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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꾼 만남

정민 저
문학동네 | 2011년 12월

 

                      굿모잉 CEO중에서

 

“사제의 정이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사람들은 아무도 스승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학생은 있어도 제자가 없다. 물질적 교환가치에 의한 거래만 남았다. 마음으로 오가던 사제의 도탑고 절박한 정은 찾아볼 길이 없게 되었다. 나는 이것을 슬퍼한다. 이 글을 쓰는 까닭이다.”

한 동안 연암 박지원을 연구하던 한양대 정민 교수는 지난 10여 년 동안 다산 정약용에 몰두하고 있다. “연암은 높고 크고, 다산은 깊고 넓다. 연암은 읽는 이의 가슴을 쿵쾅대게 하고, 다산은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연암은 치고 빠지지만, 다산은 무릎에 앉혀놓고 알아들을 때까지 일깨워준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중에서).” 이렇게 정민 교수는 두 분을 학문의 스승으로 모시고 오늘도 여전히 고전 속에서 지혜의 샘물을 수많은 저작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고전(古典)을 읽지 않으면 고전(苦戰)을 면치 못한다’는 말을 글로 보여주는 정민 교수는 이미『미쳐야 미친다』를 통해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의 운명적인 만남을 소개한 바 있다. 정교수는 그 외에도『다산어록청상』, 『다산 선생의 지식경영법』, 『다산의 재발견』을 통해 전방위적 지식경영 전문가로서의 다산뿐만 아니라 삶의 스승으로서의 다산의 면모를 보여줬다. 이번에 펴낸 『삶을 바꾼 만남: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은 다산의 인간적 면모 뿐만 아니라 스승과 제자의 ‘만남’이 얼마나 아름다운 ‘맛남’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역작이 아닐 수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 평생의 연을 복원하다

‘가르치는’ 선생은 있어도 ‘가리키는’ 스승은 없고, 한 동안 배우는 학생은 있어도 평생을 깨우치려는 제자가 없는 오늘날, 정민 교수는 시대의 스승, 다산과 그의 제자, 황산이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사제관계의 전형을 세상에 나오지 못한 채 꼭꼭 숨어 있는 먼지 낀 자료들 속에서 파헤쳐 보여주고 있다.

“학자는 자료가 아니라 관점으로 경쟁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다산에 관련된 자료가 있다는 제보를 듣거나 발견하면 매사를 제치고 달려가는 정민 교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 사람이 평생을 통해서 맺었던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복원하는 참으로 고독하고 지난(至難)한 작업이 있었기에 인간적인 스승 정약용과 속 깊은 제자 황상의 아름다운 만남을 가슴 뭉클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어렵게 찾아가 간절히 찾고 있던 자료를 손에 쥐는 순간 날뛰듯이 기뻐하는 한 학자의 모습, 그 속에서 오래된 물줄기를 찾아내 길을 안내하고 숨겨진 광맥을 찾아 나서는 한학자로서의 정민 교수의 연구에 동료 학자로서 깊은 존경심과 뜨거운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절대 고독의 시간을 벗 삼아 찾고(search) 또 찾는(search) 저자의 치열한 연구(ReSearch) 덕분에 우리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발견하는 한 줄기 빛처럼 고전 속에 담긴 지혜의 샘물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삼근계, 운명적 만남의 시작

『삶을 바꾼 만남: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은 인터넷에 지난 1년간 집필했던 작품의 결과다. 황상은 다산이 강진 유배시절 만났던 수많은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 스승 다산의 제자 가르침은 '과골삼천'(?骨三穿)이라는 말에 집약되어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귀양지에서 책상다리로 20년을 앉아 책을 읽고 쓰다가 방바닥에 닿은 복사뼈에 구멍이 세 번이나 뚫렸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공부에 대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던 스승 다산이 "나도 부지런히 노력해서 이를 얻었느니라. 너도 이렇게 하라." 고 말하며 제자 황상에게 삼근(三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해라”의 가르침을 내려주었다. 그 후 스승이 했던 방식으로 그대로 따라 하면서 높디높은 스승의 지혜를 몸소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제자 황상의 모습은 감동적이라는 표현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다산의 강진 18년 유배기간 키웠던 수많은 제자 중에서 황상은 끝까지 스승을 진심으로 한결같이 섬긴 유일한 제자다. 다산은 척박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묵묵히 책을 읽었다. 이해가 한 가면 갈 때까지 초사하면서 무작정 읽고 메모하고 베꼈다. 하루는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려던 더벅머리 소년이 다산에게 자신의 세 가지 문제를 말하면서 자신도 공부할 수 있냐고 여쭙는다. 자신은 너무 둔하고, 앞뒤가 꽉 막혔으며, 답답하다고 하자 다산은 다음과 같이 용기를 북돋워준다. 배우는 사람은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민첩하게 금세 외우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제 머리를 믿고 대충 소홀히 공부한다. 둘째, 예리하게 금방 글을 잘 지어서 재주를 못 이겨 튀려고만 하고 진중하지 못하다. 셋째, 깨달음이 재빠른 사람은 투철하지 않고 대충해서 오래가지 못한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서 다산은 공부는 너 같은 사람이 해야 된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소년은 감격했다. 다산의 이 한마디가 소년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이 소년이 바로 다산을 평생 동안 흔들림 없이 스승으로 모신 황상이다. 세상사에 어둡고 우둔했던 소년이 스승의 죽비 같은 짧은 글 한 편에 흠뻑 빠진 이후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가는 과정은 한 편의 대하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봄은 가고, 구름도 간다. 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겠지. 하지만 가슴속에 각인된 스승의 가르침만은 대나무, 소나무의 기상으로 사시에 변함이 없다. 바위처럼 꿈적 않는다.”

