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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꽃의 삶

[도서] 덧없는 꽃의 삶

피오나 스태퍼드 저/강경이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만 10년을 살고있는 아파트이지만 올해처럼 열심히 마당에 있는 식물들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던 것같다. 일정한 장소에 있는 식물들을 보고 있노라니 겨우내 갈색의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던 나무에 연두색 싹이 나기 시작하고 꽃이 피면서 봄을 알리고, 무성한 초록색 잎들은 여름이 깊어감을  느끼게 했다. 가을이 다가오면서 어느새 꽃들은 자취를 감추고 다음 해를 위한 열매를 맺었다. 푸르렀던 잎들은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추운 겨울을 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 변화가 참으로 신비롭기만하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서 이런 저런 변화를 거쳐가고 있는 중이어서인지 나무, 꽃의 삶에도 하나의 생명체로서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된다. 문학, 신화, 예술로 읽는 꽃 이야기라는 부제가 시선을 끌었다. 인간과 함께 살아나가는 꽃이 문학, 예술, 신화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저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되었다.

 

 조부모님은 1930년대 묘목장을 시작했었고, 아버지의 직업때문에 여러 곳을 옮겨다니면서 살았지만 항상 초록공간을 만드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꽃과 정원의 축복을 누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 환경으로 인해 자연스레 식물과 가까워질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스노드롭, 프림로즈, 수선화, 블루벨, 데이지, 엘더플라워, 장미, 폭스글러브, 라벤더, 질리플라워, 피나무 꽃, 엉겅퀴, 해바라기, 양귀비, 유령난초, 총 15가지 꽃 이야기를 담고있었는데, 각 장을 시작할 때 그려진 꽃은 남편의 작품이라고 했다.

 

 

  지칠 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 작고 무성한 식물은 잔디 애호가들에게는 골칫거리다. 마치 꽃들이 작심하고 밤마다 작고 동그란 머리 위로 흰 시트를 끌어당겨 덮고는 다음 날 아침 상쾌하게 일어나 대혼란을 일으킬 준비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튿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꽃들은 더 커지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작은 스쿼시 라켓처럼 활짝 펴진 잎은 마치 한번 겨뤄보자고 장난을 치는 것 같지만 티 없이 단정한 잔디 정원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들은 무질서한 잡초 동맹의 거친 게릴라 조직일 뿐이다.-p 98

 

 봄이 왔다는 신호를 보내는 꽃 데이지의 끈질긴 생명력을 표현한 이 글을 읽으면서 절로 미소가 나왔다. 나에게는 한없이 아름다운 꽃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골칫덩어리일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데이지는 자기 일을 묵묵히 할 뿐이겠지. 저자는 이렇듯 재미있는 시선으로 꽃의 특성을 들려주고 있었다.

 

꽃을 이야기할 때 장미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너무도 흔한 것이 장미랄 수도 있겠지만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봐도 봐도 아름다운 꽃이 장미아닐까?

 

장미는 야생으로 자라든 세심하게 재배되든 품종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장미'를 떠올리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그래도 장미는 여저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동시에 상징적 의미가 가득한 꽃이다. 너무 의미가 많다보니 아무 의미가 없지 않느냐는 의구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p 128

 

저자는 움베르트 에코가 자신의 소설 제목을 '장미의 이름'이라고 한 이유가 "장미는 의미가 워낙 풍부하고 상징적인 형상이어서 이제 아무 의미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한다. '장미의 이름'을 읽어보지 않았는데 이 의미를 알고싶어서라도 읽어봐야할 것 같았다. 장미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했는데 아주 재미있는 방법으로 서술하고 있었다. A부터 시작하는 장미 알파벳을 만들어보겠다고 하더니, '앨리스 Alice는 이상한 나라로 떨어지고로 시작해서 ,제퍼린 드 루앵 Ze을 처음 만난 것은 내 옛 이웃을 통해서였다. (중략) 진분홍 장미들은 해마다 그녀를 기념하며 말없이 피어난다.' 로 장미 이야기를 끝마쳤다. 그 안에는 장미를 이야기하는 문학작품, 새로이 태어난 교배종, 다이애나비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노래했던 엘튼 존의 음악, 셰익스피어 극의 등장인물이 오베론, 장미 도상으로 튜더 왕조를 홍보했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야기등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했다.

