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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

[도서]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

곽승지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조선족 동포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20여 년 전 회사 일로 중국 연안지역을 돌아다닐 때 통역으로 한 해를 꼬박 나와 함께 생활한 사람이다. 당시 통역은 대부분 조선족이었는데 현지법인을 설립하기 전까지는 정식 채용이 아니었기에 필요한 사람이 알아서 구해야 했다. 중국 투자 붐이 일던 시절이라 많은 조선족이 통역으로 한국 사람들과 일했는데 조선족에 대한 온갖 풍문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고심 끝에 지인의 추천으로 알게 된 그와 일 년여를 같이 생활했으니 나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그와 생활하면서 나는 그를 중국 공민으로 대했고, 그 역시 나를 외국인으로 대했다. 나중에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처음 몇 달간은 업무와 관련된 일을 제외하곤 서로 말을 아꼈던 것 같다.

 

지금이야 국내에도 조선족이 80여만 명에 이르고 한국에 정주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니 이제 조선족은 우리와 같은 국민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20여 년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우리는 그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살아가다 보면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데 그들에겐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많이 덧씌워져 있는 것 같다.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는, 예전에 간도와 만주라 불리던 중국 동북 지역에 살면서 우리 말과 글을 공유하는 한민족의 일원인 그들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그들은 왜 그곳에서 살게 되었는지, 그리고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정착하게 된 과정과 우리와의 관계에 대해 시기별로 나누어 살펴본다.

 

조선족이라는 명칭은 중국공산당이 중국 동북 지역에 정착한 조선인들의 지위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조선인을 중국 공민을 구성하는 55개 소수민족의 일원으로 인정하면서 사용된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는 명칭이라고 한다. 19세기 후반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은 조선인이 간도와 만주로 이주했다. 그들은 한반도에서의 곤궁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독립운동을 위해, 또는 일제의 강제 동원으로 어쩔 수 없이 한반도를 떠난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이주한 조선인이 해방 후 한반도로 귀환하지 않고 중국에 정착하기로 결정하면서 조선족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해방 무렵 중국 동북 지역의 조선인은 대략 216여만 명이었으며 해방과 함께 절반 정도가 한반도로 귀환했고 110여만 명이 중국에 남아 정착했다. 해방 이전 중국에서 살던 조선인이 한반도에 대한 연고와 분명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살았다면 그 이후에는 역내 질서가 재편되는 과도기적 상황을 거친 후 소수민족인 조선족으로서 중국 공민의 일원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먼저 조선인의 중국 정착 과정을 해방 후 동북아시아의 질서 재편과정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해방 후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전개된 질서 재편과정은 중국의 국공내전으로 촉발되고 한국전쟁으로 마무리된 미국과 소련을 축으로 하는 냉전체제가 구조화되는 과정이었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해방 직후 중국 동북 지역은 중국공산당과 국민당이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전력을 다한 지역이라고 한다. 조선인들은 중국의 국공내전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었고, 중국공산당이 승리함에 따라 공산당을 지지한 조선인은 정착하고 국민당을 지지한 조선인은 전향하거나 귀환하게 되었다.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에 열세였던 중국공산당은 해방 이전부터 항일운동을 위해 관계를 맺어온 연변을 포함한 동북 지역에 밀집해 살던 조선인들의 지지에 힘입어 반전의 발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관계는 이 지역 질서 재편이 마무리될 때까지 운명을 같이했다. 이런 질서 재편은 조선인을 포함한 한민족을 분열과 갈등의 길로 내몰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질서 재편의 주체가 아니면서도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곡절을 온몸으로 겪으며 다 받아내야 했고, 이데올로기 대립과 그에 따른 갈등의 결과 분단과 전쟁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중국 동북 지역에 정착한 조선인은 중국 공민이 되면서 같은 진영에 속했던 북한과는 민족적 유대를 나누었지만 남한과는 서로 잊고 살게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후 조선족으로 살게 된 조선인은 중국의 정치적 변화와 북한-중국 관계의 부침에 따른 영향을 고스란히 견뎌내야 했다고 한다. 1950년대 후반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중국 중심의 단일 조국관을 고양시키는데 초점을 맞춘 민족정풍운동으로 연변지역 조선족 사회를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반우파분자로 몰렸고,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연변지역이 피해가 특히 컸던 재해지구로 불렸다고 한다. 또한 중국과 북한은 초기 사회주의 혁명 과정에서는 완벽한 협력관계를 유지했으나, 국가가 수립되면서부터는 각자 체질 개선을 위한 실리를 추구하면서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갈등은 조선족 사회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선족 동포들은 스스로를 과계민족이라 칭한다고 한다. 과계민족이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독립된 조국을 가지고 있는 소수민족이란 의미이다. 과계민족으로서의 조선족은 북한과 중국의 정치적 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스스로의 운명을 만들어 올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이러한 조선족의 과계민족 특성이 오늘날 한중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한중수교와 조선족 사회의 변화를 살펴본다. 1992년 한중수교는 북방외교를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려는 한국 정부의 외교 목표와 경제발전을 위해 한국의 경험과 자본을 활용하려는 중국의 전략이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한중수교는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조선족과 공식적인 관계를 맺는 직접적 계기이기도 했지만, 그러나 수교 전까지 한국은 조선족을 적대국의 공민으로만 인식한 상태였다. 이러한 인식이 이후 조선족 사회와의 관계 맺기 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을 낳는 동인이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탄력을 받으면서 조선족의 한국방문은 코리안드림이라는 새로운 기회로 인식되었으나, 한국의 정책이 달라지지 않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한국행을 하게 되는 잘못된 관계 맺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2010년 무렵 한국의 정책변화로 다양한 체류자격을 가진 조선족 동포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 수가 증가하면서 2020년에는 80만 명에 이르고 집거촌이 형성되며 정주하려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한중관계의 갈등에 따라 여러 부작용이 촉발되기도 한다. 조선족들이 삶의 터전인 중국 동북 지역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중국의 조선족 사회도 크게 변했다. 1990년대 초 조선족 인구는 190여만 명으로 대부분 중국 동북 지역에 거주하고 4분의 3이 농업에 종사했으나 30년이 지난 지금은 당시 인구의 사분의 일 정도 만이 그곳에 살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처럼 조선족의 역사와 우리와의 관계 맺기 과정을 통해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근현대 우리 역사를 공부하며 간도와 만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읽으면서 가졌던 생각과 지금의 조선족을 보며 드는 생각이 다르다. 같은 사람들 임에도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을 별개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비록 그것이 해방 후 분단과 전쟁에 따른 이데올로기 때문이었다 할지라도 같은 민족이 아니라 외국인으로, 그것도 단지 경제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편견으로 그들을 대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그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가 몰랐던,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던 사실들을 일깨우며 그들과 우리가 함께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준다. 이 책이 조선족과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더 많은 책이 나오는 촉매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20여 년 전 같이 일했던 조선족 동포는 그 후로도 한국에 올 때마다 안부를 전해오곤 했었다. 시골로 이사 오기 전 남경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연락이 없는데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 한번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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