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출간될 때마다 꼬박꼬박 찾아서 읽는다. <남도답사 일번지>란 부제를 달고 처음 국내편 1권이 출간된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이니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함께 한지도 퍽이나 오래된 것 같다. 답사기를 읽으면서 저자가 소개한 곳 모두를 가보지는 못할지라도 때로는 일부러 찾아가보기도 했고, 때로는 근처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잠시 시간을 내어 들리기도 했다. 책에서 보고 읽지 않았다면 그저 풍광이나 감상하고 왔겠지만 답사기 덕분에 나름대로 의미를 찾으며 돌아보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기억에 더 남았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지도 벌써 2년이 넘었다. 처음 생각과는 달리 길게 이어지면서 답답함과 함께 마음도 울적하기만 하다. 이럴 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책과도 잠시 멀어져 있다가 마음을 다잡고 읽을 만한 책을 살펴보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작년 10월에 나온 책을 이제야 보게 되니 그동안 책과 거리를 둔지도 제법 된 것 같다. 책을 받고 살펴보니 상반된 생각이 든다. 하나는 기존에 출간된 국내답사기에 소개된 곳을 추천여행지란 이름으로 간략하게 수록한 것을 보고 ‘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도 우리나라 산사가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을 때 <산사순례>란 부제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별도로 펴낸 것이 생각나 씁쓸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이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할 때 기분전환삼아 가볼만한 데를 소개하고 있어 ‘괜찮은 것 같네’하는 생각이었다. 막상 답사기를 다시 꺼내 읽는다는 것은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한권에 24곳의 여행지를 간추려 소개하고 여행계획이나 후기마저 기록할 수 있게 다이어리 형식으로 출간한 것이 나름대로 지금의 코로나19 상황과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국내여행지 24곳을 소개하고 있다. 여행지별로 어느 계절에 가면 가장 좋을지를 골라 월별로 2곳씩 묶었다. 겨울 어느 날 눈이 내린다면 종묘를 찾아 침묵 속에 잠겨보는 것도 좋고, 홍매와 백매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다면 3월 중순 순천 선암사를, 동백꽃을 보고 싶다면 4월말 고창 선운사를 찾아가보라고 알려준다. 또한 한여름에는 안동의 병산서원을 찾아 낙동강 백사장을 바라보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건축을 감상하고, 가을에는 영주 부석사의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걸어보라고 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곳곳을 계절에 맞춰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은 저자가 소개한 아름다운 길 4곳이다. 남원에서 섬진강을 따라 곡성·구례로 빠지는 길, 양수리에서 남한강 줄기를 타고 양평으로 뻗은 길, 풍기에서 죽령너머 구단양을 거쳐 충주댐을 끼고 도는 길, 경주에서 감음사로 가는 길이 그곳이다. 모두 강이나 바다를 끼고 산과 들이 어우러진 곳이나 지금과 같이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요할 때 제격이지 싶다.
책을 읽는 동안 옆에서 보고 있던 아내가 다 읽고 나니 자신도 읽어보겠다고 한다. 그러곤 여행을 가본지도 오래되었는데 국내라도 돌아보자고 한다. 우선 집에서 가까운 곳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가보자며 당장 지금부터 하자고 난리다. 하긴 2년여 동안 여행하고는 담을 쌓고 살았으니 좀이 쑤실 만도 할게다. 나 역시도 요즘 들어선 어디론가 떠나고 싶기도 하다. 다행히 책에 소개된 곳 대부분이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당일치기로도 가능한 곳들이다.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일단은 떠나보고 싶게 만든다. 봄이 되기 전 이 책을 안내서 삼아 이곳저곳 다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