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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세상 일을 재고 따지는가?

 

 

우리가 측정을 하는 이유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서구 사상에 뿌리가 깊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인간 정신의 가장 훌륭한 부분은 측정과 계산을 신뢰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측정이 정확하다고 여길수록 측정의 오류는 커질 수 있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측정이 성공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세상을 더 잘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 측정’이라고 여기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측정은 결국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에 좌우된다. 측정은 객관적이기도 하지만 주관적이다. 인류 역사에서 측정은 세상을 이해하는 것에서 이제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도구로 바뀌기 시작했다. 키, 몸무게 그리고 각종 신진대사, 심지어 정신이나 심리를 측정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측정학을 사용한다.


우리는 어떤 때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도를 요구하지만 어떤 때는 느슨한 척도에 만족하거나 오히려 좋아한다. 키가 179cm인 사람은 측정도구가 느슨해서 180cm가 넘도록 해주었으면 한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들은 저울이 자신의 몸무게를 적게 나타내줄 때 좋아한다. 정확하게 측정할수록 좋은 평가를 듣지 못한다.
이러한 점은 측정이 정확성을 가지고 있어도 인간 사회에서는 외면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객관적이고 명징한 측정이 오히려 주관적이고 부정확하여도 수용되고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측정은 주로 과학자들의 영역으로 간주된다. 인공물과 자연 현상, 물리적 현상을 단위의 기준으로 삼아 진리 탐구 차원에서 정확한 측정 방법과 도구를 고안하는 노력들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방법과 도구가 실제로 널리 사용되려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측정학의 역사가 단순히 과학자들의 영역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이 대목에서 드러난다.

 

세계를 움직이는 측정의 역학 관계
진나라는 전국 통일 후 가장 먼저 도량형을 통일했다. 청나라는 도량형 때문에 망했다. 청나라 말기의 사례를 보면, 아편전쟁 이후에 주요 세관과 시장이 외국 상인에게 넘어갔고 중국 상인들은 자신들의 도량형을 쓰지 못했다. 황제에게 도량형 통제권이 없었다. 이는 중국 상인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고 불리한 점은 바로 이익의 감소로 나타났다. 청 왕조가 도량형 등의 문제를 통제하지 못하자 우창(武昌) 봉기가 일어났고, 신해혁명으로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청 왕조는 무너지고 1912년 중화민국이 건립된다.
중화민국은 측정체계에 매진한다. 즉 측정은 정치와 뗄 수 없을 뿐더러 경제적인 요인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가들은 도량형의 통일 통해 권력기반을 다졌고, 상인들은 도량형의 차이를 통해 사리사욕을 채웠다. 영국은 아프리카의 황금해안에 있는 아산티 제국을 무너뜨리고 자체 도량형을 파괴하면서 자신들의 도량형을 강요하여 황금을 둘러싼 막대한 이익을 편취했다. 오늘날 세계가 각종 표준전쟁에 혈투를 벌이고 있는 점은 이 때문이다. 그 혈투에 정치적인 세력도 결합한다.

 

미터법의 확산은 과학자나 시민이 아니라 프랑스 혁명세력들이 구체제를 완전히 바꾸기 위한 일환으로 시행되어 가능했다. 그래서 ‘미터법은 프랑스 군대의 총검 뒤에서 행진했다’는 말이 나왔다. 드디어 1950년대 이르러 프랑스혁명 세력들의 바람대로 미터법은 보편성을 갖게 되었는데, 각국이 미터법을 받아들인 것은 정확해서가 아니었다. 국가적 통일을 도모하고 제국주의를 몰아내며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한편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되려는 동기에서 수용했다. 이는 정치 경제적인 요인 때문에 자발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미터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의 과학자들은 미터법을 현대 과학기술의 필수조건으로 생각했다. 1957년 10월 소련이 우주선 스푸트니크호를 발사하면서 기술격차에 대한 우려가 터져 나왔다. 소련은 1927년 미터법을 채용했던 것이다. 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는 미터법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세계의 주도권을 미국이 차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미국 정치인들은 미국이 잘 나가고 있기 때문에 애써 전환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으며, 무엇보다 돈 드는 개혁이라면 질색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앵글러 색슨족은 미터법을 쓰지 않거나 프랑스에서 만든 것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민족과 국가적 ‘감정’이 개입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벌어진 가장 비극적인 사례는 1999년 1억 2500만 달러를 투입해 만든 화성기후 탐사선이 화성궤도에 진입하다가 폭발한 사건이다. 사고가 난 이유는 공학자들이 로켓 프로그램을 만들 때 야드-파운드법을 쓰고 다른 집단은 미터법을 썼기 때문이다. 연료의 양을 재는 단위가 달라 비행기가 중간에 비상 착륙하는 일들은 아직도 벌어지고 있다.

