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p.155
지안
재미는…
그냥. 남자랑 입술 닿아본 지가 하도 오래돼서. 그냥 대봤어요.
나만큼 지겨워 보이길래. 어떻게 하면 월 오륙백을 벌어도 저렇게 지겨워 보일 수 있을까… 대학 후배 아래서, 그 후배가 자기 자르려고 한다는 것도 뻔히 알면서 모른 척….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꾸역…꾸역…. (밖을 둘러보며) 여기서 제일 지겹고 불행해 보이는 사람…. 나만큼 인생 그지 같은 거 같애서….
입술 대보면… 그래도 좀 덜 지겨울까…. 잠깐이라도 좀 재밌을까… 그래서 그냥 대봤어요. 그래도 여전히 지겹고, 재미없고… 똑같던데. 아저씬 어땠어요?
p.172
동훈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을 말해주잖아.
(E)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 그게 보여. 그래서 불쌍해.
걔의 지난날들을 알기가, 겁난다.
p.204
동훈
산사는 평화로운가.
나는 천근만근인 몸을 질질 끌고…
가기 싫은 회사로 간다…<문자>
겸덕
니 몸은 기껏해야 백이십 근.
천근만근인 것은 네 마음.<문자>
p.219
지안
(차가운 얼굴로, 수화) 잘 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 되기 쉬워.
p.225
동훈
(커피를 젓다가) 무슨 지 자야? 우리 아들이 지석인데.
지안
이를 지요.
…편안할 안이요.
동훈
…! (처지와 정반대인 이름. 짠하다.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 좋다…
이름 잘 지었다…. (커피를 들고 자리로)
p.319
유라
인간은요, 평생을 망가질까 봐 두려워하면서 살아요. 저는 그랬던 거 같애요. 처음엔 감독님이 망해서 정-말 좋았는데. (잠잠해지며) 망한 감독님이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더 좋았어요. 망해도 괜찮은 거였구나,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망가져도 행복할 수 있구나… 안심이 됐어요. (둘러보며) 이 동네도 망가진 거 같고… 사람들도 다 망가진 거 같은데… 전혀 불행해 보이지가 않아요… 절대로. 그래서 좋아요…. 날 안심시켜줘서….
[2권]
p.74
동훈
니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니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모든 일이 그래.
항상 니가 먼저야.
옛날 일, 아무것도 아냐.
니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냐.
…이름대로 살아.
좋은 이름 두고 왜.
p.190
지안
제가 누군가를 좋아한 게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오늘 잘린다고 해도, 처음으로 사람대접받아봤고… 어쩌면 내가…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준 이 회사에… 박동훈 부장님께… 감사할 겁니다.
여기서 일했던 삼 개월이 이십일 년 제 인생에서 가장 따뜻했습니다.
지나가다가 이 건물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고, 평생… 삼안이앤씨가 잘되길 바랄 겁니다.
p.221
기훈
그렇게라도 형이 실컷 울었으면 좋겠어. 엉엉 콧물 눈물 질질 짜면서 울었으면 좋겠어. 안 그러는 형이… 너무 마음 아파. 속을 까뒤집지 못하는 형이… 너무 마음 아파. 꾹꾹 눌러대다가 형 병나 죽을까 봐!
p.250
동훈
…미안하다.
지안
아저씨가 왜요? 처음이었는데. 네 번 이상 잘해준 사람.
나 같은 사람.
내가 좋아한 사람.(눈물 주룩)
난 이제 다시 태어나도 상관없어요. 또 태어날 수 있어. 괜찮아요.
(당신을 만날 수 있다면 이 거지 같은 인생 또 살 수 있다)
p.310
지안
…진짜, 내가 안 미운가?
동훈
…사람 알아버리면, 그 사람 알아버리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 …내가 널 알아.
처음 이 드라마를 봤을 때 마음이 서늘했었다. 동훈의 답답한 현실이, 지안의 갑갑한 상황이.. 보는 나로 하여금 점점 가라앉게 만드는 것 같아 겁도 났었다. 이렇게 무거운데.. 이렇게 답답한데.. 계속 봐야 하나?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하지만 안 보고 넘어가기엔.. 이선균 배우가.. 나는 너무 아쉬웠었다. 그래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렇게 조금만 더 보다가 <나의 아저씨>는 결국 내 인생드라마가 되고 말았다.
니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니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모든 일이 그래.
항상 니가 먼저야.
옛날 일, 아무것도 아냐.
니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냐.
세상의 뾰족한 시선에 스스로 혼자가 되기로 한 지안에게 동훈이 해줬던 이 말은, 항상 다른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잘 받던 내게 너무 큰 위로가 되었다. 더는 상처받기 싫어서 스스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결국 상처받고 마는 지안이, 내가 참 서글펐는데.. 동훈의 말이 포근한 이불이 되어 감싸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니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파이팅!!
몇 번을 봤는지.. 세지도 못한다. 드라마가 끝나갈 즈음부터 불붙어 보기 시작해서 다 끝나고서는 다시 처음부터, 채널 돌리다 나오면 또 그대로 붙박이로, 또 채널 돌리다 나오면 어?하고 또 그대로 붙박이로.. 봐도 봐도.. 또 어느 장면을 봐도 다 명장면이라.. 놓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대본집이 나왔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예약구매를 하고서 기다리는 한 달이 얼마나 길고 설레던지..ㅎㅎ 이제는 아저씨가 떠오를 때마다, 세상의 구석탱이에 처박힌 기분이 들 때마다 바로 읽을 수가 있다. 이제 내 등 뒤에는 후계동의 삼형제와 그들의 친구들이 든든하게 바리케이트치고 있다. 세상 든든.^ㅎ
이 드라마를 보고서 나는 배우 이지은이 참 좋아졌다. 물론 다른 좋은 배우들도 엄청 많이 나왔지만.. 이 배우는 이제 믿고 봐도 되겠구나..하는 그런 게 하나 더 생겨서 더 좋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좋아하는 배우가 또 한 명 생겼다._______________^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