 약하다고 그를 괴롭히려고 하는 마음이 생겨 나는 원천은 무엇일까.(신비한 동물사전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구나.) 뮤지컬은 끝내 평온하지 않았다.
배우들의 노래는 상당히 멋졌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흔들림 없이 노래하는 모습들이라니. 나는 토요일 오후 3시 공연을 봤는데 이렇게 혼신을 쏟아 놓고 7시 공연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괜히 걱정을 했을 정도다. 더욱이 헤르만 역의 '강영석'은 얼마 전에 <올드 위키드송>에서도 본 적이 있는 배우였는데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 이 공연과 그 공연을 동시에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럴 수도 있구나.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종종 보려고 하다 보니 우리 뮤지컬의 소재도 넉넉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배경을 굳이 우리 쪽에서 만들어 내지 않아도 지금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바를 충분히 드러낼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2016년 이 겨울의 정세를, 우리의 창작자들은 어떤 모습으로 담아 내려고 할 것인가. 소설보다 연극보다 더 기막히고 극적인 서글픈 시대상, 원통한 사람들의 억울함을 어떻게 해소시켜 줄 수 있을지 머지않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