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를 하기 시작한지 벌써 만 5년이 다되어가네요. 처음엔 어리벙벙해서 무엇을 하는지도 잘 몰랐고, 그러다 3년이 지났을 때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하자면 끝이 없고, 안하자면 할 일이 없는게 시골살이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일을 전혀 안하고 잡초와 함께 살아갈 순 없는지라 가능하면 일을 줄여 최소한도로 하자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지요. 그래서 감나무를 베어낸 자리에는 작물대신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집 뒤쪽에 있는 밭에는 최대한 일의 양을 줄이기 위해 마늘과 고추만을 심기로 했고요.
마늘은 11월에 심어 다음해 6월에 수확하고, 고추는 5월에 심어 8월초부터 11월 서리가 내릴 때까지 수확합니다. 마늘을 수확하고 난 자리는 비워두었다가 9월초 김장용 배추와 무우를 심고, 고추 심었던 자리는 수확한 후 마늘을 심으면 일을 줄일 수 있다고 희희낙낙하였지요. 그래서 작년엔 별 힘 들이지 않고 가정에서 필요한 양념 두가지를 해결했습니다. 헌데 문제는 올해네요.
지난 3월 마늘이 잘 자라지 않는다고 영양제를 주었다가 다 말라 죽였습니다. 원래 마늘은 심기전에 충분히 퇴비와 흙을 섞어줘야 하는데 그렇게 해놓고도 잘 자라지 않는다고 과욕을 부리다 마늘농사 도로아미타불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올핸 양파와 마늘농사가 대체적으로 풍작이라 다행이다 싶었지요. 헌데 고추는 더 심각하네요. 장마가 오기 시작하면서 2주간 줄구장창 내리던 비님이 심술을 잔뜩 부렸습니다. 장마가 그치고 방제를 했음에도 탄저병이 오기 시작하여 일부를 뽑아냈습니다. 헌데 며칠사이 나머지 고추나무에도 모두 탄저병이 돌더라구요. 그래서 오늘 큰맘먹고 모두 뽑아버렸습니다. 지금까지 빨갛게 익어 따서 말린 것은 장마전에 수확했던 열다섯근 정도가 전부네요. 그러다 보니 올핸 고추가루도 사먹어여 할 것 같은데, 고추농사 짓는 농가 거의 대부분이 탄저병 피해를 입은지라 김장 때 고추값이 금값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ㅎ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포도(샤인머스켓)인데, 아직까진 순조롭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9월중순경부터 수확하려 하는데 요즘 폭염으로 당도가 쑥쑥 올라가는 것 같아 시기가 빨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작년 봄에 심어 올해 2년차라 가지마다 모두 송이를 달지는 못햇고, 절반 정도 달린 것 같습니다. 그래도 1000송이가 조금 넘네요. 처음해보는 일이라 동네분들의 조언과 궁금한 것은 농협에 물어물어 해나가고 있습니다. 다른 집 포도나무 가지는 양쪽 나무의 끝이 서로 만나 터널을 형성하던데 울집 것은 그러지 못했네요. 아마 내년에는 올해보다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ㅎ
다행히 포도송이는 제대로 모양을 갖추고 있습니다. 100주를 심어 2주가 아프다며 먼저 간다고 하는 바람에 98주가 남았는데 다들 건강하네요. 아내와 둘이서 관리하기 딱 적당하단 생각이 들고요. 물론 수익에 욕심을 낸다면 더 심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포도재배가 일이 아니라 노동이 될 것 같아 꾹 참고 있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당도측정을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기준 당도가 나온 송이는 농협 경매장에 출하할 수 있거든요. 시골살이 5년만에 첨으로 수익을 얻는 경사스런 순간이 되겠지요.^^
올 농사를 지으면서, 사실 농사랄 것도 없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자연과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는 것도 그 중 하나입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통제가 가능하지만 수익을 위해 그 이상을 하려 한다면 자연과 인간 모두 병들어갈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됩니다. 책을 읽어 알게되는 생태계의 조화에 대해 조금이나마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시골살이를 하고서부터 시장에 가더라도 보기 좋은 채소류에 눈길을 주지 않는 것도 달라진 점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 작물을 조금씩이나마 재배해 보면서 마음을 비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를 비로소 알아가고 있습니다. 욕심을 낸다고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이루어질리 만무하고, 심고 가꾸는 작물에 애정을 쏟고 땀을 흘린만큼 수확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새삼스레 노동의 가치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물론 농사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생각이 얼마나 배부른 소리인지를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마음 속 욕망을 덜어낸다는 것이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올해 남은 기간, 그리고 내년의 농사는 또 어떤 깨달음을 얻게 해줄 지 기대가 되기도 하네요.
연일 폭염은 기승을 부리고 코로나는 더욱 심각해지는 것 같습니다.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이 빚은 결과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불친님들
폭염과 코로나라는 자연재해 앞에서 건강관리 잘 하시고, 상쾌한 주말 보내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