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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밥도둑

[도서] 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먹는 일 만큼 즐거운 일이 어디 있으랴.또한 사람의 기본 욕구 가운데서도 본능이라 할 먹는 일은 살아가기 위한 바탕이면서 사람과의 관계를 윤기나게 하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그래서 혼자 먹는 것보다는 여럿이 함께 먹는 가운데 음식에 대한 기억과 사람과의 추억이 더욱 깊어져 간다고 생각한다.눈 감으면 해묵은 기억이 솔솔 피어 오르며 아련한 추억이 감질맛 나도록 그리워지는 것은 나이를 먹어간다는 이유는 아닐까.누구나 먹는 일에 대한 기억과 추억이 있기 마련이다.

 

 황석영 작가와 함께 떠나는 밥도둑 타임 머신은 비록 누렇게 빛바랜 기억일지라도 마음 속엔 아직도 선명하게 낙인(烙印)이 찍혀 있다.늘 먹는 다반사를 비롯하여 특별한 만남 속에 특별한 음식과 함께 식복을 누리며 한때나마 사람들과의 관계가 촉촉하게 윤기를 더해 주는 묘한 마력이 있다.관계도 좋아지고 일도 더 잘 되니 먹는 일이 어찌 빈 속을 채우는 일에만 머물 수 있단 말인가.속이 든든해지고 기분도 좋아지고 관계도 나아져 가는 먹는 일에 대해 내 기억과 추억 속으로 빠져 보고자 한다.

 

 언젠가의 그 맛집을 찾아가보아도 대부분은 사라져버렸거나 주인이 바뀌었다.만약 예전이 장소에 음식점이 그대로 있고 늙은 주인이 아직도 요리중이며 음식의 맛도 여전하다면 우리는 실로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그러나 그러한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세상과 내가 동시에 변해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렇게 맛의 기억을 더듬는 일은 관계의 소중함을 깨우쳐주며 고단한 일상을 견디게 해주고 스스로를 위무해준다. -P6

 

 눈을 감으면 음식 가득 담긴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논배미로 사뿐사뿐 걸어오시는 할머니 모습이 역력하다.그 날은 모심는 날이다.모심는 날엔 점심과 샛걸이 그리고 저녁까지 준비하여 모심는 일손들에게 대접한다.할머니께서 만드신 음식의 가짓수는 열 가지 정도였는데,가장 입맛을 돋구는 음식은 갈치와 감자 조림이었다.짭잘한 듯 구수한 듯 입맛을 돋구어 주었고,동네 일손들은 며칠 굶기라도 한 듯 밥 한 공기는 양에 차지도 않아 공기 밥을 뚝딱 해치웠다.모내기 점심이 끝나고 세 네시 정도 될 무렵엔 새참을 내오셨다.단연 할머니 몫이었다.막걸리와 겉절이 김치 그리고 봄나물로 버무린 각종 산나물들을 내오셨다.나는 못줄잡이로 대략 국민학교 3학년 시절이었던 것 같다.벼가 익어 벼를 베고 홀태로 낱알을 훑어내는 날도 역시 갈치와 감자 조림은 할머니의 단골 메뉴였다.갈치의 삼삼한 맛과 감자의 포근하게 씹히는 맛에 구수한 조림 국물 맛이 내 기억에 깊게 남겨져 있다.이제 할머니께서는 고인이 되셔서 갈치,감자 조림 흉내를 완전하게 내는 것은 어렵지만 그 시절이 그리워지고 추억에 사무치게 되면 나는 직접 갈치,감자 조림을 직접 만들어 먹는다.

