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기자의 블로그를 이웃으로 등록해 두고 올라오는 글을 읽고 있었는데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구입했습니다. 바로 들고 몇 장 읽다가 피로감이 밀려와 미뤄두다가 이제서야 다 읽게 되었네요. 모르는 이야기였으면 좋겠고, 공감할 수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야기들이 넘쳐나는군요.
여성으로 살면서 겪은 일 중에 글로 쓰기 그나마 불편하지 않은 예를 하나 들면, 노래방의 일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네요. 이 이야기도 너무 흔한 상황인지라 다시 언급하는 것도 시시하지만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이 갈리는 일이죠. 노래방에서 가서 남성 상사를 대우한다고 하는 방식이 젊은 여성 직원과 부루스를 추게 하는 것이 던 시절 직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노래방 가기 전 회식 자리에서는 남성 상사 옆에 젊은 여성 직원들을 앉혔죠. 여성 직원의 동의 같은 것은 필요 없고, 거절을 할 경우 사회생활 못하고 분위기 망치는 사람이라고 찍혔습니다. 그 자리에서 면박을 당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죠. 부루스를 추면서 속옷의 고리 부분을 손으로 쓰다듬어도 항의할 수 없는 분위기였죠. 30년이 지난 일인데, 상사였던 자들, 부추겼던 중간 관리자들, 묵인했던 동료들이 다 죽고 사라지진 않았으니 그들 중 일부는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낳았거나 사회에서 키운 자 중에 일부는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을까 싶어 끔찍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제는 밖에서도 호방하게 행할 수 있었던 시절이 지나 남들이 못 보는 곳에서 몰래 행하거나, 몸으로 행했던 자들이 이제는 말로 행할 수도 있겠고 사회적 변화에 따른 다양한 변이들이 일어났겠죠. 이 책에서 읽게 된 사례들이 그렇고요. 그러니 아직까지도 이런 상황이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인데, 상대가 싫어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부끄러움 정도 알게 하는 것에 얼마의 시간이 더 걸릴지 답답한 마음이 드네요.
이 책에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프로그램에서 다리가 아픈데도 마라톤을 따라 뛴 직원의 예가 나왔고 서울 시장이 위력 행사를 반성했음에 대해 좋은 사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성운동 발전사에 많은 자리에 서 있었지만, 있어서는 안 될 의문을 남기고 자살을 했죠. 그를 지지했던 나는 그 이후 일어난 상황에 어리둥절하여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판단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이 죽음 이후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되던 중년 남성들이 30년 전 노래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참으로 답답했습니다. 서울 시장은 인품이 훌륭한 친구였기에 가해자 일 수 없다는 것인지, 존경받는 사람이기에 그 만은 예외로 두 자는 의미인지, 원래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요즘 교양인은 그러면 안 되기 때문에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들이 한 번도 나와 공감한 적은 없지 않을까 의심하게 되었죠. 착찹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그런 마음인데도 책은 잘 읽힙니다.
손바닥에 올라오는 작은 사이즈에 읽기 어렵지 않게 쓰인 이 책을 읽으며 이런저런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