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일하고 싶다, 하지만
KBS스페셜 ‘우리 반 15등 김유진 지방대생 이야기’ : 대한민국의 중간, 5등급 인생
나, 있는 그대로 참 좋다 :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는 나에게 필요한 마음 주문
왜 일하는가? : 밥벌이, 삶, 영성을 말하다
올 5월 24일에 방영된 KBS스페셜 ‘우리 반 15등 김유진 지방대생 이야기’를 보면서 휴지로 코를 풀고, 벌게진 눈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느라 어쩔 줄 몰랐습니다. 제 아들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지방대를 졸업한 29살의 아들은 작년 대기업 공채에 응시했지만, 가을낙엽처럼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방향을 바꾸어 올해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아직도 좋은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의기소침해 있는 아들을 보며 해 줄 수 있는 말은 없습니다. 기도한다는 말도 하기 어렸습니다. “그렇게 기도했는데 왜?”라는 반발이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6월 말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들이 롯데그룹에 지원해 최종면접을 통과했습니다. 7월 1일부터 출근을 한다기에 아내는 아들을 위해 양복 한번을 선물했습니다. 아침 6시 30분 아들이 첫 출근 하는 날 배웅하는 아내는 눈물을 글썽거렸고 저도 콧잔등이 시큰했습니다. 아직 하나의 관문이 더 남아있는데 최종선발된 두 사람 중 한 명은 탈락하는 인턴 신분입니다.
아들은 KBS스페셜 ‘우리 반 15등 김유진 지방대생 이야기’ : 대한민국의 중간, 5등급 인생에 딱 맞는 표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그들은 거창한 꿈이 아니라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그 앞에서 수많은 좌절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20대나 30대는 5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를 포기한 세대)라 불릴 만큼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KBS스페셜은 이런 현실을 직시하며 문제를 제기합니다. 한 해 평균 수능 응시생 약 60만 명인데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입학 정원은 약 7만 명이라고 합니다. 고등학교 한 반 정원을 30명으로 잡으면 ‘인 서울’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학생은 고작 3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들은 소수의 승자만이 살아남은 우수군에 속하지만, 대한민국 중간인 15등 정도의 성적을 거둔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지방대에 진학하게 됩니다. 90년대에 태어난 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그들을 맞이한 건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 사태였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인생을 낭비하고 준비가 안 된 상태로 대책 없이 취업 시장에 뛰어든 것이 아닙니다. 필자가 이 방송을 보며 대책 없는 눈물을 흘린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명문대를 나온 학생들도 취업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 ‘인 서울’ 졸업장은 기본 요구조건이다. 넘을 수 없는 학벌의 장벽이 굳건하기에 지방대생들은 연속되는 좌절을 맛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의 아픔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방송에 등장하는 최지원 양은 가장 화려한 요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학 4년 수석, 토익 970점, 캐나다 연수, 공공기관 인턴, 금융 자격증 7개’ 등을 가지고 있지만, 번번이 취업의 문턱에서 좌절 중입니다. 그러기에 이들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가장 큰 기회는 공무원 시험입니다. 자그마치 44만 명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늘도 노량진의 컵밥을 먹으며 책상 위에 앉아 똑같은 하루를 반복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학벌과 요건을 넘어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역전을 시킬 기회는 공무원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힘든 현실 속에서 누가 저들을 위로하고 삶의 소망을 심어줄 수 있을까요?
밥벌이의 지겨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상처와 아픔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SNS에 떨어놓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쓴 수필이나 시는 한겨울의 모진 바람을 이기고 가장 먼저 몽우리를 터트려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매화나무처럼 어깨가 처진 사람들에게 삶의 아름다움과 희망을 전해줍니다. 저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삶의 아픔을 솔직히 보여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너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고 상처가 있어, 그렇지만 그 삶 앞에 절대 비굴하거나 기죽지 않아! 왜? 나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니까?” 이런 종류의 글이 사랑받는 이유는 신세타령이나 근거 없는 무한긍정을 넘어서 깊은 깨달음을 얻게 하는 아포리즘(aphorism)이 있습니다.
