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복종

[도서] 복종

미셸 우엘벡 저/장소미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살게 된다. 누가 한 말인지 몰라도 현대를 사는 우리들을 가장 잘 표현한 것 같다. 디지털 시대에는 굳이 생각하며 살지 않아도 그냥 살아진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명제가 현대사회를 대변하기에는 무용지물의 철학인 셈이다. 사는 대로 살기에 존재하는 것현대인을 적확히 표현하기 좋은 말은 없을 듯하다.

 

어쩌면 미셀 우엘벡이 말하자고 하는 현대인의 상이 딱 [복종]의 주인공 프랑수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배경은 바야흐로 2022, 이슬람 정당이 프랑스를 차지하는 멀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다. 프랑스인이지만 이론상으로만 프랑스인이었지 프랑스에 관한 어떤 전통성도 지식도 가지고 있지 않은 프랑수아는  [위스망스]의 작품으로 논문을 쓰고 박사학위를 땄다. 그리고 프랑스 제3대학에서 조교수 절차를 거쳐 정교수를 하기에 이른다. 그는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지만 교육에 대한 소명따위는 절대 가져본 적도 없으며 해마다 상대를 바꿔가며 학부 여학생들과 잠자리를 하는 생활이 전부인 무미건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정체성불명의 현대인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낙담이나 권태로 인해서인지 여성에게 환멸을 느껴서인지 모를 모호한 감정으로 , 여성을 만나지 않게 된다. 아마도 그는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정착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사실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서구사회의 민주주의에서 표방하는 일부일처제에 그는 왠지 모를 거부감을 지니는 느낌이다.) 감정을 최대한 절제한 상태에서 주로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진행되기에 프랑수아의 속내는 확실히 읽혀지지 않는다. 복잡한 연애관계를 끝내고나자 그는 자신의 성적능력의 쇠퇴인지 또는 갱년기 탓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야동과 변태성행위에 심취하게 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프랑스 전역에서 이슬람박애당 청년들이 교육자를 폭행하는 사건이 사라지고 프랑스 유대인대학생 연합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화려한 여성편력에서 그나마 오래 사귀었던 유대인 부모를 둔 미리암이 이스라엘로 떠난다. 사회 곳곳에서 이슬람이라는 세력이 확장되고 유대인을 축출되는 등 불안감이 감지되지만 그는 철저히 방관자입장에서만 바라볼 뿐 깊이 생각하거나 사건에 개입하는 일은 절대없다. 프랑수아는 아주 철저한 개인주의자이다.  대통령 선거당일 투표소 곳곳이 테러당하며 투표함을 무장세력에게 빼앗기는 사건이 발생하자,  대선거가 치러지는 사이 프랑수아는 처음으로 프랑스를 여행할 계획을 세운다. 

 

이 소설이 재미있는 것은 소설의 현실성을 위해 프랑스의 정당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극우정당으로 분류되는 국민전선(실제로 외국인 혐오자 무리정당으로 불리기도 한다)이 이슬람 박애당과 싸운다. 이 두 정당의 격돌은 '거대한 유럽'이라는 공통적 대의를 전제로 하여 우파와 좌파, 중도파의 연합으로 이슬람박애당의 모하메드를 당선시킨다. (실제로 유럽권이 '하나의 유럽'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있기에 매우 현실적인 소설이다.)  그런데 문제는 프랑스 역사상 최초로 이슬람박애당의 모하메드 벤 아베스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의 일이다.  

 

이슬람박애당의 모하메드 벤 아베스는 당선되자마자 스스로를 분배주의’라 천명하는데 이것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동시에 배제하고 국가 자본주의라는 3의 길을 지향하는 주의이다. 기본적 사상은 자본과 노동의 분리를 없애는 것으로 분배주의에 따른 표준적인 경제 형태는 가족기업이었다. 생산 품목에 따라 보다 광범위한 인원이 필요한 경우는 모든 노동자들이 기업의 주주이자 경영의 공동책임자가 되어야 했다.(p245)이것은 철저히 이슬람의 가르침에 의한 사상이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분배주의가 대중의 열띤 호응을 받게 된다는 것인데, 이후 프랑스는 거대 기업들에게 주었던 국가적 지원을 전면 중단하기 시작했으며 수공예 장인들과 자영업자들에게 융리한 세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하여 노동자의 독립적인 지위가 확보되었고 여성의 사회적 참여를 제한함으로 인해서 남성실업이 해소가 된다. 이러한 변화는 가족 구성원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고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의 실패를 목도한 프랑스인들은 심지어 일부다처제 사회를 환영하는 분위기로 전환된다.

