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가까운 것에서 위로를 얻고는 한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뭔가 나와 함께하고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는 그런 존재들이 우리의 주변에 존재한다.
저자에게는 식물이 저자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준 것 같다.
나 역시도 기분이 조금은 별로이거나 아무 감정이 없다가도 지나던 꽃집의 꽃들을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아지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게 바로 갑작스럽게 위로를 얻는 그런 기분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글이 궁금하고 읽어보고싶을 수 밖에 없었다.
요즘의 나는 나무와 꽃, 풀을 만나며 기분이 다름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처음부터 식물을 반려에 표현하였다. 물론 그저 데려온다 라는 개념을 벗어나서 돌봐준다는 개념을 덮어야 마음이 편해졌다.
식물을 무심코 데려온다는 것은 쉽지 않다.
나 역시도 식물을 키워보고 동물도 키워봤지만 절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위로를 받을 걸 알기에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건 나도 문득 생각해보고는 하는데 도전하려는 마음이 머뭇거리고만 있다.
앵두나무를 데려온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그랬다. 뭔가 운명인 아이들이 있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눈에 띄고 유독 빛이 난다던지 유독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은 그런 아이들 말이다.
앵두나무가 저자에게 딱 그런 것 같았다. 봐두었던 나무가 주인 아주머니는 단 하나도 없다며 잡아떼었지만 결국은 데려올 수 있었던 것 처럼 말이다.
결국 그 앵두나무는 앵두를 맺고 있다고 하니 이보다 더 소중한 인연이 어디있을까 싶다.
저자는 기분이 안좋은 날에는 어느샌가 꽃을 보러 화원에 간다고 한다.
편안하게 구경 할 수도 있는 그런 화원이라고 하는데 어떤 모습인지 그려지기도 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알 수 없는 틈에 손 위에 화분이 들려있다고 한다.
사실 그렇다, 위에도 말했지만 지나다가 꽃만 만나도 사람의 기분은 달라진다.
이렇게 꽃 그리고 식물들은 우리에게 위로를 보내고 있다.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힐러가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걸 깨닫는 사람들은 따로 있겠지만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공간이 조금만 더 넓었더라면 벌써 몇개의 식물들과 함께 했을터인데 그게 너무 아쉽다.
아주 조그마한 식물이라도 함께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조만간 나만의 공간에 조금이라도 한 자리를 할 수 있게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 였던 것 같다.
나도 가끔은 작은 연두색의 손을 잡고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도 식물에게 기대어 위로 받기를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