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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꽃의 삶

[도서] 덧없는 꽃의 삶

피오나 스태퍼드 저/강경이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가을이 깊어가면서 제철을 만난 국화나 코스모스 같은 가을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철지난 꽃들은 진즉 시들었지만 잎마저도 하나 둘 떨어지고 줄기나 가지도 이제 다음해를 기약하는 듯 시들어간다. 꽃이 지고 시들면서 그 꽃들은 잊혀지지만 내년 봄이 되면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다시 피어날 것이다. ‘나 여기 있어요’ 하면서.

 

철따라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서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흥이 일어난다. 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 젊어서 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산이나 들에 피어있는 꽃을 보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그것은 그 순간일 뿐, 나에게 꽃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아파트 베란다에는 아내가 가꾸는 많은 화분이 있었지만 무슨 꽃과 나무가 있는지, 언제 피는지 관심 밖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나를 두고서 감정이 메말랐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난 주위의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않을 만큼 치열하게 살았다는 증거가 아니냐고 자위했다. 물론 나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그런 내가 이제는 꽃을 심고 가꾼다. 시간이 되면 시든 가지들이 생기를 되찾고 잎이 피어나면서 꽃 봉우리가 맺히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과 함께 삶의 치열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괜히 엄숙해지곤 한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러다보니 전에는 관심밖에 있었던 꽃에 관한 책에도 눈길이 간다.

 

처음 [덧없는 꽃의 삶]이라는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든 생각은 꽃의 삶을 살펴보면서 인간의 삶을 생각해보는 인생론 비슷한 책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문학, 신화, 예술로 읽는 꽃 이야기’란 부제가 달려있긴 했지만 ‘덧없다’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인생의 무상함을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허나 책을 읽어가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열다섯 가지 꽃의 이야기임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저자가 소개하는 대부분의 꽃들은 한번쯤 그 이름을 들어본 듯했지만, 야생화임에도 대부분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보기 힘들고 인공적으로 조성한 정원에서나 만날 수 있기에 새로운 꽃을 배워간다는 느낌으로 읽어나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주위에서 보아온 꽃들, 영국 곳곳에서 봄이 되면 만날 수 있는 들꽃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때로는 신화 속 이야기를 빌어서, 때로는 시인들의 시를 통해서 저자가 들려주는 꽃의 이야기는 우리를 신화 속 혹은 시인의 삶속으로 안내한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꽃의 아름다움과 함께 그 꽃이 주는 의미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열다섯 가지의 꽃 중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꽃은 내가 잘 알고 있거나 혹은 집 마당에 심어져 있는 수선화, 장미, 보리수, 양귀비, 해바라기 등이었다. 바닥을 기는 꽃 잔디들 사이에서 우뚝 솟아오르는 수선화의 노랗고 하얀 꽃들과 선명한 색상을 자랑하는 양귀비는 봄이 되면 기다려지는 풍경의 하나이다. 그러가하면 여름이 시작되면서 피기 시작하는 장미는 다채로운 색채배열을 만들어내면서 보는 눈을 호강시켜 주기도 한다. 흰색, 빛바랜 노란색, 호박색, 핏물 같은 선홍색, 주홍색, 어둡다 못해 검은색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어두운 주홍색 등... 특히 아침의 기온이 쌀쌀하기만 한 요즘 ‘늦게 피는 장미들은 가을 습기와 서리에 굴하지 않고 투명한 거미줄과 더불어 서늘한 아름다움을 내다 건다’는 저자의 말을 실감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꽃을 보면서 꽃들은 놀라움을 실어 나른다고 감탄한다. 해마다 똑같은 장소에 피어난다고 해도 꽃들은 실제로 새롭게 피기 때문에 놀랍기는 마찬가지이며, 꽃은 위태롭게 존재하지만 또 변함없이 존재하기에 인간은 중요한 삶의 순간마다 늘 꽃과 함께 했다. 또한 꽃들의 삶은 어느 순간에 피어나고 또 한순간에 지는 것을 보면 덧없음을 상징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실은 그보다 부활과 계절의 싱그러움을 먼저 떠올리게 만든다. 저자의 말처럼 문학에서 꽃은 가장 오래된 이미지이자 깊은 감정을 나타낼 때가 많고, 영원한 계절의 순환을 표현하면서 꽃의 신화는 끊임없이 변신하는 것도 꽃의 덧없음과는 관계가 멀지 싶다. 그렇게 볼 때 비록 원제가 ‘The Brief Life of Flowers’이지만 '덧없다'대신 다른 단어로 번역되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유년시절부터 들판 곳곳에서 자라는 야생화들을 보고 자랐다고 저자. 지금은 우여곡절 끝에 들판에서 사라지는 꽃들도 있고, 관리된 정원을 유지하기 위해 프림로즈나 엉겅퀴처럼 필요하지 않은 들꽃들을 잡초 취급하지만, 저자는 이런 들꽃이야말로 풍요로운 생태다양성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인간들은 단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꽃의 이름을 짓고, 또 필요에 의해 그 꽃들을 잡초라 부를 뿐이다. 길을 가다보면 들꽃들이 사라지고 미관용으로 키워진 꽃들이 똑같은 머리들을 맞대고 있다. 그렇지만 들과 산에는 아직도 많은 야생화들이 때가 되면 꽃을 피운다. 어떤 들꽃이 피었는지 오늘은 한번쯤 들이나 산을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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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나날이

    꽃이 놀라움을 실어 나른다는 말은 참 적절한 듯합니다. 꽃은 세파에 지친 마음들을 위로해 주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꽃이 있는 곳에는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기쁨을 불러 일으키기까지 한다고 생각되니까요. 저는 꽃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한 사람입니다. 다양성의 꽃들에 대한 필요성을 저자가 말하고 있네요. 꽃이 가지는 가치와 인간의 명명하기 이전의 그 본래의 참된 모습을 생각해 보고 있네요.

    2020.10.10 06:33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초보

      꽃을 보고 잇으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낍니다. 예전에는 왜 그것을 몰랏는지 모르겠네요. ㅎ

      2020.10.12 08:37
  • 스타블로거 추억책방

    제목을 달리 지었어도 좋을 꽃에 대한 이야기네요. 무심코 지나치는 길가의 꽃들이지만 해마다 꽃을 피우는 꽃들의 대단함을 느낍니다. 저는 베란다에 6 ~ 7년 전부터 치자나무를 키우고 있는데 매년 꽃보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올해 간신히 꽃 한송이를 피웠구요.
    재미있는 들꽃 이야기였을 것 같습니다.
    초보님.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2020.10.10 08:58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초보

      이곳으로 이사오면서 화분만 한 차 가득이었어요. 그 때만해도 그걸 왜 가지고 내려오냐면서 짜증을 부렸던 생각이 나네요. 지금 생각하면 웃음밖에 안나오지만요. ㅎ

      2020.10.12 08:39
  • 파워블로그 하루

    꽃보고 있으면 좋아요. 꽃사진도 찍게 되고요. 계절마다 변하는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나이가 되었나봐요. 그나마 다행이지 뭐예요. 아름다운 문장이 보여서 자꾸 눈이 갑니다. 이맘때쯤... 장미가...투명한 거미줄...눈에 그려집니다. 봤거든요.

    2020.10.10 09:14 댓글쓰기
    • 스타블로거 초보

      요즘 아침마다 보는 풍경입니다. 거미줄을 걷어줄까 생각을 하다가도 다니는데 지장없으니 그냥 두고서 보고 있습니다. 책에서 그에 대한 글을 발견하고서 보니 이제는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를 않네요.

      2020.10.12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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