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산요수樂山樂水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한다.
제목처럼..이라고 시작하고 싶었는데..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요지경 속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어디선가 갑자기 친절한 금자씨가 불쑥 나와 "너나 잘하세요!" 할 것 같기도 하고.. 하.하.하.--;;
p.173
언제부터였을까. 나도 여기 나온다는 걸 그 인간은 알까. 알고도 그러는 걸까. 설마 그건 아니겠지. 근데 애들 회사가 여기라는 걸 그 물건은 알까. 몇 번이나 그랬을까. 나랑 박재수 중 누가 먼저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샌님처럼 밥만 먹었을까. 그럴 리가 있나.
그럼 혜진이랑도, 희숙이랑도, 미연이 그년이랑도…….
설마 윤 여사인가 뭔가 그 할머니랑도 했을까.
갑자기 구토감이 치밀었고 희선 씨는 옆에 있던 성곽 벽돌을 붙잡고 그 밑에 웩웩 토를 했다.
자신이 다니는 산악회에 남편도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희선 씨가 보인 이 반응에 나는 좀 놀랐다. 엄연히 따지면 자기도 외도를 했고, 자기도 애들 회사가 여기라는 걸 알고 있었고, 몇 번이나 그랬으면서.. 굳이 누가 먼저이면 어떻고, 누구랑 하면 또 어떻고.. 자기가 할 때는 엔조이고, 남편이 하면 왜 토악질이 나오는 건지..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어쩌면 희선 씨는 그래도 박재수 씨를 믿고 있었던 건 아니였을까 싶기도 하고.. 오만 가지 생각이 들면서도 납득은 되지 않아, 자꾸 금자 씨의 말이 머릿속에서 동동 떠다녔다.
"너.나. 잘.하.세.요.!!"
p.226
그러나 병(病)은 사람을 약하게 만들었다. 정희는 사람이었다. 수술을 후회하는 건 아니었지만 정희는 지금 사람이 고팠다.
누군가의 애정, 따뜻한 말 한 마디, 걱정 어린 눈길과 손길 한 번이 이토록 절실했던 적이 있었던가.
…
이야기하고 싶었다. 말하고 싶었다.
누구라도 좋으니, 자신에게 오늘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아무나 들어주는 사람만 있다면 쉬지 않고 밤새도록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며 마구 떠들고 싶었다. 그리하여 풀려나고 싶었다. 이미 흘러간 일들로부터, 이제 다시 돌아갈 수도 바꿀 수도 없는 고정된 과거로부터 훌훌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22 페이지에서 엄마 희선 씨는 '정희는 꼭 말을 아주 안 하기로 작심한 사람 같았다고 때로는 간첩 같았다고, 과묵도 그 정도면 병(病)' 이라고 했었는데.. 그런 정희가 사람이 고프고 이야기가 하고 싶고.. 그 이야기가 하고 싶은 사람이 특정 누군가가 아니라 그냥 누구라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병은 정희를, 사람을.. 끔찍하게도 약하게 만들어버린다. 외로움이 어떤 건지도 모르던 사람마저도 외롭다고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병이 무섭고 두렵다.
산을 끼고서 이야기는 돌고 돌아 무사히(?) 모두 제자리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 자리가 정말 과연 제자리일까? 책을 펼치고 다시 덮으면서.. 이 이야기는 끝이 있긴 한 것일까 싶은 게.. 마치 뫼비우스의 띠 위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