 

 군대를 갔다 온 대한민국 남자들은 군대에서의 추억도 적지 않을 것이다.나는 행정병으로 자대를 배치받게 되었는데 공교롭게 행정병 티오가 차서 임시로 보조 취사병을 하게 되었다.주된 일은 허드렛일이었는데 홀 바닥을 쓸고 닦고,먹고 난 식기들을 닦고 건조시키는 일,때로는 고참병들을 따라 김치도 만들고 음식도 만들어 보곤 했다.군대는 기합이 센 곳이지만 식당 만큼 센 곳이 어디 있을까.늘 무서운 고참들 때문에 긴장과 눈치를 보면서도 먹을 때 만큼은 고참들이 신병들에게 베푸는 약간의 화기애애함으로 먹는 일이 말할 수 없이 즐겁기만 했다.군에서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리필용 고추장으로 밥을 비비고,어깨 너머로 배운 닭도리탕이 일품이었다.장교 후보생들을 지원하던 식당이었던 관계로 지위가 높은 인사,하사관들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식당 주변을 청결하게 하면서 손색 없는 음식 맛을 내기 위해 재료의 적당한 배합과 맛의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했다.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행정병 티오가 나서 내가 일할 곳으로 배치되어 갔다.또 하나 행정병으로 근무할 무렵 부대 근처에 사는 방위병들이 출근하면 그들에게 부탁해서 술과 안주거리를 조달케 하여 마음에 맞는 동기,한 두달 고참,한 두달 후임병들과 조촐한 회식을 했다.삶에 있어 비공개적이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이젠 먼 추억으로 남아 있다.

 

 황석영 작가의 먹는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이 글을 읽다 보면 작가의 쓸쓸하게 혼자 먹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얼굴을 맞대고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음식을 나눠 먹는 일 만큼의 밥도둑은 없다고 한다.동감한다.그래서 옛말이 '둘이 먹다 죽을 맛'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작가는 만주에서 태어나고 평양이 고향인 어머니를 따라 한국 전쟁을 피해 남으로 내려 왔던 분으로 밥도둑에 얽힌 기억과 추억은 고단하고 옹색했던 지난 날의 정겨움과 그리움을 응축하고 있다.먹는 일과 관련하여 기억과 추억도 많다.군대,감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작가 어머님이 들려 주셨던 온반의 기억,독일 가정식 추억,잠시 속세를 떠나 스님이 되고자 절에서 겪었던 음식 추억,각 지역별 음식 추억,북녘 음식에 대한 추억 등을 담백하게 들려 주고 있다.

 

 내게 밥도둑이 뭐냐고 물으면,"어린 시절 온식구가 한 상에 둘러 앉아 콩나물 비빔밥을 먹던 추억"이라고 말하련다.열 명 가까웠던 대식구였던 어린 시절 겨울 날엔 식재료를 준비하는 것도 고단하고 귀찮기만 하다.그래서 어머니는 콩나물 콩으로 직접 기른 콩나물을 뽑아서 밥 위에 콩나물을 앉혀 콩나물 밥을 만드셨다.콩나물 밥의 백미는 양념장이다.어머니께서 만든 양념장엔 간장,고춧가루,다진 파,다진 마늘,볶은 깨,설탕,참기름을 섞었다.조부모,아버지는 따로 콩나물 밥을 해 드리고,어머니를 비롯한 형제자매들은 큰 양푼에 콩나물 밥과 양념잡을 적당하게 배합하여 쓱쓱 비벼댔다.어느 정도 맛깔스럽게 비벼지면 게 눈 감추듯 맛나게 먹어 치웠다.반찬은 동치미 하나면 족했다.그 외 설이 다가올 무렵엔 전통 음식을 준비하셨는데,유과,깨강정,쑥떡,인절미 등이 손색이 없는 훌륭한 작품이었다.나는 군대에서 취사병 생활,대학 시절 자취 생활 등으로 혼자 챙겨 먹어야 했던 고단함 속에서 내가 만들어 먹는 재미와 즐거움이 오래 남아 있다.그리고 대학에 입학한 후 처음으로 입에 댄 시장 골목길의 순대 맛은 주린 배를 채워 주면서 쫄깃쫄깃한 내장 맛이 인이 박혀서인지 속이 출출할 때면 동네 순대집을 자주 찾는다.순대 위에 떡볶이 국물을 얹어 먹는 매콤 달짝한 맛은 먹는 즐거움을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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