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에너지 제국의 미래”(양수영·최지웅, 2022)는 대우인터내셔널에서 한국 자원 개발 역사상 최대 규모인 미얀마 가스전 개발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수행하였으며, 2018~2021년 한국석유공사 사장을 지낸 양수영 교수께서 공저로 쓴 책이다.
이 책은 석유자원 개발에 오랜 경험이 있는 저자의 시각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전환의 시기에 석유가 갖는 지정학적 의미와 향후 역할(원료용, 의료용, 군사용 등 필수 분야로 사용 축소 등), 외국 메이저 석유기업들의 동향을 소개하는 한편, 석유를 대체하는 새로운 에너지원으로써 재생에너지와 수소의 역할과 가능성을 소개하고,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방향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1776년에 『국부론』을 쓰면서 국부의 원천이 노동이고 부의 증진은 분업 등을 통한 노동 생산성 개선에 의한 것이라고 했는데, 만약 애덤 스미스가 지금 책을 쓴다면 부의 원천은 석유나 석탄 같은 에너지이고, 부의 증진은 에너지원의 확보와 새로운 에너지원의 개발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쓸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만큼 부의 근원이자 경제활동의 근간, 인류의 모든 활동이 에너지에 기반하고 있음을 역설한다. 18세기 석탄이 풍부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이루어지면서 영국은 대영제국으로 도약했고 석탄의 시대가 저물면서 영국이 쇠퇴한 반면, 미국은 석유 시대가 열리면서 석유의 해상 수송로를 장악하고, 사우디의 석유를 결제하는 통화로 달러가 사용되면서 달러가 기축통화로 확립되고, 중동에서 수차례 전쟁을 치르면서 석유 패권을 지키고 있다. 최근에 유럽과 중국이 재생에너지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도 미래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의도로 해석한다.
저자는 오늘날 국제관계에서 군사적 수단을 제외하고 상대를 가장 강력하게 타격할 수 있는 것은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거래를 막는 것이라고 말한다. 공급자는 판매처가 막히고, 수입자는 경제와 생활의 근간이 되는 에너지 자원을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2021년 10월부터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위협을 가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었던 것도 2021년 9월에 러시아 서부 연안에서 발트해를 거쳐 독일로 연결되는(우크라이나를 경유하지 않음)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이 완공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도 안정적인 에너지 수송로를 확보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유럽의 주요 석유기업인 BP, 쉘, 토탈 등이 모두 석유산업을 축소하고 재생에너지 산업을 확대하는 추세인데, 그 원인에는 이 기업들이 접근할 수 있는 석유 잔존량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며,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투입하기도 어렵고 투입한다고 해도 개발이 용이하지 않으며, 탄소규제 강화에 따른 리스크도 커지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유럽의 석유 기업들은 앞선 기술과 경험으로 재생에너지 사업에서도 과거 석유 개발에서처럼 영광을 재현하고자 한다. 석유기업 중 재생에너지사업에 가장 적극적인 BP는 2021년에 250억 달러 규모의 자산처분 프로그램을 통해 석유, 가스 생산량을 향후 10년 이내 40%(110만TOE(석유환산톤))를 감소시키고,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50기가와트(2020년 우리나라 태양광과 풍력 누적 설비용량은 20GW)를 달성하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저자는 유럽의 메이저 석유회사의 재생에너지 사업 진출은 에너지 전환기에 자연스러운 리스크 관리전략으로 보고 있다. 과거에 유럽 북해 유전을 개발하던 석유업체들(노르웨이 에퀴노르, 덴마크 오스테드)은 북유럽 국가들의 적극적인 해상풍력 육성 정책을 통해 대표적인 풍력발전 업체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 영국은 2020년 기준 풍력 발전기를 1만 930기 운영하고 있으며, 풍력 발전 용량이 24.1GW로, 자국 발전량의 약 20%를 충당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0년 12월에 발표된 제5차 신재생에너지기본계획에서 풍력발전 설비용량을 2018년 1.3GW에서 2034년 24.9GW로 약 19배 높일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2034년 풍력 설비용량 목표를 영국은 현재 운영하고 있으며, 이 수치는 터무니없는 숫자가 아니라 탄소중립을 위해 감당해야 하는 숫자라고 말한다.
일본 정부가 2017년에 발표한 수소기본전략에 따르면, 일본은 수소 생산에 필요한 자원과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부족하므로 해외에서 현지 자원을 활용해 수소를 생산하고(호주에서 갈탄에서 수소를 추출하고 CO2를 제거하여 블루수소를 생산, 사우디에서 태양광을 활용해 그린수소를 생산 등), 수소 액화운반기술을 선도하면서 수소를 저렴하게 일본으로 들여오겠다는 계획이다. 일본은 해외에서 수소 생산시 최대한 일본의 기술을 활용함으로써 단순한 수입국의 입장에 머물지 않고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블루수소 생산에 필요한 CO2 제거 기술을 확보하려 노력하고, 정부와 민간 협력을 통해 수소 사업을 진행하는 점 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탄소중립 달성 관련하여, 기후변화 대응과 석유 고갈에 대비하기 위해 탄소감축과 에너지 전환에 더 정교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한 방향으로 석탄발전을 가능한 빨리 퇴출하고, 석유는 그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 소비량까지만 쓰고,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숲과 바다 등을 통해 흡수하여 탄소중립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에너지원의 개발이나 탄소흡수의 불확실성, 탄소감축으로 인한 경제적 영향 등을 고려하면 가장 우선적으로 에너지 소비를 절감해야 하며, 디지털 기술 등을 통한 탈물질화 등이 한 방안이라고 말한다. 수송 부문에서 전기차와 철도의 확대, 건물 부문에서 아파트와 같이 고밀도 주거가 방향이 될 것이며, 산업 부문에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을 통해 탄소 배출에 대한 가격이 부과되어 탄소감축을 유도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철강업종에서 수소환원제철 투자, 디지털 산업의 비중 확대 등).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확대는 독일처럼 원전을 대체할 것인지 아니면 영국처럼 화력발전을 대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쟁이 될 수 있으며, 스마트그리드와 에너지저장장치가 중요해지고, 2차전지의 소재가 되는 핵심광물자원의 수급도 중요해 질 것이라고 말한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그레이수소의 활용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블루수소나 그린수소를 활용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탄소중립사회로 가는 과도기 과정에서 천연가스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포집된 탄소를 저장하는 공간을 찾는 과정에서 석유탐사를 하던 석유기업의 경험과 역할이 중요할 것이라고도 말하고 있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기술개발과 경제력의 뒷받침도 강조하고 있다.
경험이 풍부한 석유개발 전문가의 시각에서 앞으로 석유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석유기업들은 탄소중립 시대에 어떻게 변모해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다른 미래에너지 또는 탄소중립 관련 책들과의 차별화 지점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