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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쇼핑몰

[도서] 살인자의 쇼핑몰

강지영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어느 날 갑자기 나의 하나뿐인 혈육이 자살을 했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면 그순간 나는 어떤 행동을 했을까? 뭐지? 신종 보이스피싱인가? 믿음이 가질 않을 것이다. 머리에 총 맞은 기분인 채로 아마도 시체를 확인하러 가겠지. 갔는데 진짜였을 때의 나의 행동은??

어릴 때 눈 앞에서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나는 한동안 자각을 못했다. 말 그대로 멍~ 이게 뭔 상황이지..? 무려 고등학교 3학년이나 되었는데도 그랬다. 아빠와 동급으로 인식되던 언니가 애처럼 우는 걸 보면서 그제서야 무슨 일이 났구나, 아주 큰 일이 났구나..란 자각이 들었다. 언니의 눈물을 보고서야 눈물이 나왔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나는 온 가족이 다함께였었다. 하지만 지안은..

 

p.38

나는 그들 곁에서 무릎을 모으고 앉아 소년 정진만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

"얘, 넌 왜 울지를 않니? 삼촌이랑 사이가 별로였어?"

상용 아저씨가 소주와 맥주를 섞어 한입에 털어 놓은 뒤 물었다. 조문객들의 시선이 일순 내게로 향했다.

"그러네. 혈육이라곤 진만이밖에 없잖아."

그의 아내가 진미채를 질겅이며 거들었다.

"괘씸…… 하잖아요."

그들의 표정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노총각이 애면글면 돈을 벌어 먹이고 입혀 키워낸 조카가 말간 얼굴로 괘씸이란 단어를 혀 위에 올렸으니 어련할까 싶었다. 하지만 삼촌이 괘씸한 건 사실이었다. 내게 한마디 예고도 없이 자기 멋대로 죽어버린 그가 좀처럼 용서되지 않았다. 남들에겐 정의롭게 인심 좋은 친구였을지 몰라도, 내게 그는 무책임하고 의리 없는 아버지의 형제로 기억될 것이었다.

 

살갑지는 않았어도 꽤 나쁘지는 않았던 지만과 지안의 사이라면.. 지안의 저 반응이 이상하지 않았다. 되려 나는 정상처럼 보였다. 적어도 나는 겉이 아닌 책 안으로 그들을 지켜봤으니까.. 하지만 멀찍이서 겉으로만 본 사람들은 지안이를 좀 이상하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르.니.까. 하지만 모른다고 해서 만사 OK 다 통과되는 것은 아니다.

 

p.53

'ADMIN : 죄송합니다, 고객님. 정진만 사장님은 이틀 전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쇼핑몰 운영은 오늘부터 중단되오니 입금하신 금액도 환불 처리 해드리겠습니다."

삼촌의 예금을 상속받으려면 사망신고부터 해야 했다. 무명씨가 부디 너그러운 사람이길 기대했다.

'GUEST 1 : 그래서 너는 누구냐고?'

진상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ADMIN : 저는 고인의 가족입니다. 다시 한번 양해 부탁드립니다.'

'GUEST 1 : 진만이가 죽었다니 말도 안 돼. 그럼 너도 오늘 안에 죽겠네?'

무명씨의 메세지는 그걸로 끝이 났다. 눈물로 젖은 얼굴이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가슴이 두근대고 속이 더부룩했다. 악의적인 농담이란 걸 알면서도 불쾌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삼촌이 죽은 것도 미처 마음 속에서 수습이 안 되었는데, 언 미친 놈이 저렇게 글을 남긴다면..? 지안이처럼 가족이 아닌데도 내가 이렇게 화가 부글부글 끓는데.. 잘근잘근 씹어뱉어도 속이 시원할 것 같지 않은데.. 아우..ㅡㅡ^

 

p.109

"이런 대화, 신기하다. 꼭 아빠랑 딸 같잖아. 삼촌이 아빠 같네."

나는 조금 울적해졌다. 부모님이 살아 있었으면 그들과 주고받았을 대화였다. 확신할 수 없는 미래를 상상하며, 대학과 취업과 적금, 2000㏄ 중고차와 전세보증금에 대한 구체성 없는 희망 같은 것들 말이다. 그들이 지어놓고 죽은 알집이 너무 두꺼워 나는 여전히 그 안에 갇혀 있는 것만 같았다.

"정지안, 잘 들어. 나는 네 아빠가 아니야. 영원히 될 수 없겠지. 그렇지만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기일엔 아빠라고 불러도 좋아. 일종의 롤플레잉을 하는 거지. 형도 살만 좀 쪘으면 나랑 비슷하게 생겼을 거야."

나는 말없이 삼촌을 끌어안았다. 그 후 두 번의 기일이 지나갔지만, 그때마다 알바와 겹쳐 고향에 내려오지 못했다. 그는, 나의 하루뿐인 아빠는 그래도 내 몫의 밥을 했을 거였다.