 

 식용으로, 약으로 여러 쓰임을 가지고 있는 꽃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당장이라도 꽃을 따러 가고싶은 마음이 들만큼)  그중 그림을 통해 블루벨의 쓰임새를 설명하는 부분이 재미있었다.

 

  

 

  20년에 걸친 잉글랜드-스페인 전쟁을 끝낸 1604년 서머싯 하우스 회담 장면을 그린 그림 속 남자들이 착용하고 있는 러프의 빳빳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블루벨 알뿌리 들어있는 끈적이는 물질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런 쓰임이 있는 블루벨의 학명은 히아친토이데스 논 스크립타 Hyacinthoides non scripta 라고 하는데, 이 학명은 히아킨토스라는 아름다운 청년을 사랑한 아폴론 신화에서 나왔다고 했다. 수선화, 해바라기,양귀비등에 대한 신화도 들을 수 있었는데, 신화와 꽃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롭다.

 

 유럽 여행 중에 내 눈을 사로잡았던 풍경 중 하나가 양귀비 들판이었다. 붉디 붉은 꽃들이 지천에 늘어서있는 풍경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고,이 책에 실린 모네, 고흐, 클림트의 양귀비 들판또한 아름답기만 했다. 저자는 양귀비가 가지고 있는 중독성으로 인해 일어났던 여러 폐해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지만 내 마음을 건드렸던 것은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후에 양귀비를 본다면 아름답다는 생각과 함께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 속에 있는 젊은 병사들도 함께 떠올리게 될 것같다.

 

 

 제1차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양귀비의 의미가 더 넓어졌다. 수백만 청년들의 목숨을 빼앗은 전쟁이 끝나자 양귀비는 설명할 길 없이 짧은 삶,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죽은 젊은 남자들의 이미지가 되었다.-p 262

 

 저자는 문학 작품에서 잠깐 피었다 지는 이 꽃이 너무 빨리 눈을 감은 어린 청년들과도 연결되었던 예로써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이야기했는데, 최근에 읽었던 부분이라 <아이네이스>를 펼쳐보았다.

 

 그러자 에우뤼알루스가 죽어 나뒹굴며 아름다운 사지 위로 피가 흘러내렸고, 목덜미는 어깨 위로 축 늘어졌다. 그 모습은 자줏빛 꽃이 쟁기날에 잘려 나가며 시들어지거나, 아니면 양귀비꽃들이 소나기의 무게를 이기지못해 목덜미를 늘어뜨리며 고개를 숙일 때와도 같았다.

< 도서출판 숲, 아이네이스 중에서>

 

 작가들이 작품에서 꽃을 이야기할 때는 그 꽃의 특성을 십분 이해하고 있거나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와 어울린다고 생각할 때 자신있게 쓸 수 있는 것일테다. 저자는 꽃들이 등장하는 많은 문학 작품을 언급하고 있었는데, 저자의 시선을 따라 작품 속으로 들어가 꽃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꽃의 의미 또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식물학 박사쯤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옥스퍼드 대학교 영문학 교수였다.

 

 낭만주의 문학 (특히 윌리엄 워즈워스, 제인 오스틴, 로버트 번스, 존 키츠, 존 클레어),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문학, 현대 시, 환경 인문학, 자연에 관한 글, 문학과 시각예술등을 연구하다. 학술서와 논문 외에도 신문과 문예잡지, 미술책, BBC라디오 3의 <에세이 The Essay>시리즈와 자연 에세이 선집에도 글을 썼다. 저서로는 <길고 긴 나무의 삶>과 <제인 오스틴의 짧은 일대기>가 있다. (앞날개)

 

 그러고보니 <길고 긴 나무의 삶>이 서평단 이벤트에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 아쉽게도 쭈루룩 미끄러졌는데 이 책이라도 만나서 다행이다. 자신의 전공과 어릴때부터 꽃과 함께 했던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나온 책이었다. 문학, 예술,식물 다방면에 박학다식한  저자의 글들은 당연히 깊이도 있었지만 유쾌했다. 각 장을 시작할때 있는 사실적인 꽃 그림도 예뻤고, 많지는 않았지만 미술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식물에 대한 관심이 차차 높아져가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을 읽는 순간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꽃들은 중요한 삶의 순간마다 우리와 함께한다.

