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어른들을 위한 연애소설!' 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단정해도 되는걸까? 책장을 덮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정말 깔끔하고 담백하다라는 거였다. 줄거리를 떠나서 다양한 생각들이 오가는 소설이었는데, 너무나 좋은 느낌이다. '마티네'란 연극,음악회,오페라 등의 낮 시간이 자유로운 학생과 주부들도 즐길 수 있게 시간대를 넓혀 대상을 확대하려는 예술경영 전략이라고 한다. 아주 건전한 마티네에서 따온 제목과 표지의 산뜻함 만큼이나 통속적이지 않은 사랑에 관한 매뉴얼을 본듯하다.
천재 기타리스트 마키노 사토시는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을 마친 날에 프랑스 RFP통신에 근무하는 기자 고미네 요코를 만났다. 첫 만남에서 주고 받은 대화, 그날의 분위기는 지속적으로 그들의 미래 속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남게된다. 그만큼 첫 만남이 강렬하게 남았다는 것일테다. 그 만남 이후 이라크 바그다드에 파견된 그녀는 자폭테러에서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게 되었고, 마키노는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해서였는지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몇 개월후 두번째 만남에서 마키노는 사랑을 고백하고, 세번째 만남에서 요코는 그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리처드라는 미국인 약혼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인생에 단 한 번 찾아오는 감정이라고 느낀 이 사랑이 이루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운명은 그들의 바람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다 5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만나게 된 그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다.
마키노와 요코가 첫 만남에서부터 주고받는 대화들을 듣고 있노라면 어떤 주제를 가지고 깊이 있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났을때 외모가 첫인상을 많이 좌우하긴 하지만, 주고받은 대화가 어떠하냐도 중요할듯 싶다. 그들의 대화는 실제로 내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이 빠져 들게 했는데,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마키노는 때때로 요코와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 정말 좋겠다는 아쉬움을 가지는데, 가치관이 맞고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고, 행운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배우자라면 더더욱.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새삼 알 수 있었는데, 성격이 안맞아서라는 이혼 사유가 대부분 가치관이 다르고 대화가 통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단 세번, 만남의 횟수가 중요한 것은 아닌가보다. 그게 바로 운명이라는 걸까? 그렇다면,
그들의 사랑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때, 조금은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도 사랑의 한 방법이 아닐까 싶었다. 내 문제로 상대방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생각, 강한 자존감이 때론 사랑의 방해요소가 될 수도 있을듯하다. 그런 생각들로 한번 타이밍을 놓치면 그 시간들을 돌리기는 불가능한 것인데, 보는 내내 안타까웠다. 운명적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그들은 이루지 못한 사랑이란 감정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모습이 아니었다. 자신의 또 다른 선택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안도하는 마음이 컸다.
기타리스트인 마키노 덕분에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을 기회가 많았는데, 그것도 상당한 재미로 다가오고, 기자인 요코 덕분에 이라크 전쟁을 둘러싼 다양한 정치적인 이슈와 더불어 난민문제등 국제적인 현안들이 많이 등장을 했는데, 깊이있게 생각해볼 문제들도 만날 수 있었다. 요코의 복잡한 가정사 속에서도 가족의 소중함, 아이에 대한 부모로서의 책임을, 마키노의 개인사에서는 인간적인 신뢰와 책임감을 동반한 성숙된 사랑의 모습들을 보았다.
마키노와 요코의 개인적인 매력에 푹 빠져버린 시간이었다. 한 번 빗겨간 그들의 운명적인 사랑이 5년 후의 만남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열린 결말로 남겨 두었다고 할 수 있지만, 난 그들을 믿는다. 내가 만났던 마키노와 요코라면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을것이다.
"사랑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어른님들,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