황상은 둔할 둔(鈍), 막히 체(滯), 어근버근할 알(?), 이 세 가지를 자신의 문제라고 했다. 스승은 재빠를 민(敏), 날카로울 예(銳), 빠를 첩(捷)의 세 글자로 대구를 맞춰, 재빠른 천재보다 미욱한 둔재의 노력이 훨씬 더 무섭다고 일깨워주었다. 황상은 스승이 써준 이 글을 평생 어루만지며 명심누골(銘心鏤骨), 마음에 새기고, 뼈에 아로새기면서 60년 동안 그의 곁을 지켰다. 황상은 이날부터 좌우를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들이파고, 막힌 것을 틔우며, 갈고 또 닦았다. 마부작침(磨斧作針)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말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제자 황상은 재주가 덕을 넘어서면 안 된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매일매일 무섭게 단련하고 연마하면서 지루한 반복을 거듭했다. 지루한 반복만이 어느 순간 반전을 일으키며, 반전은 마침내 역전의 감동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다산은 제자들에게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공부법을 강조했다.

“첫 의문은 다소 엉뚱하고 작은 데서 출발했다. 작은 의문을 계통을 갖춘 지식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을 실례를 들어 보여주었다... 격물은 사물을 바룬다, 즉 무질서한 사물을 가지런하게 정돈한다는 의미다. 헝클어진 문서를 탁탁 쳐서 네 귀퉁이를 반듯하게 맞추는 것이 바로 격(格)이다. 이렇게 정돈하고 보면, 앞서는 잘 보이지 않던 의미가 반듯하게 드러난다. 사물을 바루어서 앎에 도달하는 공부가 격물치지(格物致知)다" p.231

격물치지는 사물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여(格物) 지식을 넓히는 것(致知)이다. 아버지로서 다산이 아들에게 쓴 편지에도 격물치지의 본질이 나온다. ”격(格)이란 밑바닥까지 끝장을 본다는 뜻이다. 밑바닥까지 끝장을 보지 않는다면 또한 아무런 보탬이 없게 된다."

다산의 가르침은 넓고 깊었다

스승으로서의 다산의 가르침은 자신이 머물던 주막집 봉놋방 좁은 서당에 써붙인 사의재(四宜齋)란 이름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사의재는 생각은 담백해야 하고, 외모는 장중해야 하며, 말은 과묵해야 하고, 동작은 무거워야 한다는 의미다. 다산은 담백한 생각, 장중한 외모, 과묵한 말, 무거운 몸가짐을 근간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미덕을 하나 둘씩 실천해나간다. 다산은 천자문, 사략, 그리고 통감절요에 중심을 두는 잘못된 학습법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문심혜두(文心慧竇)라는 효과적인 학습 로드맵을 개발했다. ‘문심’이란 '문자를 알아차리는 마음'이자 '글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혜두’의 '두(竇)'는 구멍이라는 뜻이니 혜두는 '지혜의 구멍', 곧 '지혜의 샘'을 의미한다. 문심혜두를 개발하자는 말은 글을 이해하는 지혜의 구멍을 열어주자는 뜻이다. 다산은 제자들의 강점과 재능을 파악하고 이를 부단히 연마할 수 있도록 정과실천(定課實踐)의 방법을 활용하였다. 목표량을 정해 놓고 집중적인 훈련을 통해 제자들이 진척 정도를 파악하고 어떤 분야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는지를 주도면밀하게 관찰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 잘 된 점은 칭찬해서 기운을 북돋아주고, 어색한 점은 표나지 않게 피드백을 주면서 스스로 깨닫게 하는 방법이다.

