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니스의 상인' 중에서
제7강 베니스의 상인 |
- 권오숙 외대교수 -
작품 개요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죽음으로 끝나는 비극과는 달리 모든 문제들이 원만히 해결되고 행복한 결말을 맺는 극들을 희극이라고 합니다. 셰익스피어는 희극을 가장 많이 썼는데 그 유형도 다양하다. 크게 나누어보면 , 로망스, 풍속 희극, 문제극, 소극으로 나눌 수 있다. - 밧사니오는 포오샤를 사랑하는가, 그녀의 재산을 사랑하는가? 안토니오는 포오샤에게 구혼을 하러 가는 친구 밧사니오를 위해 자기 살 1파운드를 담보로 샤일록에게 3천 더컷을 빌린다. 단순히 그의 이런 헌신적 행위뿐만 아니라 이 극 속의 많은 대사들이 밧사니오를 향한 안토니오의 애틋한 감정을 담고 있다. 그런 그의 감정을 동성애로 읽어내는 데는 셰익스피어 자신이 동성애 논의에 휩쓸려 있는 상황이 작용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가 쓴 연시(戀詩)들 모음인 『소네트 집』에 실린 대부분의 시들이 남성을 향한 연정을 노래한 것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이 시집이 그의 후원자인 젊은 사우샘스턴 백작에게 헌정된 것임도 그를 동성애 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었다. 안토니오: 내 돈주머니든 내 육체든 내 재산 마지막 한푼까지 안토니오: 자네가 친구를 잃는다고 슬퍼만 해준다면 포오샤: 살아있는 딸의 의사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산에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함 고르기를 통해 신랑감을 선택해야 한다는 설정은 단순히 딸의 신랑감을 선택하는데 있어 가부장의 영향력을 재현한 것은 아니다. 물론 포오샤는 이런 아버지의 유언에 매여 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목소리 속에 가부장제에 대한 다분히 페미니스트적인 비판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함 고르기>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셰익스피어의 많은 작품에 일관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주제인 ‘겉과 속’의 문제이다. 이 게임은 번지르르한 외관이나 편견에 쉽게 속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며 외관과 실재를 혼동 말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벨몬트는 ‘아름다운 언덕’, 또는 ‘보물의 언덕’이란 뜻이다. 이 극에서 베니스와 벨몬트는 한 장 씩 교차하면서 배경을 이루고 있으며 대단히 대조적인 장소로 묘사되고 있다. 우선 베니스는 안토니오, 밧사니오, 샤일록으로 대변되는 남성들의 세계이다. 이곳은 상업의 도시로서 각종 욕망과 음모가 지배하는 세계이다. 반면 벨몬트는 포오샤로 대변되는 여성의 세계이다. 그곳은 아름다운 사랑과 음악, 낭만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또한 베니스가 법과 정의가 지배하는 세계라면 벨몬트는 자비와 관용, 사랑이 지배하는 세계라고 볼 수 있다. 다른 낭만 희극에서 도시나 궁정에서의 갈등과 악이 숲이라는 초록 세계에서 치유되듯이 이 극에서도 베니스에서 발생한 갈등과 악이 벨몬트의 포오샤의 손을 거쳐 치유가 된다.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베니스는 섬과 섬을 연결하는 수로가 발달하여 일찍이 국제 무역이 성행하는 상업 도시로 발달하였다. 특히 14-5세기에는 해상 무역 공화국으로써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 작품 속에서도 안토니오가 해상 무역을 하는 거상으로 등장하고 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여성이 무대에 서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변성기가 되기 이전의 소년들이 여장을 하고 여자 역을 하였다. 셰익스피어는 그런 연극사적 제약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여주인공들이 다시 남장을 하는 테크닉을 취했다. 이 극에서도 시동으로 변장을 하고 아버지의 도망치는 제시카, 법관으로 변장한 포오샤, 서기로 변장한 네릿사, 이렇게 세 명의 남장여주인공이 등장한다. 포오샤는 처음 판결을 시작하면서 샤일록에게 자비를 촉구한다. 그리고 정의보다 자비가 더 위대한 것임을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포오샤: 자비라는 건 의무가 아니라 하늘에서 이 대지에 내리는 반유태주의는 16세기에 전 유럽의 보편적 담론이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1594년에 이 유태인 배척사상에 더욱 불을 지른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여왕의 전의(典醫)였던 유태인 로데리고 로페스가 스페인 국왕에게 매수되어 여왕을 독살하려 했다는 사건이었다. 