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이력에 쓰인 오래전에 읽었던 소설의 제목이 솔직히 반가웠다.
작가의 이름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제목이 기억이 나다니. 그만큼 인상 깊게 읽었다는 반증이다. 2년 전 정신의학과가 있는 층수를 누르면 엘리베이터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는 어느 주부의 에세이를 읽었는데 14년 전에 나온 그 소설은 온통 우울증에 관한 우울한 이야기로 가득 차있어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구나 싶다.
여전히 사람들은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기분장애를 금기시한다. 당장 나조차도 가족이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운전할 때마다 손에 땀이 나고 가슴이 뛴다는 증상뿐인데 갑자기 받아든 병명 앞에서 서로 시선을 피하기에 급급했었다.
허구로만 생각하던 내용이 사실은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을 이 에세이집을 읽고 알았다. 유명한 연예인의 가족이라는 것도. 그때는 소설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지만 우울과 무기력함에 잠식되어 헤어 나올 수 없다는 저자에게는 적기인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그토록 바라는 ‘열정’ 역시 언제 발현되는지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혹자는 우울증이 유전이라는 발언에 이의를 제기하지만 저자의 유년시절을 들여다보면 가족들이 처한 환경이 전염의 성격을 뛴다는 것은 자명하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는 치료할 여지를 주지 않으니 점점 더 커지고 우울이라는 형태로 가족 내에서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재혼한 엄마를 따라온 언니들과의 불화, 만나적도 없는 큰언니와 잘 살줄로만 알았던 조카들의 사고 같은 죽음은 저자에게 불안의 씨앗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흘러간 자신의 과거에 대해 관대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아침을 맞이하고 현재를 살 수 있다. 또 그래야만 미래에 대한 불안한 생각도 자리 잡지 못한다.”
저자는 우울증의 기저에 원망과 억울함을 떨쳐 내버리지 못한 불행했던 지난시절이 자리 잡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한때 글쓰기가 인생의 구원이었지만 또다시 과거의 그림자에 사로잡혀 꽤 오랫동안 침잠해 있다가 가족의 비밀을 털어놓듯 글을 쓴 이유는 그래서 납득이 간다.
과거를 털어버리는 일이 우울을 털어 내버리는 일이고, 다시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가져올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누구나 조금의 우울과 매일의 불안에 시달린다. 그런 시간을 길게 끌고 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살면서 나쁜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닐 테니 좋은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런 시간은 금방 지나 갈 것이다.
열정을 다해 쓴 글이 분명한 저자의 다음소설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