 

집안 형편이 넉넉치 않음을 알면서도, 해보고 싶은 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노무 G랄 맞은 성격 때문에.. 기어이 대학 문턱은 한 번 밟아보겠다고.. 언니 오빠 형부 새언니 엄마 모두 소집해서 가족회의를 했을 때, 그때 처음으로 아빠의 부재를 크게 느꼈다. 아빠가 있었음 이런 가족회의 같은 거 하지도 않았을텐데.. 아빠는 그냥 보내줬을텐데.. 그런 부질 없는 회의감. 진작에나 좀 잘하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었음 씁쓸하지나 않았을텐데.. 나는 아빠가 살아계셨을 때 밥도 거의 같이 먹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러면서 정작 아쉬운 상황이 닥쳤을 때 바로 떠오르는 게 '아빠'라니.. 내가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는데.. 그런데도 우리 가족들은 고작 열아홉에 아빠를 잃은 나를 안타깝게 여기며 아빠의 빈자리를 안 느끼게 많이도 노력해줬다. 지안의 삼촌처럼.

 

p.143

"창문에선 도저히 위치 식별이 안 돼요. 이제 겨우 한 놈이에요. 열다섯 명이 동시다발적으로 쳐들어오면 집 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그게 그거고요. 김준열을 끝장내야 남은 열네 명이 겁이라도 먹죠."

브라더를 설득할 마음은 없었다. 이미 나는 현관 문고리를 돌리는 중이었으니까. 영화 속 민폐 조연처럼 비명이나 지르고 빈방으로 숨어들고 싶지 않았다.

 

영화를 볼 때마다, 특히 공포나 스릴러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 중 하나가 어딜가든 저런 민폐들이 꼭 있다~였는데. ㅎ 지안은 다행히도 아니였다. 멋지다~ 싶으면서도 좀 무모하다~ 싶기도 한.. 하지만 지안의 말마따나 집 안에 가만히 숨죽이고 있다고 해결될 노릇이 아니면 뭐라도 해봐야 죽을 때 죽더라도 아쉽지는 않을 것 같은.. 무모한 마음이 나도 좀 있다. 물론, 막상 상황이 닥쳤을 때 내가 어떤 행동을 하게 될 지는 하늘도 땅도 나도 모를 일이지만..^;;;

 

짧은 영화 한 편 보는 기분이었다. 한 30분이나 한 시간 정도의 액션드라마. 지안의 심리 변화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액션적인 전재가 꽤나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뒤통수 한 방도 아주 마음에 들었고.. 단, 재밌는 액션 영화를 무성으로 보는 기분이라..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효과음이 들렸으면 완전 실감났겠다~하는 조금 허황된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Good!^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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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소라향기

    아빠가 아프셨을때..
    어느날.. 엄마가 급하게 전화를 했어요..
    그니야, 아빠가 이상해..
    그래서..직장에서 급하게 가방을 챙긴채 집으로 달려가서..
    엄마와 저.. 그렇게 아빠의 임종을 함께 했어요..
    넋이 나가 있었죠..저도..그리..
    내내 울기만 하니까.. 어린 조카들이.. 이모 울지마.. 그러면서
    달래주었던..

    가까운 사람.. 더구나 가족의 죽음을 목격하는건..
    너무 힘든일이예요..

    2020.03.24 12:14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져니

      그쵸..많이힘들일이죠..저는아빠가돌아가실때보다..아빠가혼수상태빠지기직전의기억이더생생해요.그날따라왜그렇게눈물이줄줄흐르는지..아무것도할수없는상태라..조퇴하고아빠있는병원갔었는데..그날아빠가많이아프셨어요..옆에서보기힘들정도로..그리고그날밤부터혼수상태되셨구요..그날진짜엄청많이울고걸었는데..;;;

      2020.03.24 14:11
    • 스타블로거 소라향기

      전.. (지방에 살아요.., 지금은 서울이지만..)
      아빠가 서울 고대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을 하시는데..
      새벽기차.. 첫차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서..
      아빠의 수술한 머리를 만지다.. 그냥 정말 만지기만 하다..
      다시 기차타고 내려와서 출근을 했었는데..

      그때..기차안에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더 잘할 걸.. 후회만 남죠.. 그렇게 가시고 나면..

      2020.03.24 14:48
    • 스타블로거 져니

      후회는누군갈먼저떠나보내고남은이들의숙명같아요.떠나는사람이그순간에아쉬움이없을수가없는것처럼말이죠..;;

      2020.03.25 02:31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저는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두 분보다는 꽤 오래 아버지를 간직했었네요.

    삼촌이라도 조카에게 얼마나 잘했느냐 따라(한쪽만 잘하는 관계는 탄탄하지 않더라는) 부자지간의 정 같은게 돈독하다고 봅니다. 바르게 인도하려는 마음을 서로 알아봤을테니.

    2020.03.24 16:50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져니

      제가울언니오빠들부러워하는것처럼..아자님도조금부럽네요.단며칠이라도더함께하셨으니..^;;;

      2020.03.25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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