 

측정, 수단이 아닌 ‘목적’에 집중해야 할 때
현대 세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측정경관(metroscape)이라고 한다. 측정이 일정한 경관을 만들어냈다는 말이며, 현대 세계는 측정이 만들어낸 경관이라는 것이다. 측정체계는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고, 노동자와 시장, 산업을 형성했다.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 문화적인 역학관계들을 구성하고 강화 혹은 소멸시켰다. 자본주의의 출현은 측정과 분리가 불가능한 것이다.
자본주의 시대의 측정 기준은 과학자들이 말하는 단위가 아닐지 모른다. 우리가 자동차의 기름을 넣을 때, 몇 리터를 넣어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3만원어치요’ 혹은 ‘5만원어치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사람은 연봉이 얼마이냐에 따라 물건은 얼마짜리냐에 따라서 그 측정의 정확성이 매겨지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측정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의 영역이기도 하다.

 

한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에서 여성 출연자가 180cm이하는 ‘루저’라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런 발언은 측정이 만들어낸 부정적인 결과를 말해준다. 루저는 사회의 실패자이다. 체코의 속담에 여섯살이 채 안된 아이들의 옷 치수는 재지 말라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아이들이 체구로 서열이 매겨질까 봐서 였다. 폴란드 시인 미츠키에비치는 ‘컴퍼스, 저울, 자는 생명 없는 물건에나 갖다 대는 것이다’라고 했다. 사물을 측정하는 수단이자 학문인 측정학이 인간을 사물화하고 서열화하는 것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비인간을 위한 것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측정은 그럴 가능성이 많은 것이고 그것이 자본주의 측정경관의 모습이기도 하다. 다만 3D 스캐너와 같이 인간의 패션을 위해 몸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기술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수밖에 없다. 삶의 질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현대의 측정 체계는 일반 시민이나 개인이 그것을 좌지우지 할 수 없다. 국제단위계의 측정도가 정확하게 세련될수록 근본원리를 이해하는 것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속인다 해도 알 수가 없는 지경이다. 아산티 제국의 사람들처럼 눈 뜨고 황금을 빼앗기는데 정확한 도량형이 사용되고 있다는 이유로 그 꼴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플라톤은 측정을 하는 데 전혀 다른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숫자와 단위, 척도 시작점을 기준으로 측정하는 것이다. 이를 ‘존재적(ontic) 측정’이라고 한다. 다른 측정은 자나 저울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알맞음이나 옮음이라는 측정방법의 기준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를 ‘존재론적(ontological) 측정’이라고 한다. ‘존재론적(ontological) 측정’은 구체적인 속성을 다루지 않는데 그것은 양적인 측정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 정의, 미 등이 그 예이다. 현대사회에서 측정이 우리를 현혹시키고 혼란스럽고 심지어 파괴하는 것은 ‘무엇을 측정하는가’, ‘왜 측정하는가’를 보지 않고 측정 자체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존재적(ontic) 측정’이 ‘존재론적(ontological) 측정’을 침범하는 것이 바로 ‘180cm 이하 루저 발언’이다. 인간을 180cm라는 수치로 사람의 가치에 대한 존재론적 평가를 내렸기 때문이다. 노동산물의 수치로 인간의 가치를 평가할 수 없는 것도 같다.

