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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할 자유

[도서] 선택할 자유

밀턴 프리드먼,로즈 프리드먼 저/민병균,서재명,한홍순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선택할 자유
1) 정부의 목적하는 바가 이로울 때 자유를 수호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한 것임을 경험은 가르치고 있다. 사악한 통치자가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에 이를 격퇴하기 위해 나서는 것도 자유인에겐 사람으로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유에 대한 진정한 위험은 동기는 훌륭하나 무식한 열성분자들이 알게 모르게 자유를 잠식하는 데 있다.  --루이스 브랜다이스 판사
--> 대의라는 명분하에 우리의 자유가 너무나 사소하고 쉽게 침해되는 것은 아닐까?
2) 사회과학의 최종적인 목표가 무엇이며, 학문하는 사람의 문제의식이나 가치관이 어떻게 사회의 현실분석과 처방에 투영되어야 하는가 
--> 사회과학적 분석은 분석자의 문제의식과 가치관이 투영된다.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면 사회과학적 분석이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사회학자들에게 도구는 정부다. 정부를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곧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특정 개인 혹은 집단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 다른 개인 혹은 집단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학자들과 정치가들이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떠한 문제점과 가치관을 부각시키는가에 따라 자유를 보호받고, 자유를 침해당하는 개인이 결정되는 것이다. 
3) 개발도상국에 있어서 선진국 경제이론의 무비판적 수용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며 이론을 수용함에 있어서는 그 이론을 낳는 객관적 환경과 주체적 조건으로서의 사회구조를 아울러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 관세와 환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 내용의 대부분이 일본과의 교역에 대한 내용이다. 아직 구체적으로 알아보지 않았지만 여기에서 대략적인 미국의 환율정책을 살펴볼 수 있었다. 자유무역을 추구하고, 일본의 좋은 품질의 저렴한 제품을 미국 내수시장에 공급하면서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억제시켰다. 그 사이에 미국은 엄청나게 달러를 찍어냈고, 달러가 휴지조각이 되도 이상하지 않았다. 당연히 엄청난 무역적자로 이어졌다. 그리고 미국과 일본은 플라자합의를 했다. 플라자합의로 인해 일본의 엔화가치를 1달러당 250엔에서 150엔으로 급격하게 상승했고, 일본의 수출업자들은 수출을 할 때마다 1달러당 100엔의 손해를 보게 되었다. 미국의 무역적자를 일본이 모두 떠안은 것이다. 
현재도 미국의 부채는 상상을 초월하고, 연준에서는 끊임없이 달러를 찍어내고 있다. 오죽하면 미국 최고의 수출품은 달러라는 말까지 나온다. 미국이 일본 대신 찾은 대안은 중국이었고, 현재 미국은 중국과 환율, 무역전쟁 중이다. 
*결국 무제한적인 자유추구의 대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치뤄져야만 하는 것이다.

4) 프리드만은 그의 저서 <자본주의와 자유>를 통해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연설문, "당신을 위해 국가가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당신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으시오"에 대해서도 범상하게 들어 넘기지 못했었다. 가부장적인 어조로 된 케네디의 취임연설문은 자기 자신의 운명을 자기 자신이 책임져야 마땅하며, 그 운명을 받아들일 줄 아는 참된 자유인의 가치관과는 걸맞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주인이 아니고 신격이 아닌 바에야, 또 국민이나 시민이 노예가 아닌 바에야 어찌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한단 말인가?
--> 생각을 하게된다. 자유인이 나라를 위해 해야할 일을 대신해줄 '노예'를 구하면 되는 것인가? 철학을 하던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자유인은 고상하고 부유해지면 되는 것일까? 자유인의 참된 가치관과 운명이란 어떤 것일까? 
5) 진정한 자유인이라면 나라가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도 않을뿐더러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지도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자유인은 차라리 "나 또는 나의 동포가 정부라는 조직을 통해서 자유수호와 사회정의의 실현, 그리고 개개인의 책무를 어떻게 감당해 나갈 수 있을 가를 물어야 마땅하다"고 하였던 것이다. 프리드만에게 있어서 나라는 나의 집합이요, 정부가 곧 나라는 아니다.
--> '나'는 어떤 사람인가. 노예란 단어가 머릿 속에서 계속 맴돈다.
6) '선택의 자유 (Freedom of choice)'와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
 20년 전 이 책의 제목은 '선택의 자유'였으나 원서의 제목에 따라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이 제목의 작은 뉘앙스는 어떻게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을까? '선택의 자유'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다양한 선택지들이다. 다른 해석들도 가능하겠지만 내 기준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석은 '선택의 다양성이 확보된다'는 의미로서 다가온다. 반면에 '선택할 자유'라는 말을 들었을 땐, 열악한 상황과 개인의 의지가 떠오른다. 어떤 절박함이 느껴진다랄까? 선택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그 선택을 무릅쓰는 그런 상황이 떠오른다. 

7) 자본주의의 조류는 전체주의에서 멀어지는 동시에 개인주의와 사적시장으로 향한다. 프리드먼의 자본주의는 인간의 자유가 보장되는 미래를 만들고자 한다. <자본주의와 자유>는 자유로운 시장활동과 사기업제도를 내용으로 하는 경쟁적 자본주의가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제도로서, 그리고 정치적 자유의 필요조건으로서의 기능을 검토하고 있다. 
--> 자유인은 경쟁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활동을 하고, 기업을 하는 자이며, 그에게 자유란 개인주의와 사적시장이다. 선택할 자유라는 건 결국 기업활동을 선택할 자유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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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먼의 이야기는 결국 사람들의 정치적 발언권과 수단을 없애고, 오로지 자본의 힘으로만 움직이는 '자본의 힘이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자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더 많은 자본이, 아무런 정부의 감시와 통제가 없는 상황에서 그 자본의 소유자와 관련이 없는 취약층을 착취하지 않고 모두 잘살게 만들어준다는 생각은 너무나 순진한 생각 아닌가? 보이지 않는 손에 따라 다들 착하게 합리적이고 선한 의도를 가지고 경제활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까? 똥인지 된장인이 꼭 찍어먹어봐야 알까? 경제적 생활수준이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발언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프리드먼의 말에 공감한다. 하지만 그 이유로 프리드먼의 의견에 동의할 수가 없다. 자본으로부터 멀고,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발언권은 매우 약하다. 반면에 자본을 가진 이들의 발언권은 언론을 활용해 여론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다시 말해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시를 하나 들면,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져 있는 유명한 스파이들은 모두 실패한 스파이들이다. 성공적으로 스파이의 역할을 했다면 알려지지 않은 채 공작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패한 유명한 스파이가 있다고 해서 자국의 스파이 활동을, 장병들을 총알받이로 쓰면서 막겠다는 국민이 누가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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