‘나, 있는 그대로 참 좋다’의 저자 조유미도 그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페이스북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120만 명의 팔로워와 함께하는 그녀는 자신을 찾는 팔로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또, 잊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수능 5등급이고 별 볼 일 없는 지방대생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될지 알 수 없으나 그녀의 글을 읽으면 자존감이 회복되며 누군가 내 편이라는 위로가 있고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회복됩니다. 필자는 ‘내 인생에 굴곡이 몇 번 있었지만 내 모습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나를 미워하지 않는 자세 때문이었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내가 나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는 연습부터 하자.‘ 고 말합니다.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대부분 사람은 좌절이나 절망과 같은 부정적 단어에 익숙해지기 시작합니다. 더군다나 나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는 친구나 후배를 보면 너무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깊은 탄식을 합니다. “나 같은 잉여 인간이 살면 뭐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품고 힘들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어둠을, 이 함정을 벗어난 소수의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주로 위인이라는 존칭을 붙이며 칭송합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특징은 위인이나 영웅보다 나하고 똑같은 삶을 사는 친구나 동료, 이성으로부터 얻는 삶의 위로를 더욱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SNS가 젊은 층에 폭발적 인기를 얻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내 마음이 침잠(沈潛)되어 모세처럼 하나님이 멀리 계시다고 느껴질 때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깨닫게 하는 것이 이 책의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5년간 MBC에서 직장생활을 했고 뉴스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9시 ‘뉴스데스크’의 메인 앵커를 역임한 조정민 목사는 밥벌이의 지겨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설교는 본질을 꿰뚫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복음의 언저리를 맴돌지 않기에 그는 돌직구 목사라는 애칭도 가지고 있습니다. 조정민 목사가 중앙일보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뉴스를 25년간 전했는데 사람들이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왜 그런가. 그건 ‘나쁜 뉴스(Bad news)’라서 그렇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굿 뉴스(Good news)’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난다. 사람이 바뀐다.”
사람을 살아나게 하는 것?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앞에서 언급했던 조유미 작가의 글이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했지만, 사람을 살리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저는 분명히 믿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조정민 목사는 자신의 책 ‘왜 일하는가?’를 통해 일의 목적과 방향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지방대 5등급의 인생,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좋은 학벌과 실력을 갖추고 있다 할지라도 취업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취업 전쟁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반대로 어렵게 취업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퇴직하는 직장인의 비율이 상상외로 높습니다. 취업포털사이트 사람인에 의하면 우리나라 직장인 평균 퇴사율이 17%인데 1년 이하의 신입사원 퇴사율은 49%에 이른다고 합니다. 원인은 이직, 업무 불만, 연봉 불만의 순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밥벌이가 얼마나 지겨운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일어나고 있을까요? 조정민 목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일이 무엇입니까? 일터는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왜 일합니까? 왜 꼭 그 일을 해야만 합니까? 이런 질문을 계속해서 자신에게 던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제대로 묻지 않고 일을 시작하면, 마치 손등에 떨어진 눈송이처럼 인생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175쪽)
우리는 일이란 무엇인지, 일터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더군다나 교회에서도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합격하기 위해서만 기도했지 왜 합격해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인이나 비신앙인의 한결같은 꿈은 내 자녀가 보란 듯이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문제는 합격하지 못한 채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는 내 형제에 대해 무관심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조정민 목사의 이 한마디는 꼭 기억하고 싶습니다. ‘일터에서 사랑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받은 사랑을 전하기 위해 일하십시오. 사실 영성이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아르바이트생이나 우리는 모두 일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일터가 자신에게 주는 삶의 기쁨이나 의미는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다르지 않은 것이 있는데 사랑입니다.
이 글을 쓰며 얻는 삶의 결론은 자신과 타인을 사랑하는 그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힘은 기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든, 취업했든 그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삶의 문제는 사랑으로 치유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요한의 이 한마디가 가슴을 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오히려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벌 받을 일을 생각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증거입니다.’(요일 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