로페스는 1586년부터 여왕의 의사로 일해 온 포르투갈인 유태인이었다. 그는 결백을 주장하다가 결국 스페인 왕에게 사기를 해 여왕 독살 음모에 연루됐다고 고백한 뒤 처형당했다. 후에 그는 심한 고문에 거짓 자백을 했다고 말했으며 여왕 또한 그의 유죄에 의구심을 지녀 사형 집행장에 3개월 동안이나 서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쨌든 이 사건을 계기로 번진 반 유태 감정 때문에 셰익스피어가 이 극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샤일록은 자신의 딸마저도 그를 증오하는 잔악하고 몰인정한 인물이다. 그는 딸이 도주한 뒤에도 그녀의 안위나 행방보다는 그녀가 가져간 다이어몬드와 금화만 찾는 냉혈인간으로 묘사되어 있다. 더욱이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베고야 말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장면에서는 더 이상 인간적 면모를 찾아볼 수가 없다. 이에 셰익스피어는 반유태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안토니오: 저 악마는 제 목적을 위해 성경까지 인용하는군. 하지만 원전을 전체적으로 꼼꼼이 살펴보면 셰익스피어의 인물 묘사는 그렇게 단편적이고 일차원적이지 않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그의 인물들은 항상 복잡하고 섬세한 면을 지니고 있다. 샤일록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고리대금업에 대한 안토니오의 모욕적 언사와 행동, 그리고 기독교도들에 의해 오랫동안 행해진 유태인들에 대한 경멸을 논하는 그의 대사에는 인간적인 분노가 강렬하게 투사되어 있어 관객의 공감을 끌어낸다. 샤일록: 유태인은 눈이 없나? 유태인은 손, 오장육부, 이런 샤일록 묘사를 두고 비평은 양분된다. 그의 전복은 결국 봉쇄되었다는 신역사주의적 시각과 그의 전복은 봉쇄되더라도 그 문화유물론적 시각으로 말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철저한 기독교사회였던 중세 시대에 유태인들은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으면 공직은 물론 기능인 조합인 길드에도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태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독교인들이 하지 않는 `대금업` 뿐이었다. 당시 중세 교회법에는 돈을 이자를 받고 빌려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세시대에 상업체계가 조금씩 발전하면서 대금업의 역할은 점점 중요해졌다. 유태인들은 따라서 `대금업`의 전문가가 될 수밖에 없었고, 이를 통해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자신이 간절히 원하던 사람이 바른 함을 고르자 기쁨에 찬 포오샤는 밧사니오에게 자신을 포함한 모든 소유물을 양도한다고 말한다. 포오샤: 지금까지는 제가 이 집의 주인이었으며, 하인들의 상전이었으며 그리고는 그의 손에 반지를 끼워 준다. 절대 이 반지를 버려서도, 잃어버려서도, 남에게 주어서도 안된다고 말하며 만약 그럴 경우에는 사랑이 변한 걸로 알고 자신이 심히 책망할 거라고 말했다. 결국 영리한 포오샤는 가부장 체제에 순응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이 반지를 통해 남편에 대한 주도권을 획득한다.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교묘하게 남성들에게 순종하는 듯하면서도 그들을 사실 조종하는 여성 인물들이 등장한다. 보통 셰익스피어의 희극에서는 감상적이고 판단력이 부족하여 쉽게 속고 격정에 휩싸이기 쉬운 남자들과는 달리 지식, 기지, 용기를 두루 갖춘 여자들이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제시될 때가 많다. 그 중에서도 셰익스피어가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제시한 사람이 바로 포오샤이다. 그녀는 흔히 남성들의 세계라 일컬어지는 법정에서 그 어떤 남성들보다도 뛰어난 기지와 지혜를 발휘하여 자비와 정의를 동시에 구현하는 존재가 된다. 포오샤: 친구란 함께 대화를 하고 시간을 보내고 포오샤: 제 아무리 이성이 혈기를 억누를 법을 만들어내도 안토니오: 나는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걸세. 그래쉬아노: 그럼 난 어릿광대역이나 맡겠네. 이왕 늙어갈 바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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