 

존재적 측정과 존재론적 측정에서 우리가 지켜보아야 할 것은 측정행위가 하나하나 어떻게 수행되는가가 아니라 측정 경관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느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또한 측정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측정경관이 어떻게 생겨났고 대안이 무엇이었으며 그 대안이 거부되고 거부된 결과가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 되새겨야 한다. 나라가 망하거나 사람이 크게 상하고, 민중들의 삶이 피폐해진 것 말이다. 그런 면에서 존재적 측정과 존재론적 측정은 한쪽이 절대 옳은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의 관계에 있는지 모른다.

 

[오늘의 북멘토] 김헌식 | 문화평론가, 미래콘텐츠 문화전략연구소 수석연구원
한국지역문화콘텐츠 연구원 콘텐츠미디어 분과 연구위원이었으며, 현재 미래콘텐츠 문화전략 연구소에 소속되어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정보화진흥원, 입법 조사처 등을 통해 정보통신, 미래연구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했거나 수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대중문화 심리 읽기>, <트렌드와 심리>, <대중문화심리로 읽는 한국사회>, <의외의 선택, 뜻밖의 심리학> 등이 있다.

 

저자 로버트 P. 크리스
저자 로버트 P. 크리스 Robert P. Crease는 미국 뉴욕 스토니브룩 대학 철학과 교수이자 학장으로, 《물리학 세계》에 ‘임계점’이라는 제목으로 매달 칼럼을 기고한다. 영국물리학회와 미국물리학회 회원이며 미국물리학회 물리학사 연구회 회지의 편집을 맡고 있다. 10여 권의 책을 쓰거나 옮기거나 엮었다. 저서로는 『위대한 방정식: 피타고라스에서 하이젠베르크에 이르는 과학의 혁신』『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실험 열 가지』『물리학 만들기: 브룩헤이번 국립연구소의 일대기』『실험은 演이고, 자연은 戱한다』『제2의 창조: 21세기 물리학에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찰스 C. 맨과 공저)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미국의 기술철학: 경험주의적 전환』과 『사물이 하는 일: 기술, 주체, 디자인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있다. 강연 활동을 활발히 벌이는 한편 《애틀랜틱》《뉴욕 타임스》《월 스트리트 저널》《사이언스》《뉴 사이언티스트》《아메리칸 사이언티스트》를 비롯한 학술지와 대중 잡지에 글을 기고했다. 가족과 함께 뉴욕에 살고 있다.

 

굿모닝 CEO 중에서

 

 

측정의 역사

노승영 역/로버트 P. 크리스 저
에이도스 | 201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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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꿈에 날개를 달자

    쩝... 오라방 너무 어려워요... ㅠㅠ 사람들이 측정을 하는 이유는... 아마도 비교하게 위해서겠지요.. ㅠㅠ

    2012.07.21 16:13 댓글쓰기
    • 기쁨주기

      어린왕자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들은 눈으로 보이는 것들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이해가 빠른 모양이야^^

      2012.07.22 08:26
  • 두구두

    측정의 역사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궁금하네요...위에 있는 글이 재밌네요...수단과 목적이 라는 말을 들으니 칸트가 생각나요,,^^

    2012.07.21 16:13 댓글쓰기
    • 기쁨주기

      클레오파트라의 코의 높이를 재면서 역사는 달라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요즙처럼 발전된 전자기술의 힘으로 사랍들은마음보다 눈에 보이는 것을 측정하기 빠쁘군요^^

      2012.07.22 08:30
  • 파란토끼13호

    어! 리뷰였어요? 맨밑에보니 책이 보이네요.저는 기쁨주기님이 어디에선가 강의하신것을 정리해 놓으신줄 알았어요.오늘강의 잘들었습니다.도량형이 이렇게 중요한지 몰랐네요.

    2012.07.21 18:40 댓글쓰기
    • 기쁨주기

      이 정도로 강의하면 좋겠어요. 교보문고에서 보내주는 메일인데 유익한 것들이 많군요^^

      2012.07.2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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