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때는 20살 시절의 사진 한 장을 꺼내든다.
장발에 청바지를 입은 모습은 그 당시 젊음의 트렌드였다. 그리고 생맥주와 기타는 젊음의 문화를 대표한다. 무교동 골목은 학사주점이 즐비했고 이곳에서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에 담긴 동동주를 먹으며 불안한 젊음을 달랬다. 명동은 라이브 공연이 있는 생맥주집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 당시 인기 DJ이었던 이종환씨가 운영했던 쉘브르와 오비스 케빈은 용돈의 여유가 있으면 가보던 기억이 있는데 그 유명한 세시봉은 나보다 조금 앞선 세대이기에 이름만 들었는데 69년에 폐업이 됨으로 인해 기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 당시 대중적으로는 남진, 나훈아가 가요계의 주류를 이루었고 대학생을 중심으로 팝송과 포크송을 즐겨 부르던 젊음은 또 다른 문화였지만 비주류로 존재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심야방송을 들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트윈폴리오란 듀엣을 알게 되었고 어느 날 그들이 낸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 ‘걸작’을 사들고 집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독수리표 전축을 켜고 턴테이블에 음반을 걸자 놀랍게도 스테레오로 확실히 분리된 송창식과 윤형주의 노래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하얀 손수건, 더욱 더 사랑해, 웨딩 케익 등이 흘러나올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렇게 한 장의 음반으로 만난 송창식과 윤형주의 노래를 듣고 자라면서 이 나이까지 오게 되었기에 그들은 내 젊음에 언제나 기억되는 인물이다. 작년 MBC에서 방송했던 세시봉 콘서트에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이 출연해 흘러간 팝송과 자신들의 대표곡을 노래할 때 많은 사람들이 감동한 것도 우리가 잃어버린 아날로그적인 정서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게 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미 환갑이 지난 나이들이지만 아직도 소년과 같은 순수함을 가지고 있고 40년 이상을 지속한 우정과 각기 살아온 삶의 가치관과 발걸음은 조금 달랐지만 그들이 이루어 놓은 삶의 소중한 가치에 공감하기에 방송 시간의 짧음을 아쉬워했다.
음악의 힘은 세월을 역류시키는데 있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 OST로 사용되었던 ‘고래사냥, 왜 불러, 날이 갈수록’등을 지금도 기억하며 따라 부르는 것은 그 노래 속에 자신이 살아온 삶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 시절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있는 첫사랑의 아련한 기억 때문에, 또는 사랑했던 사람과 두 손을 잡으며 함께 불렀던 곡이라는 이유로 지금도 들으면 가슴을 촉촉이 적시는 노래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세시봉 친구들’의 노래를 들으며 감동하는 이유도 그들의 노래 속에서 나의 젊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작년 ‘세시봉과 친구들’콘서트에 못 가본 것이 많은 아쉬움으로 남았는데 블로그 친구의 리뷰를 읽으며 서울 공연 실황이 DVD로 나온 것을 알고 구입하려고 했는데 친구가 선물로 보내주었다. 얼마나 기뻤던지 포장을 뜯자마자 DVD를 켰다. 그러자 김세환의 얼굴이 보인다. 막내라고 하지만 환갑을 넘은 김세환은 아직도 주황색 티셔츠가 잘 어울린다. 변한 것이 있다면 머리가 장발에서 단발이 된 정도가 아닐까?
홈시어터가 아니기에 아무래도 공연실황의 매력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것 같아 DVD를 꺼내어 컴퓨터로 옮겼다. 며칠 전에 적은 돈으로 구입한 Wow Thing SRS 5.1채널효과 베이스 증폭앰프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정말 5.1 채널 효과가 있는지 테스트 해봐야겠다는 심정이었는데 베이스가 놀랍게 달라졌다. 그냥 귀로 들으면 잘 모르겠는데 헤드폰을 사용하면 저음이 증폭되면서 잠들어 있는 음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특히 송창식의 공연 때 함춘호가 반주를 하는데 그의 기타 실력에 왜 많은 사람들이 매료되는지 알 수 있다. 입이 쩍 벌어지면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트윈폴리오의 노래가 시작이 된다. 첫 곡은 ‘하얀 손수건’ 나나 무스쿠리의 노래로 제일 먼저 들었지만 원곡보다 이들의 노래가 더 좋은 것은 역시 하모니 때문이다. 윤영주의 목소리는 아직도 소녀의 음성처럼 예쁘고 감성적이다. 그는 정말 미성을 가지고 있다. 교회의 간증집회에서 그의 노래를 들으며 나도 살리에리처럼 하나님을 원망할 정도였으니 그의 목소리가 얼마나 매력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송창식은 윤형주의 목소리를 잘 포옹한다. 마치 사랑하는 여자를 품에 앉은 것 같은 안정감과 고운 테너와 같은 맑은 목소리가 주는 공명이 크게 다가온다. 이들의 하모니는 특히 고음부에서 갈라질 때 가장 큰 매력이 있다.
윤형주가 0시의 다이얼을 진행할 때 결혼 축하곡으로 많이 신청한 ‘웨딩케익’에 대한 일화를 말해주는데 난 전주 부분이 너무 좋다. 기타의 선율은 가볍고 경쾌하지만 가사는 매우 슬픈 노래 “이 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네. 원치 않는 사람에게로…….” 사랑치 않는 사람과 결혼할 수밖에 없는 아픔이 잘 표현된 노래를 들으면 왠지 나 자신도 그런 사연이 있었던 같은 착각이 든다. 젊은 시절 노래할 기회가 있을 때 이 노래를 즐겨 불렀는데 그때마다 친구들이 “제발! 하며 원성이 잦았던 추억도 있다.
이어서 젊었을 때 좋아했던 경쾌한 팝송들이 메들리 형식으로 이어진다.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cotton fields, JAMAICA FAREWELL,
Be bop a lula, What I'd say, Wolly bully, Let's Twist Again 이 불릴 때 관객들도 손뼉을 치며 흥겨워 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대부분 아줌마들이다…….ㅎㅎ 그리고 그녀들의 환호. 이 시간만큼은 다 20살이다.
2시간 넘게 진행된 세시봉 친구들 콘서트 공연 실황 DVD는 2시간이 너무 짧을 정도로 아쉽게 끝난다. 사회자 이상벽은 그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부른 곡들이 20살 무렵에 만든 곡들인데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들 가슴을 울려주는 것을 보면 그 어린 시절에 어떻게 이렇게 깊은 노래를 만들었을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합니다."
40년이 되었기에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노래, 아니 젊음을 그리워지면 손뼉을 치며 함께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그 당시의 서정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을 수 있는 것은 세시봉 친구들이 주는 큰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