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잘 꾸며진 겉모습과는 달리 얼기설기인 모습이 드러난다. 작가가 하고싶었던 말이 무엇인지는 잘 안다. 아마 반료동물이 상품화 되는 것이 마음 아프다는 것이었겠지.
하지만 중간중간에 동물 공장에서 만들어진 고기가 싫다는, 캔 비육 동물들까지 비판하기도 한다. 그 점이 가장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왜? 캔 비육이 뭐가 잘못된거지? 그리고 더 나아가서, 애니캔은 뭐가 잘못된거지? 애니캔은 왜 잘못되었을까? 수명을 정해놓은 것? 나는 오히려 이 점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유기동물의 문제가 꽤나 심각하기 때문이다. 책임감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동물은 키우고 싶은 사람은 꽤나 많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이 방법은 꽤나 좋은 대책이 될 것이다. 또한 반려동물을 입양해놓고는 ‘너무 활달해서 도저히 못키우겠어’라는 변명섞인 무책임함도 없어질 것이다. 맞춤 옷처럼, 내 상황에서 내가 키울 수 있는 동물을 제공해주는 것 아닌가? 나는 이 점에서 문제가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또한, 별이가 아프게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먹이면 안되는 것을 먹였기 때문이었다. 애니캔에서는 진즉에 다른 것을 먹이지 말라고 얘기했었다. 강아지에게 먹이면 안되는 것이 있고 고양이에게 먹이면 안되는 것이 있다. 애니캔의 강아지와 고양이를 보통 강아지, 고양이라 생각말고 그저 ‘애니캔’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동물이 생겼다고 생각해보자. 모양도 아주 다양하고, 종류도 다양하다. 그런데 애니캔은 다른 음식을 먹으면 안된다. 강아지에게 초콜릿을 먹이면 안되는 것처럼, 애니캔 동물들에게는 다른 음식을 먹이면 안된다. 하지만 다른 음식을 먹이고서는 러비씨에게 찾아가 ‘치료제를 주세요’ 라고 하지를 않나 고발을 하지를 않나, 결국은 러비씨가 인정하며 별이를 잠들게 하지를 않나. 반려 로봇을 하나 샀다고 하자, 그런데 그 동물에게 사람이 먹는 것을 준 다음에 ‘로봇이 고장났어요, 치료제를 주세요!’ 라고 한다면 어떨까? 새롬이는 동물의 상품설명서를 무시한채 우기고 있는 것이라 봐도 다름 없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작가가 표현하고 싶었던 바는 분명하다. 하지만 자들에게 ‘왜’ 그래야하는지 논리적으로 납득시키지를 못한다. 한번 가볍게 읽으면 모르지만, 그 속으로 파고들며 생각해볼수록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얼기설기 엮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번쯤 가볍게 읽은 후 잊어버리기에는 더없이 좋은 소설이지만 깊이 파고들며 생각해보기에는 글 안에 논리가 약했던 것이 매우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