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백발의 마스터가 각 지역을 대표하는 요리사들의 음식을 평가하며,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때론 칭찬을, 때론 쓴소리를 하는 모습이 심영순 마스터를 처음 봤을 때의 모습이다.
요리사라는 말보다, 요리연구가라는 말보다, "마스터"라는 호칭이 잘 어울리는 심영순 마스터가 알려주는 "건강한 밥상"은 무엇일까? 책 부제에 나와있는 "다음 세대를 위한 간단한 레시피"라는 문구가 기대를 증폭시킨다.
한국에 살며, 한식을 주식으로 하고는 있지만, 내가 어렸을 떄 삼시세끼를 한식으로 먹었고,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아침은 간단하게 토스트나, 스프 등의 간편한 양식으로 먹기도 하고, 저녁은 스테이크나 파스타 혹은 다른 나라의 음식으로 외식을 하기도 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한식을 먹는 날이 일주일에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실정이다. 비단 우리집만의 일은 아닐터이다. 그래서 "다음세대를 위한" 이라는 글귀가 더 와닿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한식" 하면 왠지 손이 많이 가고, 양념이 많이 들어가고, 조리과정이 복잡할 것 같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심영순 마스터는 "간단한 레시피"라고 이야기한다. 책 자체도 작은 사이즈(B6정도), 97페이지, 거기에 가격도 7900원으로 다른 요리책에 비해 가볍게 볼 수 있다.
이 책은 총 13개의 강좌로 구성되어 있다. 한식 초보자를 위한 한식의 기본 밥짓기부터 시작하는 레시피는 재료 손질과 함께 대표적인 한식 불고기, 된장찌개, 나물, 국, 죽, 조림, 생채 등의 레시피와 함께 심영순 마스터의 만능 고추장, 향신유, 향신장 비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한식의 가장 중점에 있는 김치 담그는 법으로 여정을 끝맺는다. 사실 다른 레시피 책들처럼 수십가지 혹은 백여가지의 레시피가 나와있지는 않다. 하지만 꼭 필요한 한식 레시피가 가득 담겨 있다. 한식의 수많은 레시피 중 이 레시피들을 선택하며 얼마나 심사숙고를 했을까가 그려진다. 아마도 많은 양의 레시피보다 꼭 필요한 레시피만 싣는 것이 "다음 세대"를 위한 "간단한" 레시피라는 조건에 딱 맞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한식은 원래 밥과 국, 김치, 조림, 무침 등 여러가지 반찬으로 구성되는 반상 식사입니다. 한 공기의 밥, 한 그릇의 국, 한 접시의 김치 안에 우리의 역사와 맛이 담겨 있습니다. ~ 이 책에서는 다음 세대를 위한 간소화된 우리 밥상 레시피를 전수하고자 합니다. 50년간의 노하우로 만들어낸 간단하지만 제대로 된 레시피를 두 딸과 함께 정리했습니다."
"한식은 보약이자 미적 가치가 있는 음식입니다. ~ 이 책을 통해 한식 요리가 낯선 분들도, 맛있고 멋있는 한식레시피를 배우고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릴 때 배가 아프다고 하면 엄마는 "밥"을 먹으라 하셨다. 요즘 딸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 나 역시 "밥"을 먹으라고 한다. "밥이 보약이다"라는 말이 무슨 구전동화처럼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다. 친구끼리도 좋은 일이 있을 떄나, 안좋은 일이 있을 때 으례히 "내가 밥 살게"라고 이야기한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처럼, 밥을 든든히 먹는 것이 위로가 되기도 하고, 힘이 되기도 하고, 치유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가가 알려주는 한식 레시피가 더욱 기대된다.
이 책의 시작은 밥 짓는 법이다.
전기밥솥으로 버튼 몇 번에 밥을 지어 먹는 게 익숙해진 독자들에게 저자는 냄비밥 짓는 법을 백미, 현미, 보리, 잡곡 등의 버전으로 상세히 알려준다. 몇 해전 우리 집은 전기밥솥을 처분했다. 청소를 한다고 뜯었다가 켜켜이 쌓인 밥때에 놀라 그대로 이별을 고하고, 그 이후로 압력밥솥이나 냄비밥을 해서 냉동실에 소분해 두고 그때그때 먹고 있다. 가끔은 버튼 하나로 고슬고슬 윤기나는 밥이 지어지던 떄가 아쉽기도 하지만, 원하는 만큼 누룽지로 눌려먹는 재미에 냄비밥이 더 좋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가가 알려주는 냄비밥 짓는 법을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그간 궁금했던 부분도 해소되어 미리 예습한 학생이 수업을 듣는 것 마냥 뿌듯하다.
이 책에는 각 레시피 뒤에 <궁금해요, 심영순 마스터!> 코너가 있다.
레시피에서 다루지 못한 관련 내용들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부분이다. 특히 "다음세대"들이 궁금해 할 내용들이 기재되어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 일례로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가장 기본적인 내용인 쌀 씻는 시간을 위와 같이 알려주는 것은 초보주부에게 큰 도움이 된다.