다산은 자애로운 스승임과 동시에 참으로 엄격한 스승이기도 했다. 제자 황상이 열여덟 살에 장가를 가더니 예전처럼 공부에 매진하지 않자 입심개지(立心開志), 마음을 세우고 뜻을 고쳐먹어 글공부에만 오로지 힘 쏟지 않으면 다시는 안 보겠다고 불호령을 쳤다. 다산은 장가를 든 신혼의 제자 황상에게 내외가 따로 자라는 불벼락을 내릴 정도로 제자의 느슨함과 나태함을 죽비로 내리쳤다. 공부란 다급한 마음으로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방심 없이 일로매진해야 된다고 꾸짖는 불호령은 다산의 주특기다. 한 번 잘 못이 노출되면 인정 사정 없다. 흐트러진 제자들의 공부 자세에 일격을 가한다. 제자들은 스승의 삭풍 같은 질정(叱正)에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오로지 글공부에 매달린다. 엄격함의 이면에 따뜻한 인간적인 스승의 모습도 함께 갖춘 다산은 제자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드는 면모도 갖추고 있다. 18년 만에 상경하였던 제자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 순간의 만남이 영원한 이별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제자를 사랑하는 손길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제자에게 선물을 챙기며 다음과 같은 마지막 글을 남긴다.

“꾸러미 안에는『규장전운』작은 책자 한 권과 중국제 먹과 붓 하나, 부채 한 자루와 담뱃대 하나가 들어 있었다. 엽전 두 꿰미는 따로 묶여 있었다. 다산의 꼼꼼함이 이러했다. 그는 제자가 먼 길을 돌아갈 때 배를 곯을까봐 여비까지 따로 챙겨두었다. 황상은 못난 제자에게 주려고 의식이 혼미한 중에도 힘겹게 글씨를 썼을 스승을 생각하며 울음을 삼켰다.”

당신은 이런 만남을, 이런 사람을 가졌는가

삶은 만남의 연속이다. 저자는 어떤 만남은 운명이라고 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 사물과의 만남, 사건과의 만남, 책과의 만남처럼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과 사물이 만나면서 사람다움을 만들어간다. 만남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오늘의 나는 내가 만난 사람과 내가 읽은 책이다. 나를 바꾸기 위해서는 내가 만나는 사람과 내가 읽는 책을 바꿔야 한다. 스승과 제자의 만남도 사람과 사람의 만남, 사람과 책과의 만남이 만들어가는 인간관계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만들어가는 소셜 미디어 시대의 참을 수 없는 소통과 만남의 가벼움을 스승 다산과 제자 황상이 만들어가는 한편의 대하 드라마에 비추어 다시금 반성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북멘토] 유영만 |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
한양대학교에서 교육공학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Instructional System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즐거운 학습과 건강한 지식을 창조하여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을 5년간 경험한 후 현장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진실과 진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안동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는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욕망하는 지식생태학자이자, 삼행시 전문 시인으로 다양한 분야의 책 읽기와 ‘뜨거운’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으며, 주요 저서와 역서로는 <생각지도 못한 생각지도>, <곡선이 이긴다>, <핑! : 열망하고 움켜잡고 유영하라>, <에너지 버스> 등 수십 권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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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lows1

    정민교수의 책은 매력이 있어요. 특히 다산에 대한 글은 탁월한 것 같해요..이 책을 구입해서 읽고 있는데 인터넷에 연재되어 소통을 위한 글이다보니 평소 정민교수의 문체와는 조금은 다른 느낌예요..다산과 황상의 아름다운 만남의 이야기..다산도 다산이지만 제자 황상도 별난 사람인듯하네요~

    2012.02.04 14:49 댓글쓰기
    • 기쁨주기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다른 책에서 정민 교수가 자료수집에 얼마나 철저한가를 읽은 기억이 있군요. 그래서 끼리 끼리 만난다는 말이 있는 것 같아요^^

      2012.02.04 23:31
  • 스타블로거 꿈에 날개를 달자

    나는 어떤 만남, 어떤 사람을 가졌는지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저는... 어떤 사람이 주변에 있는지... 잘 생각해 봐야겠어요..

    2012.02.04 14:50 댓글쓰기
    • 기쁨주기

      생각하지 않고 얼른 떠오르는 사람이 진짜....ㅎㅎㅎ

      2012.02.04 23:31
  • 파워블로그 청은

    저도 무척 좋아하는 책인데요 ㅎㅎ 중간에 울컥울컥해요 ㅎㅎ 제가 가끔 책을 왜 이렇게 읽나? 고민할 때마다 다산 정약용의 말씀이 생각나요. 저처럼 답답하고 꽉 막히고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이 책을 읽는 거라고 하신 말씀 ㅋㅋ 가끔 제가 저 스스로를 봐도 답답하고 막히고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 ㅎㅎㅎ 그래서 책을 읽나봐요 ^^

    2012.02.04 19:26 댓글쓰기
    • 기쁨주기

      저도 읽어봐야겠구요^^
      경기도 팔당에 정약용의 기념관이 있어서 예전에 몇번 가봤어요. 가끔 마음이 통하는친구들 보고 싶답니다. 블로그에서 그래도 친구 몇 명을 만났는데 몇 번 만나면서 정들었어요. 근데 이 아랫 것들이 다정다감이 없어요.....ㅎㅎㅎ.
      드림님도 서울에 있으면 꼭 끼워주고 싶답니다.
      너무 한 겸손은 오만이라는 것 알고 있죠^^

      2012.02.04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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