생일이나 기념일을 축하하는 선물로,

결혼식에서 신부를 돋보이게 하는 부케로,

죽은자와 무덤까지 동행하는 화환으로,

애도자를 위로하는 추모의 꽃으로,

꽃들은 특별한 의식의 의미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모두에게 공평한 자연의 경로를 상기시키기 위해,

그리고 중대한 사건이 기억과 앨범으로 자리 잡은 뒤에는 사라지기 위해 호출된다.- p16

 

이 책의 원제는 <The Brief Life of Flowers> 였다. 이러한 꽃의 삶을 두고 이런 번역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아쉬운 부분이었다.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사라지는 그 외형적인 모습만을 생각했던 것일까?

 

ps

'한편 꽃이 일찍 피었다 진 장미 덤불들은 굶주린 새들에게 붉고 동그란 장미 열매를 내준다'는 문장을 읽고는 장미 열매가 있었나 궁금했는데, 오늘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울타리에 있는 장미를 보다가 열매를 발견했다. 아직 꽃도 피어있고, 열매도 있고. 이 책을 읽은 후라 한참동안 열매에 시선이 머물렀다.

 

< 2020. 10.9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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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산바람

    리뷰 재밌게 읽었습니다. 특히 장미꽃과 열매 사진 잘 봤습니다.
    찬바람 속에 핀 장미는 봄장미와는 또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2020.10.10 19:5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march

      꽃이 피고 번식을 위해서는 씨앗이 필요하니 열매도 맺고하는 자연의 이치가 있는데도 항상 시선을 사로잡는 꽃만 봐왔던 것같아요. 장미열매는 처음 봤어요. 무리지어 있는 장미도 예쁘지만 저렇게 한 송이씩 피어있는 장미도 참 예뻐요.^^

      2020.10.12 08:02
  • 스타블로거 ne518


    누군가한테는 예쁜 꽃이어도 누군가한테는 농작물을 방해하는 것이 되기도 하죠 장미가 논에 뿌리를 내리면 농부는 이게 뭐야 하고 잡초라 여기고 뽑아버리겠습니다 장미가 그렇게 뿌리 내리지는 않겠지만... 어떤 거든 그것대로 좋을 텐데... 장미 열매를 만나서 반가웠겠네요 그걸 심어서 싹을 틔우려는 사람도 있더군요


    희선

    2020.10.11 01:3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march

      그렇겠죠? 어쩌면 잡초라는 것은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싶어요. 아파트에도 지난 주에 예초기 작업을 하더라구요.휑해진 부분을 보니 좀 그랬어요. 장미 열매는 처음 봤는데 ... 씨앗을 얻을 수 있는지 오며가며 봐야겠어요.^^

      2020.10.12 08:05
  • 스타블로거 Joy

    저 역시 올해처럼 주변 식물에 눈길을 준 적이 있었던가 싶어요. 코로나19로 많이 힘들지만 덕분에 멀리 가지 못하는 대신 아침산책 시작하고, 그 산책길에 다양한 식물들을 만날 수 있었네요. 함께 올려주신 장미를 보며, 사람이 아무리 멋진 것을 만들어도 자연만큼 아름다을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2020.10.11 08:4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march

      그렇죠? 가까운 곳에서 자주 보게 되는 식물들에는 더 관심이 가는 것같아요.보이지 않던 것들이 봉쿠요. 자연이 주는 선물을 충분히 즐겨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2020.10.12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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