한식의 기본 찌개 중 하나인 된장찌개 레시피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된장찌개의 레시피와 다른 점은 "삶은 백콩"이 들어간다는 부부이다. 집에 시할머님이 주신 재래된장이 있는데, 너무 짜서 다른 된장들과 조금씩 섞어 먹었는데, 저자의 이 레시피에 해결방법이 들어있었다. "삶은 백콩"을 함께 넣으면 짠 맛도 잡아줄 수 있고, 먹을 때 콩이 씹혀서 식감도 좋아지고, 더 구수한 된장찌개가 될 것 같다. 할머님 된장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되어서 반가운 레시피이다.
요리연구가마다 자신만의 비밀 병기가 있다. 이 책에는 심영순 마스터의 볶음고추장, 향신유, 향신장이 그것이다. 특히 볶음고추장을 만들 때 자꾸 뭉치는 소고기 해결방법을 알려주셔서 더욱 맛있는 고추장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향신장은 말 그대로 만능간장이다. 계란밥으로 비벼도 먹고, 전골에 육수용으로 넣기도 하고, 불고긴 조림, 볶음 요리에 첨가하기도 해서 두루두루 이용가능한 간장이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보관 기간이 길다는 점이다. 역시나 "다음세대"를 위한 "간단한" 레시피에 딱 어울린다!
늘 찬물에 고기를 넣고 그대로 끓였던 육수였는데, 이 부분을 보며 지금까지의 방법을 180도 바꾸게 되었다. 끓는 물에 고기를 넣고, 끓어오르면 찬물을 넣어주는 것! 심영순 마스터의 소고기 육수가 유독 맑아보여 그 비법이 궁금했는데 이 방법이었다. 그간 텁텁한 육수에 고기 탓만 했는데, 고기 탓이 아니라 방법의 차이였다. 역시 고수의 비법이 있었구나 새삼 느껴지는 부분이다.
또 하나 나의 방식을 바꾼 부분이 죽을 끓일 때 자주 젖지 말라는 부분이다. 여태 죽을 끓일 때 눌러붙지 않도록 렌지 앞에 붙어서서 내내 저어주며 끓였는데, 오히려 자주 저어줄 수록 끈적끈적해져 식감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죽을 만드는 재료에 따라 불린 쌀과 육수의 비율도 자세히 알려주시니 다음에는 좀 더 수월하게 맛있는 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갈비조림이나 고기 종류를 먹을 때 소화가 잘 안되고 약간 느끼할 수 있는데요, 그럴 때는 무생채, 무말랭이, 석박지를 곁들여주세요. 무김치류는 소화를 도와주며 입맛도 도와주어 고기 요리와 잘 어울리는 조합입니다."
각 레시피의 제목 옆에는 레시피에 대한 소개가 쓰여져있다. 따옴표 안에 구어체로 쓰여져 있는 이 부분은 마치 마스터가 직접 설명하는 느낌이다. 특히 갈비조림과 무생채는 짝꿍요리로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주는 레시피여서 한 상 차림을 그대로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김치 양념만 만들 줄 알면 언제든지 김치를 담그고 싶을 때 배추만 사거나 무만 사서 담글 수 있으니 김치 양념은 한식을 배우고자 한다면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리 만들어서 냉동실에 넣어 놓으면 숙성이 돼서 김치가 빨리 발효되고 맛이 좋습니다."
한식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김치"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하는 레시피도 "김치"이다.
매해 김장철이 되면 시댁으로 친정으로 김장을 도와드리러 가는데, 결혼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잔심부름만 도맡아 하고 있으니 "김치"는 내게 어렵고 부담스러운 레시피이다.
저자는 그 부담스러운 김치를 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떡볶이 소스를 미리 만들어 두듯, 김치 양념을 미리 만들어두고 그때그때 버무려 먹으면 된다는 것이다. 미리 만들어 둔 김치 양념만 있으면 부담스러운 김장김치 담그기도 이 책 한 장에 정리되어 있듯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하니 필히 도전해 봐야할 레시피이다.

이 책에는 레시피마다 큐알코드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큐알코드를 연결하면 <커넥츠> 사이트로 연결되는데, 그 곳에서 심영순 마스터의 한식 요리 클래스를 수강할 수 있다. 책으로 이해하기 부족하거나, 더 많은 한식 레시피를 배우고 싶은 독자들에게 유용한 컨텐츠이다.
"한국인은 밥심이다!"를 외치며 살지만, 정작 제대로 된 "한식 한 상"을 차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부끄러웠던 내게 이 책은 자신감을 더해 주는 한식 레시피를 전해주었다. "다음세대"를 위한 "간단한" 레시피라는 부제처럼 누구나 한식을 부담없이 접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레시피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새내기 주부나, 1인 가구도 "건강한 한식"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심영순 마스터만의 고추장, 향신유, 향신장 뿐 아니라, 곳곳에 숨어있는 꿀팁은 한식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귀한 재료가 되어 준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