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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긴밤>은 코뿔소와 펭귄의 이야기이다. 코뿔소와 펭귄은 달랐지만, 그들은 가족이었다.

  책의 한 부분에서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라고 코뿔소가 펭귄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건 이야기 초반에 코끼리들이 코뿔소에게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네.”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코뿔소는 코끼리들 사이에서 그냥 자기도 코끼리로 남고 싶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펭귄을 더 잘 이해한 것 같았다. 펭귄과 코뿔소는 결국 다른 바다를 향해 갔지만, 그들은 언제나 서로를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길을 향해 잠시 멀어진다고 해서, 그들이 함께한 시간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코뿔소에게는 그동안의 친구와 가족이 모두 남아있었다. 이제는 만나볼 수 없는 그들이지만, 그래도 함께 나눈 것들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펭귄에게는 끝까지 이름이 없었다. 하지만 책 앞에서 나오는,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처럼, 이름이 없는 펭귄은 많다. 그러나, 이 펭귄과 똑같은 기억과 추억을 가지고 있는 펭귄은 없다. 코뿔소와 다른 모든 것들과 함께한 시간이 있기에, 이름은 없지만 로서 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이 책을 보며 인간이 동물에게 도와준다고 하는 것이 과연 그 동물을 행복하게 하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원에서 동물은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다. 나를 좁은 감옥에 가두고 매일 누군가 나를 구경하러 오는 것은 썩 기쁜 일이 아닐테니 말이다. 이야기 속에서 마지막이라는 꼬리표가 계속 붙어 코뿔소를 괴롭혔던 것처럼, 우리가 그들을 보호한다고 하는, “선한 행동이라는 꼬리표의 그것들이 과연 동물들에게도 선한 행동이 맞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코뿔소 노든은 왜 노든일까? 그가 마지막 남은 흰바위 코뿔소라서?

  아니다. 그와 함께한 아내, , 앙가부, 치쿠와 펭귄과 노든의 과거 속 모든 것들이 있었기에 노든은 노든으로 남을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지막 남은 흰바위 코뿔소가 아니라 노든으로.

  코끼리들 사이에서 노든은 자랐다. 노든은 코끼리로 남고 싶었지만, 스스로 코뿔소의 삶을 선택했다. 하지만 인간에 의해 코뿔소로서의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었고, 동물원에 갇혀 동료를 잃고, 뿔을 잃고, 마지막 남은 흰바위 코뿔소로의 삶을 살아야 했다. 그 속에서 노든은 버려진 알을 주워 그 알에서 태어난 펭귄과 추억을 만들어간다. 노든은 펭귄과 다른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노든에게는 참 많은 고난이 있었다. 하지만 노든은 참 용기 있었다. 코끼리로 있을 수도 있었지만 자신이 코뿔소라는 그 사실에서 도망치지 않고, 용기있게 나왔으며, 인간에게 아내와 딸을 잃고 뿔을 잃어도 그들에게 복종하지 않았고, 또 버려진 알을 외면하지 않았고, 소중한 펭귄과의 이별을 부정하지 않았다.

  나에게도 많은 것들이 있고, 잃은 것들도 많았다. 그리고 무서운 일들도 참 많았다. 그러나 나는 노든처럼 용감하지 못했다. 무서운 것이 있으면 포기하거나 복종했고, 사실에서 늘 도망치거나 피하려고 했고, 버려진 것들을 외면했고, 이별을 늘 부정해왔다.

  그러나 나의 이 모습이 노든의 모습처럼 단숨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노든이 아니기 때문이다. 난 언제까지나 노든이 아니고 나이다. 그렇기에 나는 노든처럼 용기있지 못하다. 나이기 때문에 조금 용기있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노든이었다면 이 이야기는 바뀌었을 것이다. 코끼리들에게서 나오지 못하고 코끼리로 남았을 수도 있고, 아내와 딸을 잃고 뿔을 잃고 동물원으로 돌아왔을 때는 인간에게 복종하고, 동물원에서 만족하며 생활하고 있으며, 치쿠가 죽고 남겨진 알을 품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노든처럼 용감할 가능성은 있다. 코끼리들에게서 나와 코뿔소가 되었을 수도, 아내와 딸을 잃고 동물원에 와서도 복종하지 않았을 수도, 치쿠가 죽고 남은 알을 지켜서 펭귄과의 또 다른 만남을 가졌을 수도 있다.

  언제까지나 나는 가능성으로 남아있다. “는 이야기나 책처럼 정해져 있지 않기에, ‘너는 이럴거야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 누구 하나 정해진 것이 없다. 모두가 가능성으로 남아있고, 노든과 펭귄이 그렇듯 모두가 그들의 추억과 쌓아온 것들로 인해 그들로 남을 수 있다. 이 책 속의 인물들은 이미 정해진 모습으로 살았지만, 이 책을 읽은 나와 우리는 앞으로의 삶을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네.”라고 이야기한 코끼리들처럼,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라고 이야기한 노든처럼, 이 책은 우리에 이제 훌륭한 사람이 되는 일만 남았네라고 말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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