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억은 재편집되기도 하고 심지어 왜곡되기도 한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가다 보면 흐릿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사건으로 꿰맞추어진다. 나는 내 기억 속에 있는 그것이 분명 내가 겪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의 그 시절을 아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조금씩 핀트가 맞지 않음을 느낀다. 그런 경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내 기억을 확신하지 않는다. 아마 그래도 별다른 문제가 없기 때문이지 싶다. 이처럼 우리의 기억은 완전하지 않다. 재편집과 왜곡은 물론 아주 망각하거나 혹은 깜박하기도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대니얼 샥터는 이런 기억의 불완전성에 따라 나타나는 광범위한 현상을 7가지의 기본적인 오류로 분류했다. ‘소멸’, ‘정신없음’, ‘막힘’, ‘오귀인’, ‘피암시성’, ‘편향’, ‘지속성’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이 책 [도둑맞은 뇌]에서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심리학자와 신경학자, 뇌과학자들의 연구와 실험,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나 PET(양전자방출 단층촬영) 같은 뇌스캔 영상연구를 통하여 기억에 관한 7가지 오류를 분석한다. 기억이 왜 불안전하며 우리는 일상에서 그런 기억으로 인해 어떤 곤경에 처하는지를 많은 사례와 함께 소개한다.
저자가 분류하고 분석한 7가지 오류 중 소멸, 정신없음, 막힘은 기억해야 할 것을 잊는 오류이다. 소멸은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이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 기억의 망각곡선은 우리의 기억과 시간의 관계를 알려준다. 정신없음은 기억해낼 수는 있지만 인출해야 할 때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며, 집중하는 것을 방해받거나 주의가 분산될 때 흔히 일어난다고 한다. 막힘은 소멸이나 정신없음과는 다른 종류의 망각이다. 부호화되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고 기억이 희미해진 것도 아니지만 필요할 때 갑자기 떠오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대부분 이런 오류를 일상에서 흔히 경험한다. 어떤 물건을 곁에 두고도 한참을 찾아 헤매거나 오랜만에 만난 사람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당황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지 싶다.
그런가 하면 오귀인, 피암시성, 편향, 지속성은 기억의 오작동에 의한 오류라고 한다. 기억장애나 오기억은 잘못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어떤 사물을 보고 상상하거나 어떤 행위를 하고 있다고 상상하면 가끔 시간이 흐른 뒤 자신이 실제로 그 사물을 보았거나 그 행위를 했다고 믿는다. 이처럼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을 기억하는 것이 오귀인이다. 피암시성은 기억을 인출할 때 암시에 의해 기억이 왜곡되는 것을 뜻한다. 타인에게 얻은 정보와 글, 사진, 미디어에서 본 정보를 자신의 기억의 일부로 믿는 것이다. 피암시성은 오귀인과 연관되기도 한다. 즉 암시를 부정확한 기억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오귀인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귀인은 암시없이도 일어난다고 한다. 편향은 현재의 지식과 믿음이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즉 과거 모습에 대한 기억은 현재 모습에서 영향을 받는다. 현재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과 일관성을 이루도록 과거를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이런 편향은 사람들에게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과거의 경험을 기억하게 하는 것으로, 개인적인 경험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들의 공통된 특징인 자신을 더 좋게 느끼도록 강화하기 위해서 일어난다. 지속성은 잊고 싶은 일을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는 걱정스러운 생각이나 잊고 싶은 경험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지만 그럴수록 그 기억은 더 자주 반복적으로 떠오른다. 이것은 기억의 지속성이 슬픔과 실망이라는 정서적인 자극에서 활발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의 뇌에서 일어나는 기억의 오류는 뇌의 근본적인 잘못이 아니라 우리가 생존하기 위한 기억체계를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이자 기억의 또 다른 적응적 특징의 부산물, 즉 진화의 부산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기억체계는 일상생활에서 불필요한 정보로 머릿속을 어수선하게 만들지 않기 위하여 광범위하게 부호화할 만큼 중요한 사건들만 잘 기억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기억에 관한 한 적을수록 좋다는 원칙이 이용 빈도와 최근에 이용 여부를 따지고, 그래서 정보를 줄임으로써 얻게 되는 이익과 망각 때문에 발생하는 손해 사이에서 균형을 이룬다. 이러한 원칙은 기억의 왜곡에서도 적용된다고 한다. 우리의 뇌는 상황에 따라 세부 사항이 나중에 필요할 것이라는 경고를 느낄 때에만 기억으로 기록하기 때문이다. 이는 경고를 느끼지 않은 경험의 출처를 기억해야 할 때 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저자는 기억의 7가지 오류를 최소화하고 피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들은 거꾸로 우리가 기억을 잘 작동하게 만드는 특징들과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기억의 오류는 장점이기도 하며 우리의 정신과 세계를 연결시켜 주면서 시간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같은 것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기억의 망각과 왜곡을 경험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또 타인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때로는 비난하고 때로는 측은해하기도 한다. 치매나 알츠하이머와 같이 노화나 뇌 손상에 따른 질병으로 인한 것이 아니래도, 우리는 자주 겪을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다. 간혹 외출을 하면서 가스 불을 껐는지, 문은 제대로 닫았는지 걱정이 되어 다시 돌아와 확인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건망증도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에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또한 뇌과학의 발전에 따라 우리 뇌의 신비가 어디까지 밝혀질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