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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큰 축복

[도서] 내 생애 가장 큰 축복

성석제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대학시절 이맘때쯤 기말고사 준비를 했던 것 같다. 집은 덥고, 시끄러운 동생들도 있고, 난 엄연히 "시험 공부"를 해야했으므로! 아침 일찍부터 동네 도서관으로 향했다. 
일단 도서관에 가면 일반열람실에 가방과 책을 내려만 두고, 제2열람실부터 들렸다. 
결혼 전 살던 동네에 있던 구립도서관에는 제2열람실에 시, 소설, 수필 등의 문학작품이 진열되어있었고, "시험 공부" 전 머리 식히는 용도로 간단한 시, 소설을 몇 권 빌렸다. 주객이 전도되는 건 당연지사였지만.
대하소설이나 2~3권의 소설은 나의 취지인 "시험 공부"에 맞지 않았기에 보통은 단편 소설이나 시, 각종 문학상 수상집 등을 봤던 것 같다. 그 무렵 만났던 작가가 바로 "성석제" 선생님이셨다.
20대 초반 나에게는 작가님의 필력뿐 아니라, 이름까지 어찌나 멋있던지. 자고로 작가란 저렇게 입술에 남는 이름을 가야져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 시절이 추억이 되어가는 현실에서 반가운 책을 만났다. 이름이 멋진 "성석제" 작가님의 짧은 소설이 담겨있는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이다.
표지에 귀여운 일러스트로 그려져 있는 그림들은 모두 소설안에 등장한다. 책을 다 읽은 후, 퀴즈를 맞추듯 하나씩 이야기를 떠올리며 맞추는 재미도 쏠쏠했다. 소설을 읽기 전에 잘 기억해두시라. 모두 축복의 도구들이 될터이니.

눈부시게 빛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삶을 절실하게 살아낸 주인공들을 만나보고 싶어서였다.  _p.23 "되면 한다" 중

작가가 이 책을 쓴 이유도,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도 이와 같지 않을까? 지식이나 기술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삶을 배우기 위함이다. 누구나 한번씩만 살아가는 삶이니, 다른 사람의 삶의 모습을 기웃거리며 때로는 함께 웃고, 함께 울며 더 많은 삶을 나누기 위함이다. 그로인해 내 삶이 더욱 풍성하게 채워지면 더욱 감사한 일이고.

처음으로 자전거가 인간에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실감했다. 마치 모든 예술이, 진실한 인간관계가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과 같았다. 그것을 전혀 모르고 사는 사람도 있고 예술의 고급스러운 감동과 인간관계가 주는 즐거움과 진진함을 인생의 일부분으로 누리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_p.37 "자전거의 값" 중

이 책의 제목처럼 소설의 곳곳에 축복이 베어져 있다. 이 글에서는 자전거를 통해 축복을 깨닫는 인물이 등장한다. 축복을 축복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작가의 말처럼 삶을 풍요롭게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글 속 자전거에 빗대어 보자면, 250만원 짜리 첫 차를 샀을 때의 그 축복,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 뱃 속 아이의 심장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축복,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의 축복, 한 생명이 까만 눈동자에 나의 모습을 가득 담고 온전히 나를 집중하며 "엄마"라고 불렀을 때의 그 축복은 아직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축복이다. 처음 비행기를 탔을 떄의 축복. 이후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축복의 순간이 있었다. 되돌아보니 "처음"의 순간은 모두 축복과 같았다. 수많은 처음이 수많은 축복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처음일 수많은 순간들또한 그러할 것이기에 더욱 기대된다.

산소와 나의 결정적인 공통점은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게 불편하지는 않다. 오히려 그게 서로를 좋아하고 존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지구상의 어떤 종족보다 언어를 발달시킨 호모 사피엔스들은 말한다. '개는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말 때문에 오해가 생기고 상처를 입고 평생토록 가슴에 못이 박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개한테서 단 한 번이라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 그것이 개의 중요한 미덕이다.  _p.79 "진정 난 몰랐었네" 중

글 속 산소는 개의 이름이다. 자칭 "개아빠"라 하는 주인공의 애완견인 산소. 산소와 주인공의 관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다름이 없어 보인다. 어쩌면 산소의 중요한 미덕 덕분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보다 더욱 좋아보이고,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않는" 산소의 미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문학은 모국어를 근간으로 한다. 그만큼 문인은 모국어에 시간과 관심, 노력을 기울이고 감각을 예민하게 단련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익히며 쓰는 데 투입할 자원이 부족하다. 외국문학 작품을 비롯해 외국의 저자가 쓴 책을 일반인보다 많이 읽긴 한다. 단 그것이 모국어로 번역된 경우에.  _p.85 "오늘의 당신은 오직 어제까지만 가졌을 뿐" 중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이후로, 국어 맞춤법이나 단어 등의 뜻을 나에게 묻는 경우가 많다. 간혹 한자어의 뜻을 묻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면 늘 하던 변명도 작가의 글과 같다. "전 한국문학를 공부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저자처럼 시간과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여력이 없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왜인지 모를 연민과 애절함으로 한국문학과 한국어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사랑과 관심을 주지 못했음이 미안한 건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일상의 일들을 작품에 녹아내고 있다. 표준어도 나오고 사투리도 나오며 각 작품마다의 나름의 색을 입히고 있다. 때로는 너무 사실적이어서 누군가의 일기 같기도 하고, 때로는 작가 본인의 에세이같기도 하다. 위에서 얘기한 "문인"의 노력이 작품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김 주사는 그의 등짝에 대고 "그 옷, 그거 담 장날 가지고 와도 반, 반, 반,,," 하는데 뒤의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반품  없다'는 말 대신 반토막, 반쪽, 반대, 반사, 반딧불 같은 단어가 초파리처럼 달려드는 바람에 머리를 흔들던 김 주사는 마침내 결정했다. "담 장날에 돈 마이 벌어와서 나머지 반동가리도 꼭 사가이소, 어이?" 사내는 몸을 반쯤 돌린 채 서 있다 어리둥절한 듯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검은 비닐봉지를 들어 보였다. "그럼 또 보입시더!" "잘 가소!" 인사를 마친 그들은 각자 가려던 방향으로 천천히 흩어져갔다.  _p.209 "다음에, 나머지 반도" 중

