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음이 젊음보다도 더 나은 선생이 될 수 없고 어쩌면 그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나이 먹는 과정에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인생의 과정에서 절대적 가치가 무언가를 배우지 못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로 늙은이들은 젊은이들에게 줄 만한 중요한 충고의 말을 갖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경험은 부분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의 인생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러한 실패가 개인적인 사유 때문이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들은 자신들의 쓰디쓴 경험에도 불구하고 다소의 신념이 남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예전처럼 젊지 않다.
-월든 24p
나이가 든 사람과 젊은 사람이 어울리면 젊은 사람 손해다. 나이가 지혜나 가치의 척도가 되지 않듯이 젊은 사람의 생기와 열정은 오히려 나이 든 사람이 따라갈 수 없는 무엇이 있다. 내 경험에도 나이 든 사람에게 지혜로운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을 견제하며 자신의 영역이 침범당하는 두려움에 발톱을 드러내는 나이 든 사람들을 보아왔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월든을 읽다 이 구절에 무지 공감하였다.그러나, 공감과는 반대로 이제 나 역시도 나이가 든 사람에 속해있다는 자각을 하자, 문득 젊은 사람들에게 나 역시도 실패한 사람의 모습이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 나이든 사람에 지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나름 꼰대짓은 안하잖아? 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해보지만 , 나이든 사람은 젊은 사람의 성실과 열정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면 꼰대임을 인정하는 것이라 본다. 하지만 월든을 쓴 저자 핸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삶은 나이듦을 맞이하지 못한 채 죽었다. 그만큼 자신이 추구하는 대로 산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문제이다. 나이 많음이 젊음보다도 더 나은 선생이 아니라 하였지만, 나이 든 사람의 지혜에 귀를 기울일 시간이 있었다면 면도날에 베인 상처만으로 요절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제 지천명이 되어 이 글을 다시 읽어보니 나이가 많아진다는 건 젊은 사람들과 ‘함께’가 아닌 젊은 사람보다는 좀 ‘나은’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함의같다. 적어도 나이들어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꼰대는 이미 차고 넘치는 세상이니까.. 나마저 그러고 싶진 않다는 조그마한 소망하나 심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