 

무신론과 휴머니즘의 거부, 여성의 절대적 복종, 가부장제로의 복귀, 그들의 쟁점은 모든 면에서 정확하게 일치했다. 그리고 문명의 새로운 유기적 위상 구축을 위한 필연적 투쟁은 오늘날 더는 기독교의 이름으로 지휘될 수 없었다. 보다 근대적이고 보다 진실된 형제의 종교, 이슬람이어야 했다.(중략) 따라서 오늘날 횃불을 이어받을 종교는 이슬람이었다. p335

 

글쎄, 이슬람의 혐오로 이 소설이 쓰여진 것인지, 극찬을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서구민주주의 사회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 점점 이슬람화 되어 가고 있는 것에 대한 경각심으로 읽혀진다. 프랑스 사람들은 모이면 섹스나 차를 마신다고 하는 우스개 소리가 있듯이 프랑수아는 성에 대한 심한 도착증을 보인다. 그가 성에 도착하는 이유는 소설 전반에 흐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대인들이 누구나 겪는 소외감과 고독으로부터의 일탈이다. 성에 집착하면 할 수록 해소는 커녕 더욱 더 심한 낙담과 환멸을 느끼는 프랑수아에게 이슬람교의 개종은 하나의 희망으로 받아들여지는데, 그는 이슬람교 개종식에 대한 기대로 -하나같이 이쁘고 베일을 두른 학생들과의 잠자리를 꿈꾸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좀 황당한 풍자이긴 하지만, 점점 우경화 되어 가는 프랑스사회를 향한 신랄과 조소를 주인공 프랑수아에 담아낸 기분마저 든다. 한때 '분노하라'의 신드롬을 일으켰던 레지스탕스 스테판 에셀이나  '반유대주의'에 격분하였던 졸라와 같은 이들에게 아마 프랑수아와 같은 인물은 가장 혐오스러운 군상이었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시초나 다름없었던 프랑스에서 '이슬람'에 복종하여 변화되는 사회는 더욱 충격적이고 암울한 미래상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사상이나 체제에 아무 분노없이 받아들이며 동화 갈 때 우리의 삶은 사는 대로 살아가는 프랑수아와 전혀 차이가 없어진다. 적어도 프랑수와처럼은 되지 말자는 미셸 우엘벡다운 신랄한 조소와 풍자가 아닌지.매우 인상적이고 완벽한 디스토피아였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8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꼼쥐

    걱정과 근심이 많아질수록 도착증은 더 심해지게 마련이지요. 요즘과 같은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근본적으로 도착증을 안고 태어나는 셈이 되겠구요. 정도의 차이는 잇겠지만 성이든, 알콜이든, 도박이든, 어떤 것에 도착증을 보이는 것은 현대인의 특성이 아닐까 싶어요.

    2015.11.03 18:2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청은

      굉장 재미있게 읽었네요 ㅎㅎㅎ
      좀 독특한 디스토피아 소설 이었어요.
      어떤 결말도 정확하지 않고,,,
      근데 뭔가 굉장 암울한 느낌이기도 하고 철학적이기도 하고요.
      프랑스가 민족주의가 생각보다 강한나라라, 이슬람화가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ㅎ

      2015.11.09 15:27
  • 스타블로거 짱가

    어쩌면 뚜렷한 목표가 있을 때를 사람들은 그리워하는지도 모를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의미나 목적이 상실되면 방향을 찾지 못한 개인들은 허황된 욕망에 빠져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2015.11.04 20:0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청은

      맞는 표현이십니다. 현대라는 문명에 휩쓸리는 개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한 삶을 살게 되죠. 주인공 역시도 그냥 휩쓸릴 뿐 어떤 주체성은 없는 캐릭터였습니다.

      2015.11.09 15:29
  • 파워블로그 아그네스

    세계를 지구촌으로 만든다는 디지털 세계에 종속될수록 역설적으로 사람의 사유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전화번호도 모두 저장해두니 일일이 기억할 필요가 없어지고... 그래서 젊은이 중에 디지털 치매가 생긴다잖아요. 인간이 갈수록 무기력해지는 것 같네요.

    2015.11.05 11:5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청은

      기계는 발달하는데 인간은 퇴화하고 있는 것이겠죠...
      공부도 힘들게 터득한 것은 오래 기억되는데 쉽게 얻어진 정보는 그만큼 쉽게 잊혀지더라구요. 기계와 거리를 두고 사는 것이 ㅎㅎㅎ 지능을 퇴화시키지 않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요...

      2015.11.09 15:31

PYBLOGWEB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