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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믿어요

[도서] 순간을 믿어요

이석원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이 책은 내가 구매한 책이 맞지만 의도치 않게 읽은 책이다. 책을 쓴 저자를 혼동하는 바람에,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취소하는 것이 귀찮아 그대로 두었다. 책을 받고도 며칠을 묵히다가 이야기 산문집은 어떻게 쓴 것일까 하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그날로 다 읽었다. 가독성만큼은 여느 책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그러나 소설책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산문집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좀 애매하다. 책의 구성은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부터 끝까지 주를 이룬다. 책 한 권이 하나의 이야기로 되어있다 해서 장편 소설이라기보다는 중단편 정도의 분량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중간중간 작가가 쓴 짧은 산문이 들어 있는데 내용은 마치 이야기 속 화자의 속마음을 설명하듯 이야기와 연관되어 있다. 아니 이야기 자체를 산문으로 볼 수도 있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한 쪽 조금 넘는, 길어야 두 쪽에 그치지만 시간순으로 엮여 있어서 하나의 이야기처럼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야기 산문집의 이야기는 층간 소음이 주제일 수도 있고, ‘사랑과 두려움이 동의어인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라 할 수도 있다. 아예 층간 소음을 매개로 한 사랑 이야기라고 한다면 작가의 의도에 반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또 이야기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처음 접하는 작가인지라 뭐라 딱 부러지게 알 수는 없다.

 

층간 소음이 싫어 아파트 맨 꼭대기 층만을 고집하는 화자는 어쩌다 바로 아래층에 살게 되었는데 위층에 새로운 이웃이 이사 온 뒤부터 늦은 밤만 되면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더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위층을 찾아가지만, 문과 벽에는 누구도 찾아오지 말라는 경고의 문구로 덮여있다. 화자는 위층 집주인을 만나기 위해 주인이 운영한다고 알려진 식당에서 하는 모임에 참가하여 열성적으로 활동하다 기린이라 불리는 한 여성을 만나게 된다. 연애는 항상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는 용량제 같은 것이라 생각하는 화자는 가능한 그 끝을 늦추기를 기대하며 연애를 해왔으나, 기린을 만나면서부터 모든 것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들어있는 짧은 산문은 이야기와 연관이 되면서 화자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위층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 위층 집주인을 찾고자 하는 이야기가 전개될 때 그 옆 쪽에는 나는 리트리버 같은 사람./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불편한 관계가 되느니/차라리 내가 힘들고 마는 게 낫다.//하지만/리트리버조차 화가 나면 짓거나/이빨을 드러내기도 하던데//나는 그마저도 못해/괴로워도 그냥 끙끙 참기만 할 뿐.’(23)이라는 글이 쓰여 있다. 아파트 위층 집주인을 찾아 그가 운영한다는 식당에 갔다가 식당 벽에 붙어있는 가격 인상 안내문을 보고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장면 옆 쪽에는 소통이란 제목으로 한편의 글이 쓰여있다. 문자는 억양을 전달할 수 없어서 위험하고/전화는 표정을 보여 줄 수 없어서 위험하고/만나서 하는 건 그 모든 걸 숨길 수 없어서 위험하다면//어떤 오해나 불필요한 마찰 없이/타인에게/나의 민감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전하기란/얼마나 어려운 일인지.’(37) 어찌 보면 시처럼 읽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야기 속 화자를 변호하는 글처럼 읽히기도 한다.

 

기린이라는 여성과 만나면서 화자의 마음속에선 갈등이 일어난다. 여느 사랑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순간을 늦추기 위해 애쓰는 모습과 그 시간이 언제 다가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런 화자의 마음을 산문이라 불리는 짧은 글 속에서 그대로 드러낸다.

그렇지만/뭔가 좋다는 표현을/너무 격하게 하는 사람은/조금 경계하게 된다.//뭐든 싫어하는 마음도/그만큼 클 것 같아서.’(50)

사랑이란/둘이 비슷하게 시작할 수는 있어도/동시에 끝낼 수는 없는 법/그게 이 행위의 문제라면 가장 큰 문제이다.’(146)

인연은 우연이 아닌/노력과 표현의 산물이라고/생각하는 편이라서.’(161)

갑자기 찾아온 행운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갑자기 찾아온 만큼/또 불쑥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까 봐.’(232)

나로 하여금/미안하다는 말을 자꾸 하게 만드는 사람에게/내가 할 일은/반복되는 사과가 아니라/거리를 두는 것이다.’(238)

 

경험으로 보았을 때 무엇을 하든 처음 접하는 것은 대부분 지루하거나 신선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기 싶다. 그런데 우연찮게 읽은 이 책은 산문집인지 이야기책인지 헷갈리기도 했지만 ?그래서 이야기 산문집이라고 이름 붙였겠지만- 조금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뻔한 사랑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음에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가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들고, 얼핏얼핏 스치는 산문의 한 구절구절이 작자의 심정에 공감하게 만든다. 사랑을 하게 되면 대개 혼자서 기쁨과 슬픔을 창작하고 거기에 반응하며 아파하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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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파란 글씨들이 서정적인 면에서 공감되기도 하네요.

    2023.03.04 23:04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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