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학』은 본래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가 제자 유자징(劉子澄)에게 일러 편집하게 한 후 교열·가필한 것이다. 중국 남송시대인 1187년께 만들어졌다 하니 900년 가까이 된 고전이다. 내용은 일상생활의 예의범절, 수양을 위한 격언, 충신·효자의 사적 등을 모아놓은 수신서(修身書)로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에선 여덟 살 전후면 『소학』을 읽혔다. 염두에 둔 대상이 아동이라지만 정작 그 내용을 보면 성인이 되어서도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소학』만 깨쳐도 일생 사는 데 지장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실제로 삼성전자에서 최고경영자(CEO)만 20년 가까이 한 윤종용 국가지식재산위원장은 어릴 때 큰아버지 밑에서 『소학』까지 뗀 것이 일평생 단단한 바탕이 됐노라고 말한다. 그만큼 『소학』은 단지 아동교과서가 아닌 삶의 단단한 지침인 셈이다.
# 사실 어디 『소학』뿐인가. 사람들이 좀 우습게 여기는 『천자문(千字文)』도 결코 예사 것이 아니다. 4자시(四字詩) 250수로 구성된 그 안에는 우주와 자연 그리고 삶의 원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천지현황(天地玄黃)’ 즉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는 첫 구절에서 ‘하늘이 푸르다’ 하지 않고 ‘하늘이 검다’고 언명한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우주적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빛의 산란 속에서 파랗게 보일 뿐 하늘은 본래 검다. 천자문은 놀랍게도 그런 원리를 첫 구절부터 담고 있다.
# 그래서인지 조선시대에는 학동들이 맨 처음 『천자문』을 통해 한자에 대한 음훈을 깨침과 동시에 우주와 자연원리에 눈뜨게 하고, 그 다음 『동몽선습(童蒙先習)』 『명심보감(明心寶鑑)』 등을 읽으면서 기초적인 문장해독 훈련과 함께 교훈적인 내용을 터득한 후 『소학』과 『통감(通鑑)』을 배워 문리(文理)를 트고 식견을 넓혔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시경』 『서경』 『역경(주역)』의 순서로 읽었다. 이 고전 읽기의 커리큘럼은 지난 수백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엔 앞으로의 천년도 넉넉히 견지해 갈 지혜와 방향이 담겨 있다. 내가 처음 우리 고전을 접한 것은 40년 전 여름방학이었다. 당시 난 서울 숭의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지금 내 딸과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었다. 고전 읽기 삼매경에 빠졌던 그해 여름, 난 참 많이 자랐다. 그것이 오늘의 나를 키웠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