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뻐끔뻐끔 물고기
treasure
2021.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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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억울한 일은 왜 잊혀지지 않는 것일까.
사기를 당한 일은 잊혀져가는데 억울했던 일은 왜 기억 속에서 흐릿해지지 않을까.
아마도...
사기를 당한 것에는 일말의 내 책임이 있다고 느껴지고,
억울한 일을 당한 것에는 내게 책임이 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인 것이지 않을까.
벌써 10년도 더 넘은 일이다.
나는 갓 결혼을 한 상태였고, 아주버님네가 이사를 가게 되어 집들이를 가게 되었다. 시부모님과 시누이네 부부가 다 같이 모였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점심을 먹었고, 형님과 점심상을 치울 때 그 일이 벌어졌다.
뜬금없이 형님은, '동서는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물으셨고,
나는 '글쎄요...'라고 마땅한 답을 못찾고 있었다.
'날도 더운데 시원한 게 땡기지 않아?'라고 재차 물으셨다. 재촉하듯 묻는 형님 말에 아무 말이라도 하고 싶어 '그렇죠. 냉면 같은게 땡기네요.'
'냉면? 어머님이 냉면 잘 하시잖아.'
'그렇죠. 어머님이 만드시는 냉면 맛있죠.'
이렇게 대화의 끝이 났더라면 좋았을텐데 ...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형님이 외쳤던 것이다.
'어머니! 동서가 어머님이 만든 냉면 먹고 싶대요!'
몇 초 정도의 공백이 지났을까.
'어 그러니? 그럼 저녁은 우리집 가서 먹자꾸나!'
어머님은 말씀하셨다.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나는 아무말도 못했다.
그게 아니라, 그냥 해본 말이라고. 속으로는 말은 하는데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내 말 한마디 때문에 열명이 넘는 시댁 식구들이 시부모님네로 이동하는 대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혹시 내가 임신을 해서 그런건지 의혹의 눈초리로 보는 시댁 식구들의 눈치를 살피며 나는 아무말도 못하고 그냥 실실 웃고만 있었다.
그때 일은 지금도 억울하다. 그리고 나 자신이 참 한심하다.
지금의 나였다면 두 마디는 못해도 말 한마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의 나는 나와 남편 외에는 온통 어렵고 불편한 사람들 속에 갇힌 말 한마디 뻥긋 못하는 물고기였다.
입모양만 뻐끔뻐끔 하는 바보 멍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