옷 장사를 하는 김 주사와 2장에 만원 하는 티셔츠를 기어이 한 장만 사가지고 가는 사내의 이야기이다. 1장에 만 원하던 셔츠가 3장에 2만원에서 다시 2장에 만원으로 바뀔 때까지 주위를 맴돌던 사내는 아마 가격이 더 떨어지기를 고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티셔츠는 사야하고, 돈은 없을 사내. 그는 기어이 곧 닳아없어져 버릴 듯한 오천 원짜리 한 장을 내밀고 티셔츠 한 장을 사간다. 그 마음과 심정을 김 주사가 어찌 몰랐으랴. 작가도 독자도 이미 알고 있을 그 짠하고 안타까운 현실의 그에게 작가는 김주사의 입을 통해 "축복"의 말로 위로한다. 돈 많이 벌어서 다음 장날에 또 보자고. 그때 나머지 한 장도 사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겠노라고 말이다. 계속되는 코로나 상황으로 힘든 사람들이 많다. 특히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은 그 타격이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누군가는 몇달째 수입이 거의 없다고 한다. 김 주사처럼 섣부르게 "조금만 더 참으면 좋아질거에요."라는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더욱 야속하다.

사진의 기본은 초첨이에요. 이 사진들 중에 초점이 제대로 맞은 게 하나도 없어요. 카메라가 스마트폰이든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뭐든 간데, 사진을 찍을 때는 발을 단단히 땅에 딛고 손이 흔들리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자신부터 먼저 흔들리고 있어요. 기본이 전혀 안 돼 있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좋은 작품이라고, 아니 사진이라고 할 수가 없는 거예요.  _p.221 "전문가의 충고" 중

사내 사진콘테스트를 준비하던 재익이 자신의 사진을 몰래 출품한 후, 심사를 받을 때 은근슬쩍 작품평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재익은 이 평가를 평생 새길 가르침이라고 하며 겸허히 받아들인다. 심사평도, 재익의 태도도 내게 가르침이 되어주었다. 사진 찍기의 기본은 초점이고, 초첨은 단단히 고정된 사람에게 나온다는 말은 비단 사진에만 국한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내 삶도 그러하다. 좋은 일이 있으면 둥둥 떠나니다가, 나쁜 일이 있으면 땅 밑으로 꺼져버릴만큼 침울해진다. 인생이 한 컷 한 컷의 사진으로 기록된다면 내 인생의 사진은 초점이 제대로 맞은 사진이 몇 장이나 있을까? 하루에도 열두번은 흔들리는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기록해두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할 일이 많아진다. 술자리에서마다 '역사를 기록하지 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을 일삼아 하는 후배 세이, 친구 이지와 함께 여행을 갔을 때 기록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 바 있기에 내 기억이 활폐해지기 전에 적어두려 한다.  _p. 268  "냅킨에 쓴 편지" 중

요즘들어 점점 기억력이 쇠퇴하고 있다고 느낀다. 가끔은 간단한 단어 하나가 생각나지 않아 상대방과 예기치않은 "단어퀴즈"를 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서인가 싶다가도 뇌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나의 하루를 돌아보며 "나이탓"을 하기에 미안해지기도 한다. 각종 자기계발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바로 "쓰기"이다. 하루 한 줄이라도 메모를 하라는 책도 있고, 더 나아가 컴퓨터가 아닌 손글씨로 직접 쓰라는 책도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든, 읽었던 책의 내용을 기록하든. 기록하는 것부터 새로운 기억이 시작된다고 한다. 이렇게 서평으로 남긴 책들이 내 기억에 오래남는 것처럼. 성석제 작가님의 이 책도 그러한 "쓰기"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일상의 순간들 속에서 하나씩 끄집어 낸 파편들을 모아서 쓰고, 갈고, 닦고, 다시 쓰고. 순간이 살아있는 것 처럼 느껴지는 것도 당시의 그 순간을 담아낸 메모가 있었기에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수많은 축복의 장면을 보았다. 축복의 도구들을 보았고, 무엇보다 축복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우리 동네 어귀에서 만날 수 있을 친근한 사람들이어서 혹은 언젠가의 내가 될 수도 있어서 소설보다 에세이처럼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다. 
또 하나 내게 남은 숙제는 내 삶에서 일어나는 "내 생애 가장 큰 축복"도 남겨두어야겠다는 다짐이다. 성석제 선생님처럼 이름까지 멋진 작가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내게도 선생님과 같은 축복이 가득했음은 남겨볼 수 있지 않을까?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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