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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도서] 동급생

프레드 울만 저/황보석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올 때가 있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단지 그 물결에 맡기고 흘러가면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물색할 수 밖에. 파도가 멈출 때까지...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어제의 이웃이, 친구가 어느 순간 적이 되어 돌을 던지고, 충성을 다했던 조국이건만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평범한 어린 소녀들이 위안부로 끌려가 인생을 송두리째 뺏겨버리기도 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대의 물살에 밀리는 상황은 이처럼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기에 솔직히 두렵기도 하다.

 

 독일의 아름다운 도시 슈투트가르트에서 두 소년이 만났다. 유대인 소년 한스와 독일 귀족 소년 콘라딘. 이 소설은 한스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16세 생일이 지나고 이틀 뒤 전학 온 콘라딘을 보는 순간 그의 우아한 모습과 행동 하나하나에 끌리는 한스. 우정의 로맨틱한 이상형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여겨지는 아이가 없었던 한스는 콘라딘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의 관심을 끌기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던 한스는 마침내 콘라딘과 친구가 되기에 이르렀다. 같이 여행도 다니고, 예술,철학,신,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우정을 키워나갔다.

 

 그러는 동안 정치적으로 불안한 기운이 서서히 번지고 있었다.벽에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표식이 나타났다거나 유대계 시민이 괴롭힘을 당했다는 둥. 하지만,그의 고향 슈투트가르트는 언제나처럼 평온할 것이라 생각했지만,아이들만 남아 있던 이웃집에 불이 나서 모두 죽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한스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그렇게 서서히 그들에게도 시대의 거센 물결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스는 콘라딘을 자기 집에도 데려오고 부모님께 인사도 시키고 했다. 반면, 콘라딘은 집으로 초대하지도 않았고,시간이 흘러 초대하기는 했지만 그의 부모를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가게 되고 콘라딘 가족을 만나지만,콘라딘은 한스를  모른척 한다. 한스는 며칠 후 따져 물었다.콘라딘의 어머니는 유대인을 혐오하는 사람으로 한스를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콘라딘은 한스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를 그런 두들겨 맞은 개 같은 눈으로 보지마! 내가 우리 부모님 대신 책임 져야해? 그게 뭐 하나라도 내 잘못이야? 세상이 그렇게 돌아간다는 것 때문에 나를 비난하고 싶니? 이제는 우리 둘 모두 꿈 꾸기를 그만두고 성장하면서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 아니니? (중략) 너는 누구에게나 네 이상적인 우정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너무 심하게 세워! 너는 단순한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해. -p120~121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았을 때 거리감이 생겨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알면서 모른척 넘어가기도 한다.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솔직한 상황을 알아버린 그 순간 한스와 콘라딘 사이에 조그만 개울 하나가 생겨버렸다. 그들의 학교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들이 닥치고 한스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만 콘라딘은 힘이 되어주질 않았고,한스 또한 그를 피하게 되었다.부모님은 한스를 뉴욕 친척들에게 보내고, 그들은 차마 조국을 버릴 수 없었기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미국으로 떠나기 이틀 전에 콘라딘이 보낸 한 통의 편지에는 자신은 히틀러를 선택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또한, 한스에 대한 깊은 우정도 ...

 

 미국으로 온 지 30년의 세월이 흐르고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 예전 학교의 인명부와 제 2차 세계대전 때 산화한 동창들을 기리는 추모비 건립에 기부해 달라는 호소문이 날라왔다.

 

그를 다시는 보지 못할 텐데 그가 죽었건 살았건 거기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문이 열리고 그가 걸어오는 일은 정말로 불가능한 일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지 않은가? -p150

 

그는 궁금하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콘라딘의 삶에 대해서 알게 된다. 그를 위해서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었고, 처음으로 그가 '안녕,한스'라고 말했던 3월 15일을 언제까지고 기억할거라는 한스가 만난 그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마지막 한 문장에 콘라딘의 가슴 아픈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스가 받았을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1971년에 출간된 이 소설의 1977년판 서문을 쓴 작가 아서 케스틀러는 이 책을 작은 걸작이라고 말했다. 책의 크기가 작고, 주제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인데도 향수 어린 단조 minor로 쓰여졌다는 느낌을 말함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정말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전반부에 펼쳐지는 그들이 나누는 우정은 은근한 미소를 떠올리게 했고,알게 모르게 압박해오는 정치적 상황은 서서히 긴장감을 높여왔다. 작가이기 이전에 화가이기 때문이었을까? 과장됨없이 담백하게 써내려간 글들은 수수한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그들의 영원할 수 없었던 우정이 더 아프게 다가왔는 지도 모르겠다. 나치 정권이 아니었더라면 그들의 우정은,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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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샨티샨티

    홀로고스트 희생자들의 아픔은 희생자들의 마음에 트라우마로 자리하여 치유할 수 없는 상흔으로 잔영처럼 남을 겁니다. 문을 열고 들어올 누군가를 기다리는 심정은 세월호 희생자들도 포함될 겁니다. 참혹한 나치 정권 아래서도 우정은 순연한 빛을 발하네요.

    2017.02.12 14:00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march

      정권을 잡은 한 사람으로 인해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이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이해가 되질 않아요. 세월호도 마찬가지구요. 문을 열고 들어올 누군가를 기다리는 심정...가슴이 서늘해지는 말씀이네요. 영혼이 통했다고도 할 수 있는 우정이었는데 그들의 우정이 지속되게 두질 않았네요. 콘라딘의 마지막 행보는 한스의 마음을,읽는 사람의 마음을 울려요.

      2017.02.14 02:01
  • 스타블로거 파란하늘

    서평단에 떨어져서 궁금하던 책이었습니다. 정말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도 그 사람을 기다리고 생각하게 되는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가슴 아픈 결말이라면 한스에게도 정말 큰 상처가 되었겠군요.

    2017.02.12 17:20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march

      공간도 다르고,신분도 다르고,그래서 가는 길이 다를 수밖에 없다 생각하면서도 콘라딘은 한스에게 잊혀지지 않는 친구였죠.그러니 차마 그의 이름을 볼 수가 없었을것 같아요. 한스에게 더 아픈 이름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결말이었어요.그래서 더 여운이 오래남아요.

      2017.02.14 02:11
  • 파워블로그 seyoh

    제목은 평범한데, 내용은 비범한 소설인 것을 리뷰를 보고 알았습니다,
    잘 읽었습나다, 감사합니다,

    2017.02.12 17:5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march

      제목은 정말 평범하죠? 내용과는 사실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 엑기스만 쏙 넣어서 정말 찐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2017.02.14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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