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내려와 살면서 시간이 지나자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이 시작된다. 텃밭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넓고, 농사일이라 하기에는 얼마 안되는 밭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이사 올 당시엔 감나무가 40여 그루 심어져 있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나니 의외로 넓다. 작년엔 그곳에 고추를 심었다. 처음에 고랑과 이랑을 만들면서 힘이 들었지만 그런대로 할 만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고추를 수확하고 난 다음이었다. 그저 지은 농사이기에 지인들에게 보내주고도 많이 남았다. 노는 땅을 그대로 두기가 뭐해 땅만큼 심었더니 양이 너무 많았다. 나중에는 따다가 지쳐 동네사람들에게 그냥 개방해버렸다.
동네에서 알게 된 분들이 그 땅에 포도를 심으라고 꼬드긴다. 싫다고 거절하다가 새로운 품종을 심어보면 어떻겠냐는 말에 솔깃해졌다. 내년에 나무를 심고 3년 후 포도를 수확할 때까지 별로 할 일이 없다 하길래 마음이 동하였다. 그래서 작년 겨울에 샤인 머스킷 삽목 100주를 주문하고서 포도나무를 심을 수 있도록 비닐하우스도 설치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문제가 된 것은 올해이다. 3월초에 나무를 심고서 일이 다 끝난 줄 알았다. 잡초방지를 위하여 비닐 대신 감나무가 있을 때 썼던 부직포로 깔았다. 헌데도 일이 끝난 게 아니었다. 겨울에 설치한 비닐하우스의 천장 비닐이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늘어나자 그것을 다시 조여야 했고, 물라인을 설치하여 때마다 물을 주어야 했다. 문제는 우물 물이 많지 않아 통에 받아 놓았다가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2톤짜리 물탱크를 설치하고 우물물을 받는 것도 일이었다. 또 포도나무에 새순이 나기 시작하자 줄기가 똑바로 올라오도록 유도줄을 설치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그것으로 끝이 났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닐하우스를 만들면서 나중에 작업장이 필요하다 하여 포도밭과 건넛채 사이에 지붕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맨바닥을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벽돌을 깔기로 하였다. 어찌어찌하여 보도블럭 교체하는 곳에서 걷어낸 보도블럭을 싣고 온 것 까지는 좋았다. 대문 앞에 쌓아 놓은 보도블럭을 집 뒤까지 옮기고, 그것을 한 장 한 장 깔아가는 것은 생각처럼 그리 쉽지가 않았다. 허리도 아프고, 손발도 저린다. 급한 것은 아니니 시간 날 때마다 천천히 하면 된다고 말들 하지만 일을 두고서 뒤로 미루는 것이 성격상 용납이 안된다. 그렇게 일주일을 꼬박 걸려 바닥에 보도블럭을 깔았다. 다 깔고 나니 조금 남길래 목재를 구해다 비닐하우스 부품과 농기구를 둘 선반까지 만들었다.
만들기까지 마음의 갈등이 많았다. 우선 몸이 말이 아니다. 하지 않던 일을 해서 그런지 저녁에 잠을 자면 손발이 저려서 시도때도 없이 잠을 깨고, 다른 일을 할 엄두가 나지도 않는다.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은 물론, 끝날 때까지 아예 다른 일도 전폐해 버렸다. 다 하고 나니 보기는 좋다. 물론 포도밭에 또 어떤 일이 기다릴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홀가분하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꽃잔디가 꽃을 제대로 피웠다. 작년에 심을 때는 언제 꽃이 피고 주위로 퍼질까 했는데, 올해 들어 제법 많이 퍼지고 꽃도 제대로 피워 내기 시작했다. 정원이 이제 틀을 잡아가는 느낌이다. 서부해당화는 만개하였고, 자목련도 이제 막 꽃을 피워 내기 시작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빈둥거리고 있다. 낮엔 모처럼 낮잠을 늘어지게 잤고, 저녁엔 반주삼아 소주로 목을 축였다. 모든 날들이 오늘과 같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욕심이란 걸 알고 있다. 몸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새삼스레 느낀다. 처음 해보는 일들, 그래서 서투르고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배우는 마음으로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된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 그것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다시 확인한다. 내일부터는 또 어떤 일을 할지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